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과세강화와 하위계층 고용창출… 당장 주식양도 차익에 세금을!

“국민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으며, 분배문제에 관심이 큽니다. 정부는 이 문제를 주요 과제로 인식하고 국민의 바람대로 분배도 국제통화기금(IMF)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도록 계획을 세워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2000년 1월4일 국무회의에서)
‘정치적 고려’라는 장벽
김대중 대통령의 이런 발언에서도 엿볼 수 있듯 구제금융 이후 우리 사회의 소득불평등에 따른 빈부격차 문제는 정부 스스로도 심각히 받아들이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현 정부는 올 초부터 대통령비서실 ‘삶의질 향상기획단’(기획단)을 중심으로 소득분배 개선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기획단은 올 1월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보건복지부 등 관련부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의 연구기관 등 분과별로 작업반을 구성해 실무작업을 추진했다. 이런 일환으로 올 2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세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 등이 망라한 소득재분배 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 등을 통해 정부와 기획단은 지난 4월4일 단기과제를 중심으로 ‘소득분배 현황 및 향후개선방안’을 발표했고, 특히 기획단은 지난 5월 중·장기과제를 중심으로 ‘소득분배구조 개선 3개년 계획’을 마련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정부와 기획단이 마련한 장·단기 소득분배 개선방안은 현 정부의 소득분배 구조 개선에 대한 총체적 청사진으로 계획대로 실현된다면 그나마 소득분를 상당히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주식양도차익과세 방안은 그 시기와 방법 등과 관련해 큰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대통령비서실은 기획단이 마련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소득분배 3개년 계획에 대해 관련부처와의 충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공식발표를 하지 않았다.
기획단은 이 보고서에서, 먼저 2002년까지 실업률을 3%대로 떨어뜨리고 물가상승률을 2%대로 유지해 소득분배 여건을 조성할 계획이며, 99년 말 국내총생산(GDP) 대비 8% 수준인 사회보장지출 규모를 2002년까지 10% 이상 늘리겠다는 포부를 담았다.
기획단은 이어 조세 및 사회보장을 통한 재분배정책을 강화해 중산층을 육성해 분배구조를 개선할 계획인데, 이를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일정규모 이상의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상속증여세의 강화 △부동산 관련 재산의 보유세 강화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실시 △자동차 관련 세제 개편 등을 추진할 것임을 제안하고 있다. 이 밖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 및 저소득층 지원 △재직자 임금보조금 제도 도입 △우리사주제도 개선 △저소득층에 대한 국민주 보급 등의 복지·노동 정책도 보고서에 담았다.
그러나 기획단이 마련한 소득분배 개선 방안 중 애초부터 법제화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시행 외에는 대부분 장밋빛 계획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사안마다 관계부처의 시기상조론과 ‘정치적 고려’라는 벽에 부닥쳤기 때문이다.
구두선으로 그치는 각종 대안들
그 대표적인 예가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방안. 기획단은 당시 지분율 3% 이상 또는 시가총액 100억원 이상 대주주의 주식 거래에 대해 누진세율(20∼40%)로 과세키로 하고 올해중 법안을 마련, 2001년부터 시행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아직 감감소식이다. 정부가 주식시장이 붕괴될 것을 걱정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국회일정 등을 감안할 때 올해중 법안을 마련하려던 애초 일정은 물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변칙적인 상속·증여를 통한 부의 세습을 막겠다는 의욕도 구두선으로 그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기획단쪽은 올 12월 상속·증여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비상장주식의 평가방법을 고쳐 세부담 없이 비상장주식을 증여, 상장차익을 얻게 하는 변칙 행위를 방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즉 유형별 포괄주의 조항을 신설해 변칙 상속·증여를 차단하겠다는 포석인 것이다. 그러나 시행령에서 유형을 구체화하는 난제를 남겨두고 있는데다 민원 폭주를 우려한 각 부처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예정대로 진행될지 미지수다.
내년부터 재도입될 금융소득종합과세의 경우, 대상인원이 3만∼4만명에 불과할 정도로 기준금액(부부합산 금융소득이 4천만원)이 너무 높아 소득재분배 기능이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획단은 이에 따라 기준금액을 2001년부터 2천만원으로 하향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벌써부터 벽에 부딪힐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아직까지 관계부처와 한 차례 협의조차 거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목표 연도가 슬그머니 없어진 데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이 밖에 외국에 비해 거래단계의 세부담이 높고 보유단계에서 세부담이 낮은 문제를 안고 있는 부동산관련 재산의 보유세 강화, 저소득층에 대한 국민주 보급 등에서도 애초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분배불평등을 완화할 제도적 장치 마련이 미비한 현실에 구조조정 바람이 맞물리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분배구조를 다소나마 개선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은 대략 두 갈래. 부유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한편, 고용창출을 통해 하위계층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꾀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문형표 연구위원은 “고소득 자영업자들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음성탈루 소득을 포착하는 데 조세당국이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문 위원은 “우리나라 조세체계상 직접세 부담률이 낮아 조세정책을 통한 실질적인 분배개선 효과는 크게 기대할 수 없지만 탈루소득을 양지로 끌어올려 과세를 매기는 과정을 통해 서민층의 불만을 해소하고 심리적인 사회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마리 토끼잡기’의 딜레마

부유층 과세강화를 위한 구체적 방안의 하나가 '주식양도 차익과세'다. 참여연대 납세자운동본부의 하승수 변호사는 “주식양도 차익과세는 조세의 기본원리에도 맞을 뿐 아니라 분배구조 개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 변호사는 이를 통해 과세 인프라(정보)가 구축돼 변칙적인 상속·증여를 막는 유력한 수단이 확보될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하위층의 소득을 올리기 위해선 벤처 등 새로운 사업분야에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고용조건 안정을 꾀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건국대 김진욱 교수는 “외환위기 직후 실업을 당해봤던 하위계층이 눈높이(기대 임금수준)를 낮춰 취업하는 바람에 절대적인 임금수준이 낮아졌을 뿐 아니라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나는 등 고용안정성도 크게 떨어졌다”고 분석하며 “단순히 고용을 창출하는 데서 나아가 정규직의 안정적인 직장을 확충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고용창출을 통해 실업률을 줄이고 빈부차를 다소나마 줄이는 게 당위이긴 하나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 국내경제 여건상 군살을 빼는 구조조정이 여전히 필요하고 여기에는 실업이라는 부작용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조조정도 해야 하고 실업도 줄여야 하는 딜레마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와 관련해선, 구조조정의 대세를 크게 그르치지 않으면서도 고용창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주5일 근무제도를 다시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참여연대 김기식 정책실장은 “외환위기 직후보다 실업률은 떨어지고 있으나 비정규직이 확대되면서 ‘계급적 하강분해 현상’(중하층이 하층으로 전락하는)이 뚜렷하다”며 “소득재분배 정책의 초점을 비정규직의 고용과 소득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로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지난 10월부터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고 있지만 수급권자 선정 기준이 너무 엄격해 과거 생활보호대상자 중 상당수가 여기에 포함되지 못하는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사회보험비 부담에서 정규직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어 이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규직의 사회보험비 중 50%는 사용자쪽에서 부담하지만 비정규직은 100% 모두 본인이 부담하는 현실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가 넓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회복지학자들은 이런 경제적인 논리에서 한발 나아가 분배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접근도 적극 검토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한 조세·재정정책 차원이 아니라 실업대책, 노동정책, 교육정책, 주거정책, 공공재정책 등 총체적인 사회복지정책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창곤 기자goni@hani.co.kr
김영배 기자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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