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무한의 패러디 광고들… 드라마 · 영화 · 유명인 넘어 타사 광고까지 ‘전복’시키는 재기발랄함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지루한 영화 포스터 변조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컴퓨터 그래픽과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패러디는 ‘생활’이 됐다. 영화 에 나온 송강호·김상경이 ㄴ빌딩 ‘인사의 추억’(사내 인화 캠페인), ㅎ빌딩 ‘확장의 추억’(판매 확장 독려) 포스터 외에도 여러 곳에 재출연하느라 바쁠 거라는 거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소설 가 중세 기사도 소설을 패러디했듯이 ‘패러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이디어 조달법으로 흔히 사용돼왔다.
광고의 세계도 예외가 아니다. 눈길끌기가 ‘밥줄’인 광고인들도 손쉽게 보장되는 유머의 유혹 앞에선 패러디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엄숙한 세련미’ 무너뜨린 컵라면 광고
그래서 인기 영화·드라마들은 언제나 다시 찾아온다. 영화 나 드라마 이 연상되는 광고가 어디 한둘인가. 하지만 원본의 인지도를 활용한 이들 광고는 엄정한 의미에서 패러디라 보긴 어렵다. 급한 마음에 형식은 차용했지만 원본의 권위에만 기대고 있어 차용의 이유가 부족해 보인다. 영화 필름 그대로 가져온 최근의 한 카드회사 광고라면 패러디가 될까. 진짜(원본 필름)와 가짜(광고 자막)가 분명하게(?) 혼재된 이 광고는 저작권료·초상권료 등으로 촬영료·모델료를 대신했기에 제작비 부담까지 덜어준 효자 광고다(현대카드 M).


고전 소설·위인 등을 활용한다면 비록 트렌디하진 않아도 원본의 권위가 ‘전복’되는 패러디 특유의 맛이 배어나온다. 헤밍웨이의 소설 가 연상되는 장면에서 신구 아저씨가 ‘니들이 게맛을 알아?’라고 외치는 순간 ‘고전’은 뒤집어지고 소비자도 뒤집어졌다(롯데리아 크랩버거). 그리하여 어떤 이들은 ‘제도’까지 뒤집었으니, 한 소주 광고는 이동통신업계의 뜨거운 ‘번호이동성제도’를 살짝 바꿔 차가운 ‘소주이동성제도’로 만들었다. 술친구와 안주는 그대로 두고 부드러운 소주로 옮기라니, 형식의 반복과 내용의 파괴가 재미있다(산소주).
그래도 가장 도전적인 광고를 꼽자면 역시 겁 없이 ‘광고를 패러디한 광고’들이다. 지난해 초부터 슬슬 나타난 이 광고들은 ‘타 광고와의 절대 차별’을 외치는 엄숙한 직업의식을 비틀고 유쾌함을 생산한다. 대선을 앞두고 심각하게 흘린 ‘노무현의 눈물’은 그대로 ‘장나라의 눈물’(파파이스 케이준치킨)이 됐는데 사실 그녀는 닭이 맛있다고 울고 있었다.
일부 대중들은 ‘경박성’을 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도전은 계속됐다. 패러디라 하기엔 풍자의 맛이 부족한 감이 있지만 꽃미남의 피부 대결을 속옷 대결로 바꾸거나(임프레션) 1989년 전국을 열광시킨 ‘따봉’을 ‘맛있구마’로 바꾼 광고(롯데제과)들도 광고 주제에 광고를 따라한 ‘겁 없는 아이들’이다.
정점은 한 컵라면 광고다. 패러디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 광고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쿨한 광고’로 선풍적 인기를 얻은 SK텔레텍의 스카이 뮤직폰 광고를 빌렸다. 원 광고와 같은 배경음악이 흐르는 클럽엔 세련된 분위기가 감도는데, 이런, 쿨걸·쿨보이들이 라면 뚜껑 들고 춤추고 있다. 어쩔 수 없다. 귀엽게 망가지는데 누가 라면 사랑을 거부하겠는가. 자막 ‘It’s Different’ 대신 ‘It’s Delicious’가 나올 때면 우린 기꺼이 허를 찔려준다(한국야쿠르트 왕뚜껑). SK텔레텍과 광고회사의 양해를 얻어 만든 이 광고는 원본에서 탄탄하게 구축한 ‘엄숙한 세련미’를 솔직하고 기발하게 ‘전복’했다. 성공은 매출로 증명됐는데, 한국야쿠르트쪽에 따르면 올해 4월까지의 연간 누적 매출액은 약 127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의 약 95억원보다 32.1% 늘었다.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로 광고가 해결되던 호시절이 있었다. 타 제품과의 차별점만 얘기해도 광고가 됐다. 하지만 갈수록 공장은 비슷한 제품들을 쏟아내고, 제품들은 광고에게 자신의 개성을 만들어달라고 칭얼거린다. 그런 압박을 딛고 일어난 컵라면 광고의 상혼에, 소비자들은 정확한 맛은 알려주지 못하는 ‘광고의 부도덕함’을 잠시 잊고 구매를 진행한다. 다음엔 누가 기발한 ‘고단수 광고’를 만들어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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