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영화- 타란티노의 ‘쿵후 만세’

등록 2004-05-14 00:00 수정 2020-05-03 04:23

‘피의 증오극’을 위해 유머의 내공까지 쌓았더냐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1편에서 홍콩 쇼브러더스의 로고까지 타이틀에 등장시키며 동양 액션영화에 대한 경배를 감추지 않았던 쿠엔틴 타란티노의 익살 경연은 라고 멈출 이유가 없다. 다만 우마 서먼에게 의 이소룡 복장을 입히고 검의 달인 하토리 한조의 칼을 안겨줘 청엽옥을 피바다를 만들던 심각하고 잔혹한 액션은 사라지고, 낄낄거리게 만드는 유머로 스타일을 바꿨다.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에게 쿵후를 전수하며 수제자로 키우는 파이 메이(고든 리우, 고든 리우는 70년대 홍콩 쇼브러더스를 대표하는 액션 스타다)만 해도 그렇다. 파이 메이는 초절정 고수이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에선 웃음을 참기 어렵다. 검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 가공할 내공과 우스꽝스런 슬랩스틱 코믹을 파이 메이에게 종이 한장 차이로 배치해놓았는데, 이런 식의 묘미에 매료될 취향이라면 2편은 1편보다 단연 뛰어나다.

이런 유머가 캐릭터에만 담긴 건 아니다. 오지심장파열술이라는 필살기는 가장 비감한 순간에 등장하지만 가장 어이없이 사용된다. 더 브라이드가 엘 드라이버(대릴 한나)를 처단할 때, 엘 드라이버는 목숨이 끊어질 법한 아슬아슬한 순간에 기막힌 코믹 연기를 선보인다. 이런 식의 유머를 찾자면 끝도 없을 것이다. 물론 속도감의 조절, 풀샷과 클로즈업의 교차, 스토리의 시간과 공간 재구성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타란티노’표 연출력은 1편과 달라질 게 없어서 유머가 아니고도 즐길 영화적 재미는 그득하다.

파이 메이가 오래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비중은 크다. 엘 드라이버의 애꾸눈에 얽힌 비밀도 그가 쥐고 있으며, 더 브라이드에게 가르친 송판 격파법은 1편과 2편을 통틀어 가장 큰 위기에 빠졌던 그를 구원해준다. 파이 메이보다 더 중요한 인물은 단연 빌(데이비드 캐러딘, 캐러딘은 미국인들이 홍콩 액션에 관심을 가지면서 탄생한 70년대 히트 TV시리즈 의 주인공)이다. 데들리 바이퍼의 냉혹한 보스 빌은 왜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고 말하는 더 브라이드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었으며, ‘브라이드가 딸이 살아 있는 걸 아는가’라고 읊조린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등의 사연이 심리전처럼 펼쳐지는 긴 대화를 통해 밝혀진다.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결말이 결정적인 건 아니다. 평범한 남자와의 결혼식장에 찾아와 ‘킬링 필드’를 선사하고 돌아간 킬러 동료들에 대한 더 브라이드의 복수극은 어쨌든 마감돼야 하니까. 단출해 보일지 모르는 스토리를 위해 타란티노는 가지치기를 시작했다. 의 대략적인 구성을 마쳤고, 의 전편에 해당하는 애니메이션도 제작한다. 의 주인공은 더 브라이드에 의해 희생된 버니타 크린의 딸 니키다. 니키가 차세대 더 브라이드가 된다는 내용. 애니메이션 버전은 에 등장하는 포주 에스테비안과 파이 메이, 하토리 한조가 빌과 어떤 인연을 맺었는지를 중심으로 펼쳐질 예정이다. 1편에서 잠시 애니메이션을 선보였던 일본의 I.G프로덕션과 함께 재패니메이션 스타일로 만들 것이라고.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