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 · 고속철 객실에서의 디지털 아트 향연 '아트 앤 사이언스 스테이션'전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영국 런던대학의 과학철학자 아서 밀러는 에서 “현대과학은 곧 아이슈타인이고, 현대미술은 곧 피카소”라고 단언했다.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았을 뿐 활동한 분야도 다르고 서로 친분도 없었다. 그렇다고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1905년)은 한 시점에서 벗어나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모습을 한 면에 중첩해 그리는 피카소의 ‘큐비즘’(Cubism)에 적잖게 기대었다. 미술에서 발견한 기하학이 물리학에서 4차원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통찰로 이어졌던 것이다.
과학과 예술은 탄생 과정부터 가까운 거리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창조적 영감을 얻었다. 사실 둘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 고대의 경우 창작품을 만들어내는 행위인 ‘예술’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인 ‘기술’이 거의 구분되지 않았다. 조각만 해도 예술적 감각에다 고도의 기술이 없으면 제작이 아예 불가능했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회화·조각·건축 등에 관한 예술적 재능에다 인체해부·유체역학·기계공학 등에 전문적 식견을 갖춘 과학자였다.
인류 문명의 위대한 성취를 이뤄낸 과학과 예술이 디지털 사회에서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 21세기 예술계의 최대 화두는 ‘웹’(Web)이라 할 수 있다. 흔히 ‘넷아트’(Net Art)라 불리는 디지털 아트는 예술에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기술을 접목하고 있다. 요즘 서울역 신역사와 고속철도(KTX) 객차 내에서 선보이는 전(4월30일까지)은 변태와 진화를 거듭하는 과학과 정보기술 그리고 예술의 만남, 그 현주소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공공의 영역에서 디지털 아트와 과학적 콘텐츠가 환상적으로 어울리는 것이다.
공공미술 , 3D 모델링이 움직여
디지털 아트 전문 갤러리인 ‘아트센터 나비’가 기획하고 과학문화재단과 철도청이 후원한 이번 전시는 서울이라는 거대도시를 대변하고 소통의 허브 구실을 하는 서울역을 배경으로 한다. 승강장을 바로 내려다보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과학과 예술의 창의적 결합과 유기적 조우를 보여주는 것이다. 국내외의 다양한 디지털 영상작품으로 디지털 영상, 애니메이션, 모션캡처 3D, 싱글채널 비디오 등을 소통의 도구로 삼았다. 전통적 예술이 직접적 행위로 창조성을 표현했다면 디지털 아트는 매체를 통한 간접적 예술을 체험하도록 한다. 21세기의 예술과 과학은 디지털 매체 속에서 서로 구분이 없는 시대로 재진입한다.
국내외 디지털 영상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가들은 일상에서 예술과 과학을 발견하게 한다. 신역사 3층 바닥에 설치된 셀리 에시카와 폴 카이저의 는 보도와 은행 로비 등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퍼블릭 아트이다. 이 작품은 8명의 실제 인물의 움직임을 모션캡처하고 3D 모델링 기법을 이용해 살아 있는 듯한 동작을 만들어냈다. 인체공학자와 사운드 디자이너, 무용가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작품 제작에 참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동하지만 자세히 보면 8명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식이다. 전지적 시점에서 끊임없이 이동하는 숨가쁜 도시의 삶을 엿보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신역사 2층 벽면에는 두개의 프로젝터에서 투사하는 20여개의 영상물들이 연속 상영된다. 속도와 몸, 우주 등의 과학적 주제를 독특한 시각으로 접근한 영상물도 있다. 디지털 영상 작품은 첨단 필름 스크린과 빔 프로젝터 등을 통해 서부광장 외벽 유리와 역사 바닥에 야간 전시된다. 설치 작품일지라도 영상물이 곁들여지기에 낮에는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다. 게다가 역사의 안내방송 탓에 영상물의 음향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과학, 남의 것으로 여겼던 예술을 당신의 것으로 느끼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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