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인조 찰떡궁합 연기로 관객몰이하는 연극 … 속사포 대사에 드러나는 남자들 속내 웃음 터져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대학로에서 ‘나체질주자’가 질주를 해도 거들떠보지 않던 관객들. 그들을 연극 (10월3일까지,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의 객석으로 부른 것은 유럽에서 대중성을 인정받은 야스미나 레자의 희곡이 아니었을 것이다. 공연이 끝난 뒤 번역극이라는 데서 이물감을 느끼는 관객은 거의 없을 것이니 말이다. ‘여자들은 모르는 찐~한 남성만의 세계’라는 자극적인 홍보 문구에 사로잡힐 관객이라면 굳이 연극 무대를 찾지 않아도 욕구를 채울 수 있다. 관객몰이의 주역은 단연 ‘삼인조’(화·목·토: 정보석·이남희·유연수, 수·금·일: 권해효·조희봉·이대연)의 찰떡궁합 배우들이었다.
값비싼 그림 산 의사와 두 친구
연극 는 특별한 무대장치가 없더라도 얼마나 색다른 느낌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언어연극’에 가깝다. 소파와 벽이 있는 무대가 바뀌는 것은 다른 그림을 벽에 거는 것으로 끝난다. 배우가 옷차림을 바꾸는 것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관객들은 속사포처럼 터지는 배우들의 대사에 빠져들면서 순간순간 웃음을 터트리면 된다. 그러면서 어딘가에 숨어 있는 자신의 속마음을 확인하는 경이로운 체험을 할 수 있다. 얄팍한 우정의 속살도 덤으로 확인한다.
연극 는 날것들의 무대다. 아무리 오래된 친구라 해도 금기는 있게 마련. 하지만 무대에서 대학교수 규태와 피부과 의사 수현, 문구점 주인 덕수 등 세 남자는 모든 것을 까발린다. 문제는 1억8천만원이나 하는 하얀색 바탕에 흰 줄이 쳐진 앙트로와의 그림 한점이었다. 청담동의 의사인 수현은 그림을 구입하고 친구들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아무리 뜯어봐도 무엇 하나 눈에 띄지 않는 그림은 현대 미술의 오만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수현은 앙트로와의 그림에 대해 ‘판때기’라 말하는 것은 무지의 산물이라고 나무란다.
그럼에도 규태는 판때기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자신의 친구가 거금을 들여 하얀색 캔버스를 샀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에게 타인에게 너그러운 것은 무관심의 증거이며 ‘모더니즘’ ‘해체주의’를 들먹이는 수현은 가진 자의 위선으로 다가온다. 덕수와 수현의 갈등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림을 보는 눈을 말하고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를 따지던 두 사람은 친구의 아내를 비웃는 등 우정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단숨에 뛰어넘는다. 그렇게 속내를 드러내고 우정을 보듬기는 버거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서 우리는 관계의 다리 구실을 하는 덕수를 만난다. 그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소박한 생활신조를 온몸으로 실천한다. 입장 바꿔 생각하며 위기를 돌파하려는 덕수는 “그림 속에 울림이 있다”며 수현 편에 서고, “판때기 그림은 1800원에도 사지 않겠다”며 규태를 거든다. 하지만 그는 결국 둘로부터 배척당하는 지경에 이른다. 하나의 가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는 ‘서글픈 광대’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그가 어느 한쪽에 섰더라면 싸움은 싱겁게 끝났겠지만 그 뒤의 앙금을 풀어낼 방법은 없었으리라.
세 친구의 우정에 새겨진 상처는 어설프게 봉합된다. 아파트 한채 값의 앙트로와 그림에 규태가 ‘스키 타는 사람’을 마술펜으로 그리는 것이다. 그렇게 얄궂게 파헤쳐진 우정의 실체가 다시금 흠집 나지 않을 리 없다. 자신의 판단에 대한 절대적 확신이 친구에게 폭력으로 느껴진다면 과감히 접는 게 우정이 아닐까. 그런데 지금 우리 곁엔 폭력적 상황을 견뎌낼 친구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사소한 차이를 감내하지 못하고 친구의 가슴에 못질을 했다면, 이 순간 안부를 확인하고 연극 에서 서로를 느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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