불황기 광고에 등장한 ‘캔디가 된 아빠들’… 낀 세대 40대를 향한 응원엔 ‘가부장의 그늘’이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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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아빠들이 ‘캔디’가 됐다. 경기침체의 초기에 가족사랑을 읊어대던 광고가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아빠 응원으로 메시지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대한민국 아빠들이 ‘캔디’가 됐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 광고가 아빠들에게 캔디가 되라고 말하고 있다. 아내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말라고 응원하고, 아들딸은 “아빠~ 힘내세요~”라고 노래한다. 경기침체의 초기에 가족사랑을 읊어대던 광고가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아빠 응원으로 메시지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었지만, 광고에서는 여전히 아빠가 생활전선의 ‘대표선수’고, 엄마는 ‘치어리더’다. 아이들은 ‘응원단’이다. 강석란 오리콤 제작부장은 “경제가 어려워지면 남자들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 법”이라며 “아빠 광고는 우리 시대 가장들에게 보내는 격려문”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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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아내, 교보생명 시리즈
교보생명 광고가 대표적이다. 탤런트 김희애씨가 어깨가 축 처진 남편을 보면서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고 노래한다. 아내의 응원가에 남편은 고개를 든다. 곧 자막이 뜬다. “마음에 힘이 되는 아내의 노래처럼”. 교보생명이 올 초부터 이어오고 있는 ‘마음에 힘이 되는 시 하나, 노래 하나’ 시리즈의 ‘아내’편이다. 교보생명은 앞서 가수 ‘비’가 아버지에게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을 틀어주는 아들편, 배우 최민식씨가 친구에게 “거치른 벌판으로 달려가자~”를 불러주는 친구편을 내보낸 바 있다. 아내, 아들, 친구가 한목소리로 실의에 빠진 ‘가장’을 응원하는 이 시리즈는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 2004년 대한민국 광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광고 제작을 담당한 광고회사 웰커뮤니케이션즈의 이종혁 부장은 “누구나 마음에 힘이 되는 시 하나, 노래 하나 가지고 있는 법 아니냐”며 “가까운 사람이 불러주는 응원가가 호응을 얻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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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광고 속 아빠는 아직 다시 일어서는 파이팅을 보이지는 못한다. 그저 아내의 노래에, 아들의 위로에 쓸쓸한 웃음을 머금을 뿐이다. 힘겨운 아빠, 쓸쓸한 가부장의 모습은 더 깊은 연민을 자아낸다. 우리 사회의 가부장 신화는 뿌리 깊고, 우리는 ‘가부장의 그늘’을 사랑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는 “최근에는 대중문화 분야에서 아버지, 장남에 대한 향수가 살아나고 있다”며 “아빠 광고도 가족의 구심점이 사라진 시대에 구심점을 그리워하는 향수”라고 분석했다. 그는 광고뿐 아니라 영화 과 , 베스트셀러 등을 예로 들었다. 경제위기 국면에서 많은 기업들이 아빠의 이미지를 빌려 “우리 기업이 당신의 안식처이고, 구심점”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것이다.
광고에 등장하는 요즘 아빠는 젊은 아빠다. 교보생명 광고에서도 아들편에서는 머리가 성성한 늙은 아버지가 등장했지만, 아내편과 친구편에서는 40대 초반의 젊은 아빠들이 위로받는 사람으로 등장했다. 이종혁 부장은 “아이들은 커서 돈 들어갈 곳은 많아졌지만, 직장에서는 밑에서 치이고 위에서 눌리는 40대 가장들이 경제위기를 온몸으로 겪는 대표적인 세대 아니냐”고 말했다. 그래서 광고 음악도 타깃층을 고려해 40대가 어린 시절 즐겨 봤던 만화인 의 주제가를 선택했다. 가족 관계의 변화에 바탕을 두고 젊은 아빠의 등장을 해석하기도 한다. 심영섭씨는 “40대 남성은 수직적인 가부장제에 충성을 다 바쳤지만, 수평적인 가족관계로 변한 현실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 세대”라며 “최근의 아빠 광고에는 낀 세대 남성의 억울함이 녹아 있다”고 분석했다.
아빠 광고에 ‘아빠’가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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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없는 아빠 광고도 있다. 비씨카드 광고에는 아빠 대신 아이들이 등장한다. 7살 딸과 5살 아들이 깜찍한 몸짓을 섞어가며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고 노래한다. 광고는 배우 송혜교씨가 “대한민국 엄마, 아빠 파이팅!”이라고 외치면서 끝난다. 광고 슬로건은 “엄마, 아빠”지만, 정작 광고에서는 “아빠”만 외친다. 비씨카드가 지난해에 내보냈던 광고에는 텔레비전에서 나쁜 뉴스만 흘러나오자 배우 김정은씨가 좋은 뉴스만 나오는 텔레비전을 찾아다닌다는 내용이 있었다. 비씨카드 광고는 지난해에 이어 불황 극복의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올해에는 아빠 중심의 내용으로 바뀐 것이다. 광고를 제작한 그레이프커뮤니케이션스 조형준 부장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은 아빠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광고도 아빠 없는 아빠 광고다. 이 광고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공부하고, 놀고, 웃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이들의 모습 위로 “아빠들이 다니는 회사가 잘 돌아갈수록 우리는 우리 아이들의 웃음을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라는 목소리가 얹어진다. 슬로건은 ‘우리 모두를 키우는 은행’이다. 광고에 따르면 아빠는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우리 모두를 키우는 중심인 셈이다. 광고를 보고 나면 ‘아빠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아빠 없는 아빠 광고 두편이 설정하고 있는 아빠의 나이도 초등학교 저학년 또는 취학 전 아동을 자녀로 둔 40대 가장이다. 조형준 부장은 “40대 이상의 가장들도 그 시절을 거쳤기 때문에 젊은 아빠를 내세우면 공감대의 폭이 넓어지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아빠 광고에 아빠가 나오지 않거나 아빠의 뒷모습만 나오는 이유는 뭘까?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는 남자다움의 신화를 이야기한다.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자들이 생각하는 남자다움의 본질은 감정을 절제하고, 죄책감에 가까울 정도의 책임감을 느끼며 위기가 닥치면 반드시 극복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단 전제조건이 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어려움을 극복해야 진정한 남자라는 생각이다.” 완고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들은 그 신화에 빠져 있고, 여성들조차 그 신화에 공감하게 된다. 남성신화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은 어깨가 처진 가장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굳이 아빠가 등장하지 않아도, 아니 등장하지 않아야 공감대가 형성된다. 정혜신씨는 “남성신화는 남자들을 돈 버는 기계로 전락시키고, 여성들을 응원하는 도구로 폄하한다”고 덧붙였다.
