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벌판의 아이에게 던져진 기괴한 스릴러
▣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돌이켜 생각해보니, 가브리엘 살바토레의 (1992)는 이상한 반전 영화였다. 아니, 반전영화가 맞기는 했을까. 막바지에 이른 2차대전 당시 일군의 이탈리아 병사들이 그리스의 작은 섬에서 보낸 천국 같은 나날의 한철에 대한 이야기. 군인을 파견한 사령부도 명령을 수행해야 할 군인들도 서로의 존재를 망각했고, 병사들은 전쟁 중이란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채 섬에서 자유와 사랑 따위에 취한 (남자)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갔다. 는 낭만적 유희로 전쟁의 소모성을 우회 공격하는 영화였다. 성공적이었든 그렇지 않았든 명령과 복종의 계급을 증발시킨, 희귀한 전쟁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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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이상한 성장영화다. 가브리엘 살바토레는 에서 그랬듯 장르와 사건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휘저어가며 삶의 비밀스런 구석들을 들춰낸다. 이번에도 의심의 여지 없이 그 솜씨와 스타일이 성공적이다. 도입부, 황금빛 벌판을 내달리는 아이들의 첫 모습에서 맑고 순수한 동심이 자연과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는지를 시각적 쾌감과 함께 안겨준다. 그리고 곧 동심은 어른 세계를 빰치는 혹은 흉내낸 힘의 위계로 바뀌더니 급기야 분위기는 스릴러로 돌변한다. 들판 한가운데 버려진 집에서 놀던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뒤 소년 미카엘은 여동생이 흘린 안경을 찾으러 홀로 되돌아온다. 우연히 발견한 캄캄한 지하동굴 속을 의아스런 눈초리로 응시하던 미카엘이 기겁을 한다. 어둠 속에서 툭, 사람의 발목이 튀어나왔다. 겁에 질려 집으로 한걸음에 내달려온 미카엘.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두려움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다음날 다시 찾아간 그곳에서 미카엘은 예쁘장한 소년이 쇠사슬에 묶여 감금당한 사실을 알게 된다.
때맞춰 멀리서 일하던 아버지가 돌아왔다. 미카엘은 어머니보다 사나이다운 아버지와 더 가까운 듯하다. 소년의 상상력은 멀리멀리 날아가 컴컴한 동굴 속의 소년이 아버지가 숨겨둔 자식일 거라는 데에 이른다. 그렇지만 진실은 그보다 훨씬 흉칙하다.
의아스러운 건 미카엘이 하나씩 발견해나가는 세상의 비밀이 몹시 충격적인데도 그는 도대체 겁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아버지를, 어머니를 사랑한다. 그렇지만 영화는 아버지 살해의 충동을 넌지시 깔고 있다. 사건 이후를 보여주진 않지만 미카엘의 사랑과 믿음이 예전 같을 수 없을 거라는 건 분명하다.
는 공포스럽고 기괴한 세상과 대면해가는 소년을 다룬 성장영화이지만 가족의 이기적 본성을 도발하는 스릴러 구조를 첨가해놓음으로써 장르 복합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비록 우회해가는 듯하지만 섬뜩할 정도로 분명한 테마! 심지어 이를 시적으로 아름답게 풀어갈 만큼 가브리엘 살바토레의 솜씨는 노련하고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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