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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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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고루한, 너무나 고루한 대응

등록 2004-09-10 00:00 수정 2020-05-03 04:23

[다시, 동아시아!]

523호 임지현 교수의 주장을 지지하며… 고구려사를 그 땅의 주인들에게 돌려줘라


523호 ‘다시, 동아시아’에서 임지현 교수는 서로를 배제하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민족주의를 꼬집고 ‘국사’의 해체를 주장했다. 이 글이 나간 뒤 독자들의 반응은 매우 첨예하게 엇갈렸다. 함돈균씨는 임지현 교수와 같은 맥락에서 고구려사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글을 보내왔다. 이에 대한 어떤 반론도 환영이다. <u>bretolt@hani.co.kr</u>


▣ 함돈균/ 고려대 국문과 박사과정

니체는 에 속한 한 에세이에서 우리의 삶이 필요로 하는 역사 이용의 방식을 세 가지로 분류하고 그것을 각기 기념비적 역사, 골동품적 역사, 비판적 역사라고 불렀다. 여기에서 기념비적 역사는 일찍이 현존했던 위대했던 것의 역사를 현대인들에게 상기시킴으로써, 오늘날 우리들에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과거 ‘영화’의 재현에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는 역사를 말한다. 그러나 니체는 여기에서 ‘기념비적’이라는 말을 다소 반어적 뉘앙스를 집어넣어 사용하며 이러한 역사 충동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과거와 현재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여 있으며 따라서 과거의 ‘기념비’는 결코 다시 세울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거에 세운 화려한 기념비를 ‘추억’하며, 과거와 현재를 동일시하고 일반화하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기념비적 역사’에 대한 열광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로 촉발된 고구려사 왜곡 논쟁을 지켜보며, 오래전에 읽은 니체의 에세이가 문득 떠오르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우리 민족’ 혹은 ‘우리 국민’)에게 ‘고구려’라는 단어는 ‘조선’이나 ‘신라’, ‘고려’와 같은 종류의 단어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고구려라는 나라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지금은 우리 땅이 아닌 그 광활한 영토(흔히들 ‘만주 벌판’이라고 하는)를 활을 쏘며 달리는 고구려 고분벽화 속의 ‘진취적’인 전사들의 모습이다. 고구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없지만, 어쨌든 그 나라는 광대한 제국이었으며 우리 역사에서 거의 유일하게 중국과 ‘맞장’을 뜬 나라로 우리의 머릿속에서 ‘추억’되고 있는 것이다.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진행되는 ‘논쟁’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고구려에 대한 이러한 상념이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님을 알게 된다. 다시 한번 ‘만주 벌판’을 되찾아서 우리 민족의 기상을 드높여야 한다는 익명의 글에 쇄도하는 격려성의 ‘뜨거운’ 답글들 속에서 이에 대한 반론을 달아보는 일은 무의미한 행위로 느껴질 정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념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우리 정부와 우리 역사학계의 대응 방식을 지켜볼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몇해 전 대학입시 교육 개편 때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분류하던 것을 이제는 다시 필수과목으로 전환하고, 대학에서도 국사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등 어수선하고 ‘뜨겁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고구려는 우리에게 결단코 양보할 수 없는 ‘영화(榮華)의 추억’을 기억하는 ‘기념비적 역사’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토록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고구려’라는 나라가 정작 어떠한 나라였는가에 대한 구체적 논의로 들어가면, 일반인들이 지닌 지식이란 실로 ‘만주 땅을 거느린 제국’이라는 ‘사실’ 외에는 제대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들이 어떠한 언어를 사용했고, 어떠한 혈통적 구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반 민중들의 삶의 방식은 어떠했는가 등 사회적 삶의 실체를 이루는 진실들은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베일에 가려 있다. 이는 고대사와 관련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우리의 사료 현실의 치명적 약점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겠으나, 그 중대한 책임에 우리의 ‘국사’ 교육이 지닌 이데올로기적 성격의 특수성이 존재하고 있음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한 형태의 민족 정체성의 뿌리와 계보를 그려나가며 이를 강조하는 우리의 국사 교육과 주류 한국사 연구의 풍토에서는 현재의 한반도 영토의 일부를 구성했던 고구려가 우리 ‘민족’적 실체의 중요한 뿌리를 구성한다는 역사적 ‘전제’는 단 한번도 의심돼본 일이 없다. 이에 따라 사회적 삶의 실체를 탐구하는 ‘문화사’적 연구 방식보다는 지배층 중심의 정치사와 중국과의 대외관계사 중심의 역사인식과 역사교육이 강조돼왔다.