아빠 마케팅은 기존의 광고 캠페인에도 반영되고 있다. 2002년 시작된 삼성생명의 ‘브라보 유어 라이프’ 시리즈는 올해 들어 캠페인의 방향을 바꿔 아버지편을 방송했다. 가장 먼저 아버지 마케팅을 시작한 셈이다. 아버지편에서는 장성한 아들, 딸의 추억을 통해 늙은 아버지를 응원했다. 철도원 아들, 교사 딸 등이 나와 “아빠는 충분히 이겨내실 수 있는 분이라고 믿어요”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이 광고는 “아버지, 삼성생명이 당신의 인생을 응원합니다”로 마무리된다. 삼성생명은 아버지편에 이어 어머니편을 방송했고, 부부편을 준비 중이다. 광고를 제작한 제일기획 이상진 대리는 “아버지 응원에 세대 화합의 메시지까지 함께 담았다”고 말했다. 삼성생명뿐 아니라 삼성그룹의 광고에는 아버지가 단골로 등장한다. 삼성그룹의 이미지 광고에는 부자지간이 계속 등장하고 있고, 삼성전자의 ‘또 하나의 가족’ 시리즈에도 아버지가 가족의 중심 인물로 부각된다. 이 밖에 아시아나항공의 광고에도 딸의 사진을 보며 웃음짓는 아버지가 나온다. 바야흐로 아빠 신드롬이 일고 있다.
불황기에 아빠 광고가 뜨는 이유가 있다. 박준호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 연구소 국장은 “불황기에는 ‘어려운 고객을 응원한다’는 광고만큼 강력한 메시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빠를 응원하는 광고는 대부분 금융회사의 광고”라며 “금융회사의 주고객이 남성이고 아버지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금융회사의 경우, 호황기에는 여성, 젊은이 중심의 광고를 했지만, 불황이 닥치자 좀더 타깃 지향적인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남성들이 경기에 더 민감해 경기가 침체되면, 남성들의 소비가 여성의 소비에 비해 더욱 위축돼 남성을 주고객으로 하는 회사들이 아빠 마케팅을 강화한다는 분석도 있다. 지금의 ‘우울한’ 아빠 광고에는 시대도 반영돼 있다. 박준호 국장은 “IMF 이후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지면서 남성들의 자신감이 떨어진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의 주변화는 어떻게 볼까
아빠 광고는 시장 상황에 적응하기 위한 자본의 본능적인 대응이지만, 가부장제를 강화하는 부작용도 낳는다. 우선 아빠 신드롬 속에서 엄마는 주변화된다. 아빠 광고를 통해 아내는 돈을 벌어오기보다는 정신적 위안을 주는 것이 ‘한국적’ 현실이라는 관념을 반복한다. 게다가 아빠 광고는 위기가 닥치면 가부장이 가장 불쌍한 존재고, 그 위기는 남자가 책임진다는 퇴행적 논리를 강화한다. 정혜신씨는 “여성이 고통을 ‘분담’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광고 속에서는 여전히 남성만이 고통을 짊어지는 것처럼 묘사된다”며 “여성들은 현실의 무게와 가부장제의 강화라는 이중의 부담을 지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래도 여성이 ‘캔디’ 같은 씩씩한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이 변화라면 변화고,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외로워도 슬퍼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아빠 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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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 왜 나오셨습니까 |
가끔씩 광고의 화제 중심에 등장하는 아버지들. 광고가 아버지를 찾는 데는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1920년대 한 미국광고는 가혹한 방식으로 아버지를 말했다. 푸르덴셜 보험회사 광고에서 한 과부는 자신의 아이들을 만나러 고아보호 시설에 간다. 그리고 보호시설 담당자는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생전에 생명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이 광고는 산업화의 거센 바람이 미국의 가부장제를 흔들면서 아버지는 생계 유지를 위해 돈을 버는 사람으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가족의 해체 현상은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경제불황의 최저점에선 이혼율도 주춤하고, 광고들도 가족에게 눈길을 돌린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불황 시절, 위로·애국·고난극복을 말하는 감성적인 광고가 등장하면서, 정과 가족애를 기반으로 한 아버지 위로 광고들도 나타났다. 그래서 평소엔 장마·황사·살균·세균 외엔 별다른 단어를 찾지 않던 표백제 광고도 아버지를 위로했다. 1998년 옥시크린 광고에서 주부는 말했다. “…요즘 같은 때 새 옷 아니면 어때요? 남편 기분을 위해 와이셔츠 하나라도 더 깨끗하게 입혀주고 싶어요.”


광고의 ‘긴급소집령’에 부응하느라 바쁜 우리 아버지들. 복잡미묘한 아버지들의 모습은 현대 가족의 재편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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