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대구광역시는 ‘메디시티’(MEDICITY)를 선언했다. ‘의료특별시’(The Medical Capital of Korea)란 말을 쓴 것도 이때부터다.
“6개 의료교육기관과 3500여 개 의료기관, 2만7천여 명의 의료인력을 갖추고 있는 의료 인프라는 난치병 연구와 치료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인 수준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자가격리 중 사망한 확진자6, 3500, 2만7천. 무엇을 위한 수치일까. 코로나19 확진자만 2천 명을 넘어선 지금, 의미를 찾을 수 없다. 2월28일(오후 2시 기준) 대구에서만 확진자 1314명 중 680명이 병상을 구하지 못해 각자 집에서 대기 중이다. 대구시는 대구지역 병원에서 확보한 병상 1013개를 며칠 내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당장 나머지 580명은 밖에 머물러야 한다. 이들 가운데 누가 언제 병원에 먼저 갈 수 있을지 확정된 것은 없다. 게다가 확진자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날 기자의 전화기가 울렸다. 격리병동으로 운영되는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ㄱ씨였다.
“입원실이 없어 집에서 자가격리 중이던 분이 오늘 사망했어요. 만성신부전이 있던 분인데, 병실이 부족해서 곧바로 입원시키지 못했어요.”
병실이 모자라지 않았다면, 해당 환자는 사망하기 전 ㄱ씨의 병원에 왔어야 했다. ㄱ씨는 “환자의 중증도와 기저질환에 따라 입원과 자가격리를 결정했어야 하는데 안타깝다”며 “희생자를 줄이기 위해 더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인 것 같다”고 했다. 이어 “확진자를 모두 입원시킬 게 아니라 입원이 필요한 사람과 아닌 사람을 가려내 상대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중국 우한에서 귀국한 사람들을 격리했던 수련원 같은 곳에서 관리받도록 하자”고 했다.
다만 자신의 의견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조심스러워했다. 그럼에도 “인력과 장비, 시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서 병상을 확보하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희생자가 나오는 걸 막는 게 우선인 것 같다”고 했다. 현장 의료진 입장에서 눈앞에 보이는 희생자 수를 줄여야만 한다는 다급함이 엿보였다. 이는 확진자를 음압병상이 아닌 일반병상에 입원시키자는 현실론보다 더 나아간 주장이다. 대구시는 현재 580명이 병상에 몸을 누이기 전까지 의료진이 1일 2회 확인 전화를 하도록 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개별 환자들의 상태를 온전하게 관리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장 ㄱ씨처럼 확진자를 병원 밖에서 관리하자는 주장이 현장에서 나온 것은 대구의 의료체계가 코로나19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혼란은 다른 징후로도 확인된다. 현장 의료인력의 안전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한 것이다. 2월26일 밤 9시 넘은 시각, 과 통화한 김명재 대한공보의협의회 정책이사는 “현재는 의료진이 각자의 안전을 각자가 책임지는 상황이다. 이 추세로 가다가 의료진 감염이 일어나면 의료체계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했다. 확진자를 관리하는 기존 의료진에 더해 정부가 급파한 200여 명의 공중보건의는 현장에서 쉴 틈이 없다. 김씨 또한 목포교도소에서 근무하다 자원해서 22일 대구로 왔다. (확진자의) 역학조사 등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분초를 다투는 업무를 맡고 있다. 김씨를 비롯한 공보의들은 격리병상이 있는 대구의료원, 대구 동산병원부터 청도대남병원까지 곳곳에 흩어져 사투 중이다. 김씨가 본격적으로 의료진 안전을 언급한 것은 중앙방역대책본부의 현장 인식을 드러낸 한 장의 공문 때문이다.
전신보호복 없어 수술복 입고 검진하는 의사“전신보호복(레벨 D) 사용은 검역, 이송, 검역차 소독, 시신 이송 등의 상황에 사용하며 검체 채취의 경우에는 전신보호복 대신 가운 권장.”
2월25일 중앙방역대책본부가 각 지방자치단체에 보낸 서류에 담긴 내용이다. 이를 본 현장 의료진은 믿기 어려워했다. 보호장비 사용량이 급증한 뒤 전신보호복 부족을 우려해 내린 긴급한 조치라는 점을 고려해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왔다. 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대구는 알려진 대로 신천지 교인을 중심으로 전수조사를 벌이면서, 가정에 직접 방문해 검체를 채취하는 등 다른 지역보다 적극적으로 확진자 선별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누구도 보증할 수 없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는 이날 성명을 내 “방호복에 남아 있는 비말로도 감염 확산이 우려되는 와중에 온전한 차폐가 불가능한 보호구로 방역의 일선에 서는 것은 공중보건의를 진정 사지에 내보내는 것과 다름없다”고 항의했다. 전신보호복 물량 부족은 예견된 일이다. 일부 검역소에선 검체 채취 뒤 의심자의 기침 등 특별한 현상이 없으면 전신보호복을 새로 갈아입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 병원에선 확보한 물량이 없어 직접 접촉자 검진 과정에서 이른바 ‘수술복’을 입기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논란이 커지자 2월27일 질병관리본부는 “일반 가운이 아니라 ‘일회용 방수성 긴팔 가운’을 의미한다”고 해명했다.
전신보호복 부족만 문제가 아니다. 마스크 등 의료진에게 당연히 지급해야 할 장비도 부족하다. 여기에는 또 다른 문제도 얽혀 있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대형병원 간호사는 “물량을 확보해도 현장에 배분·공급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며 “마스크 100만 개가 대구로 왔다고 방송 보도가 실시간으로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정작 현장에선 마스크가 부족해 아껴 쓰는 형편이다”라고 했다. 이어 “의사나 간호사 부족은 공보의가 급파되고 대구 안팎에서 의료진이 자발적으로 나서면서 해결되는 기미가 보이는데 병원 운영에 필수적인 행정인력은 충원되지 않고 있다”며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선 의료진이 상황에 따라 대응하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이라도 중앙·지방정부, 병원 간 ‘위기 대응’ 매뉴얼을같은 맥락에서 장비뿐만 아니라 인력 배치도 조율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검역소에서 인력 지원을 하는 대구 지역의 한 의사는 “중앙에서 현지와 교감해 외부 지원 의료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게 상식이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현장에 와보니 병원, 보건소 등으로 한번 배치되면 이동이 어렵다”며 “앞으로 환자들이 어느 곳에서 얼마나 늘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중앙정부든 시정부든 인력 배치의 유동성을 높여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할 텐데 걱정”이라고 했다.
대구 의료체계의 혼란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누구도 답을 내놓을 수 없다. 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의 한 의사는 “2월18일 첫 환자가 나왔을 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보건 당국과 대구시, 대학병원 5곳 정도가 공조해 위기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면 지금 같은 혼란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지금도 모두에게 유효하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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