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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남북 연합이 알파와 오메가다

등록 2004-08-27 00:00 수정 2020-05-03 04:23

[학술- 다시, 동아시아!]

한반도를 겨냥한 중국의 동북공정… 평화통일로 가는 남과 북의 창조적 연합이 중요

▣ 최원식/ 인하대 교수 · 국문학

최근 한국은 뜻밖의 일격으로 안팎 곱사등이 신세가 됐다. 중국의 동북공정, 이름도 낯선 이 도깨비방망이에 휘둘려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수교 이후 너무나 잘나가던 한-중 관계였기에 그 충격은 더욱 크지 않을 수 없다. 1·4후퇴 때 얼어붙은 산하에 인해전술로 출몰한 ‘중공군’의 이미지로 고착된 중국을 염두에 둘 때, 1992년 한-중 수교를 전후하여 단숨에 우의를 회복한 속도는 가히 눈부신 것이었다. 그동안의 단절을 조롱이라도 하는 양, 한국에는 중국 열풍이 몰아쳤다. 왕년의 모화파(慕華派)가 다시 등장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 바람은 거셌다. 특히 부시의 등장 이후 남북 관계의 순항을 염원하는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일본의 반북적 태도를 제어하며 중재자의 역할을 맡아나선 중국에 대해 각별한 미쁨을 지닐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기에 일말의 우려에도 이 흐름을 일종의 대세로 수긍하였던 터다. 이런 차에 중국이 동북공정을 막무가내로 들이미는 일련의 행태 앞에서 한국은 그야말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꼴을 면치 못한 채, 손발이 어지러울 뿐이다.

도대체 중국은 갑자기 왜 이런 무리수를 두는 것일까? 이미 2002년에 동북공정을 발주했다고 하니 ‘갑자기’는 중국이 아니라 뒤늦게 발견해 허둥거리는 우리에 더 해당될 터이다. 한-중 수교 10주년을 맞이하는 2002년을 동북공정으로 은밀히 화답한 중국도 대단(?)하거니와, 매사에 급격한 쏠림으로 요동치는 한국 사회의 비대칭성이 더욱 문제다.

중국도 일본 · 미국과 오십보백보

우리 자신이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없지 않다. 빗장을 연 초기, 중국의 현실을 목격한 한국 여행자들이 졸부의 깜냥으로 중국을 깔보고 동북지방을 헤집고 다니며 ‘만주는 우리 땅!’이라고 외쳐댔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일부 철부지 한국인들의 언동을 기화로 동북공정을 탱크처럼 관철하는 중국의 태도가 변호될 수는 없다. 중국은 일본과 미국을 닮으려 하는가? 식민지 지배를 옹호하는 단속적(斷續的)인 망언의 행렬로 한국인의 마음을 저 밑바닥에서부터 할퀴는 일본 우익들의 내숭, 그리고 일제의 후계자임을 굳이 숨기지 않는 미국 국가주의자들의 오만- 사실 한-중 수교 이후 몰아친 중국 열풍에는 미국과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실망이 큰 몫을 하였다. 최근 사태로 한국 사회 안에 중국에 대한 실망이 밑으로부터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중국도 일본·미국과 오십보백보라는 때늦은 탄식이 무겁다.

지금 중국은 동북3성(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에 대한 대규모 재단장(리모델링)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옛 만주국의 영역에 속하는 이 거대하고 비옥한 평원지대가, 특히 상하이를 비롯한 강남 해안지역의 비약적인 발전을 축으로 삼는 개혁개방 이후 낙후한 내륙으로 정체돼왔던 것은 이미 주지하는 터이다. 사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1949년) 초기에는 동북지방이 사회주의 공업화의 견인차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만주국’ 시절의 인프라를 활용할 이점도 없지 않았지만 소련과 북한이 모두 잘나가는 시절인지라 그 파이프라인인 동북지방이 선도적이었던 것이다. 알다시피 중국의 초기 공업화는 소련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련의 강력한 원조 속에 진행됐다. 그런데 미국의 봉쇄 정책이란 조건 속에 1957년 세계공산당대회를 즈음하여 평화공존 노선을 채택한 소련공산당과 대립하면서 중국공산당은 자력갱생 노선에 입각한 대약진운동으로 달려나갔다. 대약진운동의 좌절이 중국을 오히려 이념적인 것에 대한 과잉으로 인도하면서 마침내 1960년대 중반부터 10여년에 걸친 문화대혁명의 광풍에 휩싸였다. 이 와중에서 소련을 축으로 하는 20세기 사회주의 전체가 안으로 쇠퇴하면서 동북지방도 침체의 길을 걷게 됐다. 1978년 이후 대전환기를 통과하면서 최근 중국은 다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는 데 반해, 동북지방은 낙후한 농업지역으로 방치됐던 것이다. 여기에는 당 중앙의 약간은 무의식적 방관도 없지 않았다.

