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모범답안식 감동을 종착지로 삼은 스필버그의 새 드라마 </font>
▣ 김은형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dmsgud@hani.co.kr
영리한 이야기꾼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새 영화 은 가 스틸사진처럼 보여줬던 공항의 역설적 매력을 ‘웃음과 감동’이라는 모범답안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프랑스 드골 공항의 가게와 가게 사이 좁은 공간에서 1988년부터 살아온 이란인의 황당하고 어이없는 실화를 영화화했지만, 영화의 초기 설정은 9·11 이후 살벌해진 미국 공항의 풍경에 대한 사례연구처럼 읽힌다.
‘크라코지아’라는 (가상의) 동구유럽 국가에서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한 빅토르 나보스키(톰 행크스)는 입국이 좌절된다. 그가 날아오는 사이 고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크라코지아는 잠정적으로 유령국가가 돼버린 것. 출입국 사무소에 ‘끌려간’ 그는 허가가 날 때까지 공항 밖의 미국 땅을 절대로 밟을 수 없다는 금지명령을 밟는다.
여기까지가 ‘현실’이라면 그 다음부터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출입국 관리 책임자 딕슨(스탠리 투치)의 예상과 달리 빅토르는 꿋꿋하게 혹은 천연덕스럽게 공항 생활에 빠르게 적응해간다. 모두가 자신의 갈 길에 바빠 옆사람을 돌아보지 못하는 이곳에서 그는 마치 자신이 연기했던 의 ‘척’처럼,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처럼 생존방법을 조금씩 터득해나간다.
빅토르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딕슨과 핍박받는 ‘망명자’ 빅토르가 보여주는 ‘톰과 제리’식 애증 관계는 공항을 채우는 조연들(이자 영화 을 채우는 조연들)인 청소부, 음식배달부 등 ‘화면 밖’ 사람들에게서 비쳐지는 인간미와 함께 이 보여주는 매력적인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인 러시아 여행자의 약품 소동이 지난 뒤부터 은 너무 가벼운 ‘감동’ 모드로 일관한다. 영어를 못하는 러시아인이, 위독한 아버지를 위해 가져온 약을 서류 없이는 절대로 통과할 수 없다는 딕슨과 벌이는 인질극을 해결한 빅토르는 인도인 청소부, 히스패닉 음식배달부 등 비주류뿐 아니라 모든 공항 관계자들의 영웅이 된다. 딕슨을 ‘엿먹이고’ 돌아온 빅토르가 마치 올림픽 영웅처럼 수많은 공항 사람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장면은 낯간지러울 정도다.
이후 빅토르는 빼어난 목수로, 사랑의 전령사로 그리고 본인 스스로 낭만적인 사랑의 주인공으로 거듭나며 ‘영웅’의 입지를 다진다. 로빈슨 크루소가 대중의 슈퍼스타가 돼갈수록 영화는 초반에 보여주던 공항의 ‘진짜’ 현실에서 벗어나 점점 더 파라다이스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드라마가 된다. 뉴욕의 J.F.K 공항을 통과하며 지문에, 안구 스캔까지 받으면서도 직원의 싸늘한 눈초리에 주눅들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유쾌하게 공감할 수 없는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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