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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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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그리고 멈출 수 없는 기도

헤르페스바이러스·급성괴사출혈·피부질환·에볼라 등
질병 전파에 종교의식이 미친 영향
등록 2020-02-29 16:40 수정 2020-05-03 04:29
경기도는 2월25일 과천시 한 상가에 있는 신천지예수교회 부속기관에 진입해 코로나19 관련 강제 역학조사를 했다. 연합뉴스

경기도는 2월25일 과천시 한 상가에 있는 신천지예수교회 부속기관에 진입해 코로나19 관련 강제 역학조사를 했다. 연합뉴스

코로나19가 특정 종교 단체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2020년 2월 한국에선 특히 신천지 신도들의 집단감염이 주목받았다. 종교 행사는 전염병이 확산하는 중에도 쉽사리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때로 공중보건과 충돌한다. 세계적으로 종교가 질병 전파에 영향을 미친 사례, 종교와 공중보건이 지혜롭게 조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다.

장시간의 밀접한 접촉

매년 이슬람 성지순례 ‘하지’가 진행되는 기간이면 질병관리본부는 긴장한다. 2019년 8월29일 질병관리본부가 펴낸 ‘2016~2018년 국내 이슬람 성지순례자 대상 중동호흡기증후군 감시 및 대응 결과’ 보고서 초록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매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서 열리는 이슬람 성지순례 기간에는 200만 명 이상의 군중이 밀접하게 접촉해 장시간 모여 기도하기 때문에 호흡기질환에 감염되거나 확산시킬 위험이 매우 높다.”

이 보고서가 인용한 선행연구에 따르면, 2002년 이슬람 성지순례 기간에 사우디아라비아 병원 입원자의 57%가 호흡기 감염자로 확인됐다. 2004년 비슷한 연구에서 3차 의료기관 입원자의 20~40%는 폐렴이었고, 중환자실 입원자의 55~67%는 호흡기 감염자였다.

한국에서도 매년 300~400명 정도 이슬람 성지순례를 다녀온다. 다행히 2016년에서 2018년까지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 중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감염자는 없었다. 하지만 리노, 인플루엔자, 코로나 등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 8종에 감염된 경우는 2016년 4건, 2017년 16건, 2018년 6건 발견됐다.

한 걸음 나가, 종교 행위가 감염병 전파에 핵심 역할을 하기도 한다. 2013년 에 실린 논문(①)에는 그 예가 다양하게 정리돼 있다. 유대교 초정통파의 할례의식은 오랫동안 헤르페스바이러스 감염을 유발했다. 유대인들은 종교적 이유로 남자 아기가 생후 8일째 되는 날 포경수술을 한다. 그런데 수술 과정에서 헤르페스바이러스 1형에 감염되는 일이 종종 나타났다. 이로 인해 사망하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앓는 아기들이 생겼다.

연구 결과, 감염은 포경수술 뒤 지혈하는 과정에서 주로 일어났다. 전통적인 할례의식에서 수술하는 사람은 성기 포피를 일부 잘라낸 뒤 나오는 피를 입으로 빨아서 지혈하는데, 이때 입에서 성기로 바이러스가 옮겨간 것이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2012년 미국 뉴욕시에선 유대교 전통 할례의식을 따를 경우 헤르페스 감염 우려가 있다는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고 사전 동의를 받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종교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유대인들의 반발에 한동안 법이 시행되지 못했다.

힌두교의 종교의식이 집단 피부질환을 일으킨 사례도 있다. 스리랑카 자프나주 날루르시 무루간 사원에선 매년 8월부터 9월까지 사원 마당에서 땅바닥을 옆으로 구르는 종교의식을 진행한다. 이 의식을 치른 신도들의 몸에 적갈색 발진이 생기는 일이 반복됐다. 작은 돌기와 물집이 생기고 매우 가려운 증상이었다. 2010년 연구 결과 땅에 있던 기생충 유충이 발과 다리, 엉덩이 등의 피부를 뚫고 침입한 것이었다.

