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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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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퍼니 퍼레이드, 속편 한번 볼래?

등록 2004-07-16 00:00 수정 2020-05-03 04:23

‘Funny Sculpture! Funny Painting!’ 3탄… 기발한 웃음으로 관객몰이 하더니 올해도 찾아왔네

▣ 윤옥영/ 가나아트센터 큐레이터

…. 열거한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과연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올 듯도 하다. 여러 가지 대답 가운데 의도한 정답은 이렇다. 여하한 이유에서든 한마디로 인기 만점이어서 1편의 뒤를 이어 2편과 3편까지 제작된 영화들이라는 것. 영화가 3편까지 제작된 데는 아무래도 이유가 있겠다. 기획 단계부터 3부작일 수도 있으나 이 경우에도 1편이 관객몰이에 성공하지 못하면 연이어 2편, 3편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다. 찌를 듯한 인기에 절대적 요청으로 2편이 만들어진 경우에도 계속적인 성공을 바탕으로 3편까지 제작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대중의 인기를 바탕으로 대박 난 영화인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시 종로구 평창동 갤러리 ‘세줄’에 전시된 ‘Funny Sculpture! Funny Painting!’ 3탄(8월24일까지)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 하나의 전시가 해를 거듭하며 제2, 제3의 전시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힘은 그 전시를 계속해야 하는 적절한 취지와 이를 뒷받침해주는 적절한 인기, 관객의 호응이다. 젊은 작가를 지원한다는 취지의 창작 지원 프로그램이면서 ‘웃음’이라는 주제로 대중의 호응을 얻어 세 번째를 맞은 전시 ‘Funny Sculpture! Funny Painting! Ⅲ’을 스케치해보자.

강아지 풍선 · 사이버 의사… 웃긴다 웃겨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갤러리를 향해 등산 아닌 약간의 등산을 하다 보면 멀리 건물 현수막 아래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발륜 팍의 빨간색 거대한 강아지 풍선이다. 규모에 어울리지 않는 앙증맞은 빨간색 몸체에 알루미늄 목걸이를 찬 우리의 멍멍이는 비닐과 인공 모피가 혼합된 변종의 형태로 줄에 묶여 멀리 유토피아를 바라보는 형상을 하고 있다. 무기력해 보이는 게 서글프도록 귀엽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갤러리 입구를 들어서면 계속 주절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모습을 캐스팅한 이석영의 작품 〈Incert Coin〉이다. 몸 안에 스피커와 센서를 장착한 작가의 분신은 평상시에는 애꿎은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하고 있다가 관객이 입에 돈을 넣으면 어눌한 목소리로 “고마워~” 한다. 웃긴다.

그 옆에 또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는 누군가의 분신들이 떠들어대는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없이 모퉁이를 돌아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바닥에 깔린 양진옥의 작품 때문이다. 짓눌린 현대인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 는 관객이 밟거나 지나가면 웃음소리를 들려준다. 다소 끔찍하다. 살가죽이 너덜너덜하여 바닥에 널려진 채 머리만 겨우 들고 애절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이 남자를 정작 누구도 밟지 못하고 피해 지나가기만 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세숫대야가 하나 놓였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니 우스운 얼굴 하나가 겨우 코만 반쯤 내놓고는 숨을 쉬기 위해 마구 벌름거리며 공기방울을 뿜어낸다. 힘들어 보이지만 그 모양새가 우습다. 2층 전시장에선 한창 사이버 카운슬링이 진행 중인데, 사이버 의사 로봇의 목소리가 꽤나 시끄럽다. 노진아의 작품 〈사이버 카운슬러 Psy-ber-chiatrist〉. 주변을 서성대고 있는 나를 주술적(?)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좀 괴이한 얼굴의 로봇 정신과 정문의가 부른다. 서성대지 말고 와서 앉아 고민을 상담하라고. 로봇 의사의 지시에 따라 간단한 신상명세를 입력하고 나면 이름을 부르며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느린 속도에 답답한 마음을 참으며 호기심에 답해가다 보니 믿거나 말거나 통계에 의한 분석 결과가 말도 안 되게 나의 운세나 성격, 미래를 점치고 있다. 누군가가 만든 프로그램에 반응하며 기계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씁쓸하게 웃는다.

그리고 잠시 뒤, 맞은편에 설치된 신원재의 거대한 설치 를 대면하면서 이내 향수에 잠긴다. 어린 시절의 한장을 수놓았던 ‘마징가 제트’. 무엇이든 해결하는 흑기사의 대명사 마징가가 현실화화여 눈앞에 있다. 반갑다. 여전히 선한 모습이지만, 예전의 능력을 다시 보여줄 것 같지는 않다. 옆에는 공공장소에서 흔히 보는 화장실 표식이 하나 벽에 걸려 있다. 지용호의 〈Toilet〉. 푸른색과 붉은색의 남녀 표식이 점잖게 있다가 갑자기 남자가 가운데 벽을 기어오른다. 벽 너머를 엿보고 싶은 마음이 자제가 안 되는 것이다. 여기에 대리만족을 느끼는 사람들. 10여명의 작가들이 갤러리 곳곳에 펼쳐놓은 작품들은 현대인에게 웃음이란 무엇이며, 이제 우리는 무엇을 통해서 어떤 웃음을 웃을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젊은 감수성으로 숨통 틔워줄게

오늘날 우리는 어린 시절의 웃음의 코드를 잃어버렸다. 때때로 씁쓸하게 웃거나 비웃어보는 일 외에 하루 종일 한번이라도 아무 생각 없이 크게 웃어보기란 쉽지 않다. 작은 것 하나에도 까르르 웃던 어린 시절은 이제 아련한 추억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무엇으로 웃는가. 지난 시절의 향수에서 현실에 대한 통렬한 풍자까지 바쁜 현실 속에서 문득 인식하는 우리의 모습을 젊은 감수성으로 의외의 방법을 동원해 제시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대면하면서 피식~, 키득키득, 푸하하, 후후~, 히히! 갖가지 형태로 웃어본다.

창작 지원 프로그램으로 공모 형식을 통해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끌어낸다는 의의가 고스란히 살아난다. 갤러리 세줄의 연례 기획전 ‘Funny Sculpture! Funny Painting!’은 ‘웃음’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풀어 관객들의 관심 끌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 세대의 웃음에 대해서 명쾌한 답을 찾는다기보다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갖가지 웃음이 발생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숨통 틔워보자는 기획 의도를 어느 정도 설득력 있게 풀어낸 결과다. 젊은 작가다운 재기 발랄함과 시선을 끄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있고, 그러한 작품을 발견하는 반가움과 신선함이 공존하는 전시를 통해서 잊었던, 혹은 잃었던 웃음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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