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공연 가능한 뮤지컬 전용극장 설립 시급… 비싼 대형극 범람 막고 안정적인 흥행 가능하도록
▣ 원종원/ 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 뮤지컬 비평가 jwon@sch.ac.kr
요즘 우리 공연가에선 “뮤지컬 말고는 장사가 되는 것이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홈쇼핑에 등장한 한 뮤지컬 공연의 할인 티켓 판매가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뮤지컬 산업’ 시대를 향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앞다퉈 등장하고 있다. 가히 뮤지컬 전성시대다.
가족나들이 30만원 이상인 이유
대중화에 따른 여러 가지 논의들도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온다. 가장 흔한 이야기들은 역시 티켓 가격에 대한 것이다. 한마디로 너무 비싸다는 의견이다. 단순 비교로만 보자면 100달러 전후의 미국 브로드웨이나 50파운드 안팎의 영국 웨스트엔드 공연 티켓 가격은 결국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0만원을 조금 상회하는,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 서구 선진 국가와 우리나라와의 국민총생산(GNP) 수준 혹은 경제 규모를 변수로 더한다면 확실히 우리 뮤지컬은 아직 일반화나 대중화가 되기에는 부담이 큰 존재이다. 같은 가격이지만 이들 국가간의 대중이 느끼는 ‘체감 정도’는 두서너배쯤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인기를 누리고 있는 디즈니 뮤지컬 (Beauty and the Beast)를 보면 더욱 이해하기 쉽다. VIP나 R석을 기준으로 두 자녀를 둔 가족이 무대를 찾는다면 이들이 지불해야 할 돈은 40만~50만원 규모. 8만원짜리 S석이나 6만원짜리 A석을 선택한다고 해도 24만~32만원에 저녁식사 등 이것저것을 더하면 결국 30만원은 훌쩍 넘어버린다는 계산이다. 아무리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되고 가족과의 나들이로 적합한 소재라 해도 보통 월급쟁이가 섣불리 지갑을 열기에는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아쉽게도 이같은 고가의 입장권 문제는 하부 구조의 취약에서 비롯된다. 한번 찍어 여러 개로 복사돼 수백, 수천의 상영관에서 반복 상영될 수 있는 영화와 달리, 공연은 배우와 스태프들에 의해 한땀한땀 빚어내야 하는 장르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 자연 한 회에 거둬들일 수 있는 입장료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결국 객석 수에 공연 일수를 곱해 벌어들이는 매출액에서 제작비를 상각(償却)하고 남는 돈이 순익이 된다. 문제는 여기에 최근 공연시장에 일고 있는 ‘명품’ 선호 경향이 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빈익빈 부익부’라는 한숨 섞인 지적처럼, 대형 공연에는 관객들이 몰려드는 반면 순수 창작극이나 소규모 실험적인 뮤지컬은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연적으로 수백억대의 엄청난 제작비가 소요됐다는 문구를 프로모션 전략으로 활용하는가 하면, 세계 몇대 뮤지컬이라든지 브로드웨이 최고의 작품이었다는 식의 홍보 문구를 통해 애호가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등장하게 마련이다. 결국 흥행이나 금전적 성공의 관건은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연장을 오랜 기간 확보할 수 있는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겐 본격적인 뮤지컬 전용관이 없다. 통산 1천석 이상 규모를 본격적인 상업 뮤지컬에 적합한 공연장으로 볼 때 현재 서울에는 세종문화회관, 예술의 전당 오페라 극장, 국립극장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들 극장을 장기 대관한다는 것은 태생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즉, 민간 자본이 아닌 관(官) 위주의 경영 혹은 준(準)국영이나 공영성을 띤 현재의 운영 체계와 이로 인한 바둑판식 대관 일정에서 일정 기간 이상 공연을 지속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희망에 가깝다. ‘치고 빠지는’ 일회성 투어 공연을 제하고는 제대로 공연을 통해 ‘돈벌이’를 하거나 우리 문화를 함양하고 육성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주목되는 10개월 공연
하지만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공연장 스스로가 기획자의 하나로 참여한 일부 작품의 경우, 서너달의 공연을 기록한 경우가 드물지만 존재한다. 극단 신시와 에이콤이 예술의 전당과 공동으로 주관했던 뮤지컬 나 역시 신시와 예술의 전당이 함께 만들었던 (Rent)는 이들 공연장에서 장기 상연을 시도했던 손꼽히는 작품들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이같은 공동 제작이나 기획이 현안을 타파할 적절한 대안까진 될 수 없다는 점이다. 한정된 공연장 수에 국내에서 공연되려는 뮤지컬 작품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다는 물리적인 제약도 있거니와 다른 장르의 예술까지 아울러야 하는 복합 공연장으로서의 속성 탓에 뮤지컬 이외의 공연단체들로부터 원성을 살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공연단체와의 공동제작은 다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더라”는 식의 특혜 시비로 번질 우려도 있다.