죄를 지으면 신이 전염병으로 때린다

기독교 성찬식에서 빵과 포도주를 나눠 먹는 의식이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일부 교회에선 신도들이 와인이 담긴 컵을 돌아가며 마시는 경우가 있다. 성직자가 와인에 담근 전병(동그랗고 납작한 빵)을 신도들 입에 하나씩 숟가락으로 넣어주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에서 포도상구균, 나이세리아균, 연쇄상구균 등에 감염될 수 있다는 연구가 1967년 나왔다. 하지만 가능성만 존재할 뿐 실제 감염돼 집단 발병한 사례는 확인된 바 없다.

이슬람교에서 몸을 씻는 의식이 사망자를 부른 사례도 있다. 2008~2009년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급성괴사출혈뇌수막염으로 13명이 사망했다. 이들은 종교의식으로 하루에 여러 차례 코 안쪽을 강하게 씻었는데, 이때 물에 있던 아메바가 뇌로 들어가 조직을 파괴한 것이다. 연구진은 종교의식에 한 차례 끓인 물을 사용하라고 권고했다.

종교의식으로 인한 감염은 최근까지도 여러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다. 영국 연구진이 2019년 저널에 실은 논문(②)을 보면, 자신을 때리는 행위로 인해 인체 T-림프영양성 바이러스 1형(HTLV-1)에 감염된 영국 거주민 10명의 사례가 나온다. 감염자들은 파키스탄, 인도, 이라크 출신의 이성애자 남성이다. 이 바이러스는 주로 성관계와 수혈 등 체액 접촉으로 감염되는데, 이들은 감염 경로가 확인되지 않아 의료진을 혼란에 빠뜨렸다.

연구자들은 이들이 공통으로 채찍이나 막대, 칼 등을 이용해 스스로 상처 내는 종교의식을 행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때 공동으로 사용한 피 묻은 도구가 감염원으로 보인다며 종교의식 때 도구를 공유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이들이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는 논문에 나와 있지 않고, 다만 이슬람 시아파와 가톨릭 공동체에서 자학 행위가 존재한다는 언급이 있다. 인체 T-림프영양성 바이러스 1형에 감염되면 2~6% 확률로 백혈병이 발생하는데 사망률이 높다.

사실 특정 종교를 중심으로 전염병이 번질 때 가장 위험한 이는 성직자다. 가장 많은 사람을 접촉하기 때문이다. 2015년 에 실린 논문(③)을 보면, 2015년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바이러스가 번질 때 성직자들이 감염된 사례가 나온다.

성경과 코란에는 악을 행하면 전염병이 닥친다는 구절이 있다. 신명기 28장이 대표적인 사례로, 죄를 지으면 신이 전염병과 폐병과 열과 염증 등으로 때린다고 나온다. 그래서 서아프리카의 감염병 환자들은 자신의 병이 혹시 영적 문제 탓인지 성직자에게 찾아와 상담을 받았다. 환자의 몸에 손을 얹고 치유 기도를 하던 성직자가 에볼라에 감염돼 죽은 사례가 여러 건이다. 지역의 전통과 종교, 민간요법도 비슷한 이유로 에볼라 확산에 기여했다.

가장 위험한 사람은 성직자

논문은 결론에서 성직자의 역할을 강조했다. 민수기 19장에는 죽은 사람의 몸을 만진 뒤 자신을 정결하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성직자가 성경·코란의 이런 구절을 강조하면 전염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당시 죽은 이를 만지는 전통이 에볼라 확산에 기여하던 때였다.

정책 입안자들이 종교 지도자들과 적극적으로 상의하라는 권고도 담겼다. 신도들에게 종교 지도자의 권위는 보건 담당자보다 더 크므로, 종교 지도자들이 공중보건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는 말이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관련 논문(아래를 검색창에 입력하면 논문을 검색할 수 있습니다)
① DOI: 10.1016/j.ijid.2013.05.001
② DOI: 10.3201/eid2504.180984
③ DOI: 10.11694/pamj.supp.2015.22.1.6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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