삼국은 서로 ‘외국’이었을 뿐

우리는 중국이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를 과거에 소급해 동북지방을 중국의 역사로 규정하는 아전인수식 해석과 마찬가지로, 현재 한반도 영토의 일부를 포함했던 고구려를 ‘국사’로 규정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 일인가 하고 반문한 임지현 교수의 주장( 523호)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겠다. 이 질문은 기본적으로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규정했지만, 실제로는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사를 독해한 카의 근대적 역사관을 비판한 것이다. 그의 지적처럼 한국사의 주류 학계에서는 간과하거나 (일부러) 무시하는 고구려의 사회·문화사적 실체는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현재의 한반도 사람들과 같은 종류의 것이 아니다. 고구려가 점유하던 요동지역 일대는 다양한 고대 부족들이 혼재해 있었던 곳이며, 고구려는 요동의 예맥계를 뿌리로 하였지만 동호계의 거란과 숙신계의 말갈 일부, 이후에는 한국(韓國)의 주구성원이 된 삼한의 일부까지를 포함한 다혈족(부족) 혼성문화 국가였다. 이는 역사 공동체로서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징표인 언어가 고구려에서는 다언어로 쓰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게다가 국문학계에서는 이미 1960년대에 고구려의 언어가 한국어의 중심을 형성한 삼한·신라·고려어와는 다른 계통에 속하는 언어임이 유력한 정설로서 연구된 바 있다. 고구려의 언어가 중국의 언어와도 다르지만, 고대 한어(韓語)와도 달랐다는 사실은 그들이 중국과 한국(韓國)의 어디에도 귀속되지 않는 독자적 역사 공동체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구려의 계통 문제에 대해서는 올 초에 나온 김한규 교수의 에서 자세히 논증되었다).

여기에서 고구려를 ‘우리 역사’라고 생각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정설’을 제공하는 ‘삼국통일론’에도 약간의 딴지를 걸어봄직하다. 김부식의 에 의해 이른바 ‘삼국통일’로 서술되고 있는 이 논의는 역사학계의 가장 오래된 ‘정설’이자 민족주의적 역사관의 주요한 뿌리가 되고 있는데,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신라가 ‘통일’한 영토가 실제로 어디에 한정됐는지를 상기해볼 필요가 있겠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얻은 영토는 대동강 이남에 한정되어 고구려의 영토를 거의 상실했고, 이렇게 보면 고구려 땅 전체가 한반도 국가에 귀속된 적은 ‘실제로는’ 한번도 없었던 것이다. 신라 중심의 역사서술을 전개한 김부식의 는 역사를 국가통합의 이데올로기로 이용한 가장 대표적인 서술이었으며, 그가 이야기하는 ‘삼국통일’이란 이런 점에서 역사적 실체를 지닌 ‘진실’의 논리라기보다는 다분히 ‘이념적 허구’로 ‘구성’된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720년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가장 오래된 ‘정사’ 를 보면 한반도의 삼국간 쟁투가 하도 치열하여 이들이 하나의 역사 공동체라는 인식을 가졌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각자에 대해 ‘외국’이었으며, 대동강 이남에 한정된 신라의 ‘통일’은 고구려라는 ‘외국’을 실체적으로 귀속·동화시킨 적이 없었다.

이스라엘과 우리의 모습?

고구려사 논쟁을 지켜보며 필자는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는데, 그것은 중국의 역사 왜곡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 대응하는 한국 사학계의 고루한 역사적 시각과 정부의 대응방식 때문이다. 이런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2천년 전의 기념비적 역사를 상기하며 2천년 동안 살아온 그 땅의 오랜 주인을 내쫓고, 그 땅의 주인이자 역사적 계승자임을 자처하는 이스라엘과 우리의 모습이 혹시 비슷하지 않은지 모르겠다. 고구려 이후 그 땅은 예맥계와 융합한 숙신·동호계를 통해 발해, 요, 금, 원, 청과 같은 거대제국을 탄생시키며 20세기 초반까지 다시 1천년 이상을 지나왔다. 임지현 교수는 이 땅을 다양한 문화권이 교차하는 ‘변경’적 역사로 규정했으나, 필자의 생각에 그 땅은 결코 ‘변경’이 아니다. 플라톤의 에서 정의를 ‘강자의 이익’이라고 규정하며 소크라테스와 논쟁한 트라시마쿠스의 논의를 역사학에 갖다댄다면야 ‘역사도 강자의 것’이고, 현재 힘없는 소수민족들의 땅으로만 기억되는 그 땅은 주인 없는 ‘변경’에 불과할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그 땅은 요동지방에 수천년 동안 자신의 독자적 문화권을 유지하며 살아온 그 땅의 주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고구려 역사는 그 땅의 주인들에게 돌려줘야 마땅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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