문제는 민간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뮤지컬 전용관의 건립 추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색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LG아트센터의 적극적인 상업화 운영 전략은 손꼽힐 만하다. 2001년 으로 공전의 흥행을 기록한 이후 요즘 공연되고 있는 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행보는 전용관에 목마른 우리 뮤지컬 공연계에 거의 유일무이한 숨통 구실을 하고 있다. LG아트센터는 내년 초 또 다른 디즈니의 뮤지컬인 (Aida)를 10개월간에 걸쳐 장기 상연할 예정이다. 오페라 를 디즈니식 가족 뮤지컬 스토리로 탈바꿈시킨 이 작품은 화려한 볼거리와 엘튼 존의 맛깔스러운 음악으로 유명하다. LG아트센터의 이같은 행보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시도될 전망이어서, 이것이 국내 뮤지컬 전용관 시대의 서막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여름 의 흥행 덕분에 대중적인 공연장으로서의 홍보에 톡톡히 도움을 받은 코엑스 오디토리움도 향후 주목되는 공간 중 하나다. 요즘 서울에서 그만큼 여유 있게 주차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근접성이 용이하며, 게다가 인근 쇼핑몰이나 음식점 등이 효과적으로 연계돼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 연말께로 예정된 의 앵콜 공연에 이미 코엑스쪽이 적극적으로 극장 임대 의사를 전달했다는 후문도 들린다. 그러나 전문 공연장으로 탈바꿈하기에 애초 용도가 국제회의 등에 용이한 복합 공간으로 지어졌다는 점이나, 뮤지컬 전용관이 되기에는 무대의 좌우 폭이 지나치게 넓은 데 반해 상대적으로 포켓이나 무대 뒤 공간의 여유가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 또한 존재한다. 또 분장실 등 여유 공간이 부족하고 무대와 거리가 멀다는 문제점도 있다. 결국 어느 규모 이상의 대작을 장기 상연하기에는 다소 문제가 있는 공간이지만, 열악한 우리 공연계로서는 어떻게든 그 활용 방안을 모색해보아야 할 기회이자 한계인 셈이다.
앞서 얘기한 극장들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일년 내내 뮤지컬 공연을 연속 상연할 계획도 있어 주목된다. 대학로의 전통 있는 공연장인 동숭아트센터가 극단 오디 컴퍼니(OD company)와 추진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진 일명 ‘뮤지컬 열전’이 그것이다. 현재 극장 규모에 맞는 실험적인 공연들을 위주로 스케줄이 짜일 예정이라 알려졌는데, 개중에는 아직 국내에서 시도된 바 없는 (Into the woods) 같은 스티븐 손드하임의 실험성 깊은 뮤지컬 작품도 포함돼 있어 마니아들의 기대를 한껏 모으고 있다.
국내 창작극에도 극장 세례를!
그나마 이러한 시도들이 외국의 대형 수입극 혹은 번안극에 치중되고 있을 뿐, 정작 우리의 창작극 시장에서는 아직도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현재 건국대학교 새천년홀에서 공연되고 있는 창작 뮤지컬 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뮤지컬의 기획자인 김학묵 대표는 “마땅한 공연장을 찾을 수 없어 대학 캠퍼스 안의 극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국내 유수의 대형 극장 관계자들에게 공연을 제안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거나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시원스레 내리는 극중 소나기 신의 특수효과나 연기파로 잘 알려진 유명 배우를 전면에 내세우는 등 한층 성장된 창작 뮤지컬의 가능성을 선보인 이 작품이 외적 환경 요인으로 인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공연단체 ‘시키’(四季)의 국내 진출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파악해볼 수 있는 사안이다. 롯데그룹이 건립하고 시키가 운영하려는 뮤지컬 전용극장 설립계획을 둘러싸고 이것이 ‘문화 교류’인가, ‘문화 침식’인가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등장하고 있다. 문화시장의 세계화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조류라는 주장도 있지만, 국내 공연가에 소개하겠다는 시키의 작품들이 대부분 자체 레퍼토리가 아닌 서구 뮤지컬들의 일본 번안작인 점을 감안한다면 관점에 따라 이러한 계획은 ‘남의 것을 가져다 이웃에게 되파는’ 일본식 상술의 문화적 표현에 불과하다. 국내의 반일 기류 탓에 한국 진출을 포기했다는 아사리 게이타 회장의 발언도 따지고 보면 극장 건립에 소요되는 2~3년의 기간 동안 본격적인 논의를 전개해보겠다는 장기적인 노림수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결론은 간단하다. 급성장세를 보이는 우리 뮤지컬 공연가에 전용극장의 확보는 지상 최대의 과제이자 조속히 해결해야 할 난제라는 점이다. 영화계의 ‘스크린쿼터’처럼 공연 문화와 문화 산업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전용극장 설립에 대해 정부의 직·간접적 지원을 모색해보아야 한다. 적어도 ‘죽 쒀서 개 주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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