통일이 아니라 현상유지를 희망

중국 역대의 한족 왕조는 주로 북방 유목민족들이 거처해온 이 지역을 새외(塞外), 즉 중국의 바깥으로 여겨왔다. 더구나 마지막 왕조 청은 자신들의 기원지인 이 지역을 봉금으로 묶어 그 외부성을 강화했다. 바로 이 약한 고리를 취해 일제는 이 지역에 만주국을 둠으로써 새외의 성격이 심화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중국에 있어서 만주는 일종의 콤플렉스다. 중국에서 기피해야 할 용어로 세개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지나’, 이는 일제가 중국이란 용어 대신에 만든 것인데 은연중에 중국에 대한 경멸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양쯔강’, 이는 서양인들이 장강(長江)에 붙인 식민주의적 이름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요즘은 이에 대한 금기가 좀 완화된 듯싶다. 중국인들도 양쯔강이란 용어를 더러 사용하기 때문이다). 셋째가 ‘만주’, 이는 주로 일제가 세운 만주국 때문인데, 중국인들은 만주국을 지칭할 때 반드시 ‘위(僞)만주국’(즉, 가짜 만주국 또는 괴뢰 민주국)이라 한다. 만주란 용어에 대한 중국의 예민한 반응은 이 지역의 이중성을 중국 스스로 의식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만주가 2차대전 뒤 수복한 중국의 영토, 즉 동북지방이지만 이 지역을 거처로 삼아온 수많은 소수민족의 입장에서는 지배자가 일본에서 중국으로 교체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은 동북을 중국 안에 두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바깥에 두는 기묘한 착잡함을 보인다. 이는 청에 대한 중국의 이중성과도 연결된다. 중국인들은 청을 한족에 대한 정복 왕조로 격렬히 비판하면서도 중국의 판도를 최대로 넓힌 청의 위대한 정복 활동에 숨길 수 없는 경의를 보내기도 하는 것이다.

동북지방에 대해 약간은 의도적 방관을 취한 전통적 태도에서 벗어나 중국은 왜 최근 동북공정으로 고삐를 바짝 죄는 것일까? 동북공정은 여전히 새외적 성격을 지닌 동북지방을 확고하게 중국 안으로 편입하는 작업이다. 안으로 다지는 작업이란 바깥의 경계를 재조정한다는 것을 뜻할진대, 중국을 이 방향으로 저돌하게 한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가? 동북공정이 고구려를 들고 나오는 데서 명백해지듯이, 바람은 한반도에서 불어오는 것이다. 한반도의 정세에 대한 중국의 판단에 무언가 변화가 있다는 얘기다. 알다시피 중국은 한반도 정세의 급격한 변동, 즉 남 또는 북에 의한 통일이 아니라 현상유지를 희망한다. 혹시나 한반도에서 6·25 또는 그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해 그에 말려드는 위험을 한사코 피하고자 한다. 개혁개방 이후 쌓아온 경제발전의 기조를 견지하기 위해서는 다시 미국과 전쟁하게 되는 도박판에서 이탈하는 것이 결정적 전제일진대, 중국이 한반도에서의 전쟁 발발을 방지하려는 방편으로 제안된 6자회담에 적극적인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최근 북한과 접한 국경, 즉 두만강·압록강 연안에 기존의 변방부대를 빼고 중앙 통제의 전투부대를 배치했다. 동북공정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려운 이 조치 역시 한반도 정세에 대한 중국의 판단이 개재되어 있는 듯하다. 가능한 한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꾀하되 다른 진전에도 대비하는 다중 포석인데, 그 대비책으로 낙후한 동북을 중국 개혁개방의 궤도 속에 확고하게 포섭하는 전략이 채택된 것이다. 더구나 최근 러시아가 부상하고 있다. 소련 해체 이후 쇠퇴 일로를 걷던 러시아가 최근 경제부흥 속에 유럽과 아시아의 가교를 자처하며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중·일을 상호경쟁케 하는 송유관, 가스관 그리고 철도 연결 문제는 대표적인 것이다.

러시아 부상하고 미국 심상치 않고

또 미국의 동향도 심상치 않다. 북핵 위기 속에 제기된 주한미군 재배치가 결국 동북아시아에서 말라카해협에 이르는 긴 해안선에 대한 새로운 대응이라는 점은 중국을 자극한다. 중국은 바로 이런 정세를 감안하면서 북한·러시아와 접경한데다 강력한 모국을 지닌 조선족의 주거점인 동북지방을 우선 챙기게 된 것이 아닐까?

이 모든 요란한 대응의 핵에 한반도가 자리한다. 남과 북의 분단을 빌미로 이뤄지는 주변 4강의 충돌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평화통일로 가는 남과 북의 창조적 연합이 필수적이다. 주변 정세의 용트림에 대한 이해를 남북이 공유하면서 이 신뢰를 바탕으로 주변 4강을 성심으로 달래서 남북 연합을 구축하는 것이 동아시아론의 알파요 오메가일 터인데, 참으로 갈 길이 멀다.

☞ ‘다시, 동아시아!’는 어떤 반론에도 열려 있습니다. <u>bretolt@hani.co.kr</u>로 제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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