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포크록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진심 담아 날리는 홈런타 가사를 들어보라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출퇴근길을 함께하던 ○번 버스를 잃어버렸다. 타 지역민에게 민망한 서울 시민들의 요란함은 ‘대중교통 애용자’라는 서민의 이름으로 양해를 구해야겠다. 도시 생활의 ‘발’이 꼬이니 상상 이상의 스트레스가 머리를 꾹꾹 누른다. 이 지근거림, 누구와 얘기 나누나.
그러다 문득 361번 버스를 쿵작쿵작 노래하던 ‘달빛요정’이 생각났다. “달려라 날아라 하늘 끝까지/ 밟아라 엔진이 불타 터져버릴 때까지”( 중)를 강요당하던 그 동네 버스는 괜찮을까.
음반사 취직… 해고 뒤 지하 세계로
화창한 지상에서 만난 지하 생활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361번의 운명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게 말이죠. 번호는 죽고, 노선도 변경됐습니다.” 달빛요정은 말을 잇는다. “청계천도 버스도 무턱대고 밀어버리는군요. 이 도시는 추억을 허락하지 않아요.”
씁쓸한 감상을 전해오는 달빛요정. 1인 포크록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32)씨다. 그의 실체는 1집 <infield fly>의 여섯 번째 곡 에서 짐작할 수 있다. “9회 말 주자만루 투아웃 투쓰리 풀카운트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가 온 거야/ 오늘을 기다렸어 지금이 바로 그때/ 모두 다 일어나 외쳐라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만루홈런!/ 찬양하라 위대한 그 이름 달빛요정.” 과대망상의 즐거움을 껴안고 살아가는 아저씨인가. 그도 홈페이지에서 말했다. “추구하는 음악이나 소유한 세계관·가치관에 비해 너무 아리따운 이름인 것은 스스로도 인정한다"
노래 만들기가 주종목이라 ‘가수’라 하면 섭섭해할지 모르겠다. 대학 시절 통기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음악을 업이라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국제통화기금(IMF)의 터널로 들어가면서 마땅한 직장을 찾지 못하고 음반사에서 인터넷 방송국 PD와 오디션 관리자를 맡으면서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인터넷 저작권 문제의 공론화 조짐에 따라 방송국은 폐지되고 비정규직 사원은 해고당했다. 할 수 없이 장비를 싸들고 지하로 들어가 요정이 됐다.
당신은 ‘100원짜리 모아 1천만원 통장 만들고, 그런 통장 10개로 1억원 모았다’는 저축의 신화를 믿는가. 달빛요정은 습작곡 200곡 중 몇곡을 추려 가내수공업으로 2003년 2월6일 CD 2천장을 찍고 1번부터 팔기 시작했다. 1년 뒤 1천장 고지 달성, 2004년 3월2일 한정판 1599번 판매완료. 드디어 4월22일엔 정식 유통 음반을 발매하면서 반창회급 신화를 이룩했다. 정식 음반 3천장 내놨고 7월 중순에 다시 1천장 찍는다고 한다. 이에 그는 말한다. “4월22일엔 내가 드디어 얼굴 없는 ‘사이버’ 가수에서 세상에 존재하는 가수가 됐구나라는 뿌듯함이 있었죠. 그런데 두세달 지나도 여전히 가난하니 요즘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서른 넘은 아저씨에게 남겨진 ‘소년’이 묻어나온다. 깔끔한 목소리가 텁텁한 가사와 만나 포크록의 서정성을 만든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얘기했지만, 그건 노래 듣는 이의 감정이기도 하다. 진심이 담긴 가사, 참 오랜만이다.
‘박찬호 20승’에 담긴 가사 철학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골똘히 가사를 생각하죠. 나름대로 체계적인 가사랍니다. 그러다가 그녀에게 차이고 술 마시고 신세 한탄 노래도 만들게 되죠.” 그래서 자기 인생을 ‘스키다시’라고 했나. “졸업하고 처음 나간 동창회 똑똑하던 반장놈은 ○○○○ 나온 ○○○○가 되었고 예쁘던 내 짝꿍은 ○에 ○○ ○○○○○○랑 결혼을 했다고 하더군/ 하지만 나는 뭐 잘났나 스끼다시 내 인생/ 스포츠신문 같은 나의 노래/ …언제쯤 사시미가 될 수 있을까….” 가사의 도발이 목소리의 서정미를 덮어버리면 재미없다. 홈페이지(http://www.rockwillneverdie.com)에 접속하면 노래들을 들을 수 있다.
그는 가사 훈련을 꽤 한 모양이다. 다중적 텍스트를 만드는 연습을 했단다. “40%는 내 얘기로, 60%는 다른 이들 느낌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박찬호 20승’같은 단어들도 사람에 따라 제각각의 의미를 가져요.” 80년대, 90년대 초반 젊은 시절을 보냈고, 데모의 공포심을 기억하는 주변 이들은 민중가요 같다며 무겁게 여기는데, 어린 친구들은 부담 없이 가볍게 즐기는 게 신기하단다. “요즘 조선음악 가사들은 중학생 수준이에요. 80년대 김현식·유재하·김광석·꽃다지 감성들이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왜 이 재미난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을까. 사실 홈런타 가사들은 방송국에서 문전박대당했다. 는 장애인 비하, 은 국적 불명의 언어라는 이유로 금지당했다. “저도 ‘스키다시’가 올바른 언어가 아니라는 거 알아요. 청소년 교육상 제 노래가 아주 좋은 것도 아니에요. 다만 그 단어 외엔 표현할 만한 게 없었고, 그냥 제 정서예요.“ 알고 보면 그는 포크록 스타일이라 하드코어나 메탈처럼 강하게 울부짖지 못한다. 1집 전반부는 울퉁불퉁 모난 인생 사는 얘기들이 있고, 후반부엔 알싸하지조차 못하는 서른살 순정들이 간지러운 순풍이 되어 흐른다.
“싸이월드 배경음악 되어도 전 한푼도 못 받죠. 노래는 공짜가 아니에요. 100원이라도 받고 싶어요. 돈 버는 사람 따로, 콘텐츠 만드는 사람 따로니 다들 음악 장비 팔고 장사해야지라고 얘기해요.” 클럽에서 춤추는 데 2만원 쓰는 건 안 아깝고 음반 9천원 주고 사긴 그렇게 어렵냐고 묻는다.
그래도 그는 항상 낙관적이다. “알 수 없는 그 어떤 힘이 언제나 날 지켜주고 있어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거야 난 행운아”( 중) 달빛요정이 베짱이 기질 가지고 투박한 일상을 사랑하며 살자고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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