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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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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9일부터 한 번도 안 나갔어요”

대구 시민 5명이 단톡방 통해 전하는 ‘재난영화’ 같은 나날들
등록 2020-02-29 14:55 수정 2020-05-03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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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7일 오후 5시 기준, 대구 지역 코로나19 확진자가 1132명으로 또 늘었다. 국내 확진자 1766명의 약 64%다. 지역사회 감염이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대구에서 첫 확진자(31번째)가 나온 2월18일 이후 시민들의 일상이 멈춰섰다. 학교와 일터에 나가고 식당과 상점에 가고 경조사를 챙기는 당연했던 일상은 간절히 회복하고 싶은 소망이 됐다. 당장은 대면 접촉을 피하는 것만이 ‘서로를 위한 최선’이다. 험지 취재를 마다하지 않는 기자 정신이 오히려 감염 확산이라는 ‘민폐’로 전락할 수 있는 시기, 이 대구의 일상을 살펴보려고 26일 오전과 저녁 두 차례 단체대화방을 열었다. 주부·직장인·자영업자·학생 등 다양한 삶을 영위하는 5명이 참여했다. 채팅방에선 실명으로 대화를 나눴으나, 5명 모두 기사에선 가명으로 표기했다. 시간 제약으로 채팅방에서 함께 나누지 못한 내용은 추가 개별 전화 인터뷰로 보완해 정리했다.

이필(가명)씨가 운영하는 대구 수성구 미용실 앞 거리가 한낮인데도 휑하다. 이필 제공

이필(가명)씨가 운영하는 대구 수성구 미용실 앞 거리가 한낮인데도 휑하다. 이필 제공

수입 0원 워킹맘, ‘개점휴업’ 미용실 원장님

신소희(43) 저는 예비 초5, 초2 두 딸을 둔 전업주부예요. 2월19일부터 갑자기 확진자가 늘면서 아이들 학원이 휴원하기 시작하고, 최소 3월9일까지는 개학도 연기됐어요. 애들이 너무 지겨워하니까 인터넷으로 보드게임을 사서 하거나 영화도 보여주며 버티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19일 이후 단 한 번도 문밖에 나가지 않았어요. 완벽하게 외부와 차단된 상태예요. 영어·수학·줄넘기·피아노 학원과 논술·수학 학습지가 모두 중단돼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상황이에요. 감염병이 돌아야 진짜 방학을 하는 아이들의 웃픈(웃기고 슬픈) 현실이랄까요. 저는 쓰레기를 버리거나 장보러 잠깐씩 나가는데, 마스크 안 낀 주민을 한 번도 못 봤어요. 엘리베이터에도 손소독제가 비치돼 있어요.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면서 쓰고, 다시 올라오면서 쓰고, 집 앞에 내리면서 쓰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또 손을 씻어요.

김희진(45)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 법인회사를 운영하는 워킹맘입니다. 대구 지역 7개 초교를 맡고 있는데, 수업이 모두 중단됐어요. 직원 11명은 일한 만큼 급여를 받는 구조인데, 출근을 못하고 있어요. 저도 수업에 쓸 교구를 마련하느라 투자는 했는데 수입이 0원인 상황입니다. 학교들이 3월9일부터 방과후 수업을 재개한다더니, 다시 16일로 미뤘습니다. 그 역시 잠정적이라 3월에 개강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필(46) 수성구에서 15년째 1인 미용실을 운영하는데, 길거리에 사람이 아예 안 다니는 걸 처음 봐요. 손님이 90% 정도 줄었어요. 단골이 많고 평소엔 남성 커트 손님이 대부분인데, 19일 이후로는 하루 서너 명이 오니 개점휴업 상태예요. 오늘은 2명 왔고요. 이런 추세라면 문을 닫는 게 나을 듯해요.

이성민(23) 경북대 사범대 3학년이에요. 19일 이후 집에서만 생활해요. 3월16일 개강하는데, 추가 연기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반대로 여름방학 때 군 입대, 여행 등의 계획으로 개강 연기에 반대하는 학생도 많습니다. 온라인 강의로 수업을 대체하자는 여론이 높지만, 총학생회가 학교 쪽에서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해요.

김승훈(42) 대구에 있는 대학 교직원입니다. 학생들 복학·휴학 처리가 한창입니다. 학생들의 학교 방문을 자제시키고, 휴·복학 서류는 스캔본을 전자우편으로 받아 지도교수 서명으로 온라인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중국인 유학생들의 동의를 얻어서 휴학을 권유하거나, 최대한 입국 보류를 유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당시 ‘한국은 안전하다’는 인식이 있어 중국 유학생 대부분이 한국에 오기를 강력하게 바랐고요. 외국인 기숙사 건물을 폐쇄·격리 건물로 지정해 중국인 유학생을 14일간 격리한 뒤 학교로 복귀시키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중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 유학생도 (한국) 학교 복귀를 망설입니다.

대구는 전국에서 확진자가 가장 많은 도시지만, 그 1132명은 대구 전체 인구 243만여 명의 0.04%다. 채팅에 참여한 5명이 직접적으로 아는 사람 중엔 확진자가 없었다. 하지만 병상 부족으로 확진자조차 입원하지 못한 채 자가격리 중이고, 확진자 방문으로 문을 닫는 응급실이 늘어 일반 응급환자나 중증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한다는 우려가 나왔다. 의료뿐 아니라 경조사나 종교 활동도 큰 차질을 빚고 있다. 마스크 등 감염 예방 제품이나 생필품 구매 역시 다른 지역보다 훨씬 어렵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대구에 사는 김승훈(가명)씨의 아내가 만든 마스크. 김승훈 제공

대구에 사는 김승훈(가명)씨의 아내가 만든 마스크. 김승훈 제공

결혼식 취소하고 미사 못 가고

이필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간호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어요. 간호사가 신천지 교인임을 밝히지 않아 의사도 전염됐고요. 여섯 살 위 누나가 이 병원에서 난소 제거 수술을 받았어요. 이미 CT(컴퓨터단층촬영)·MRI(자기공명영상) 다 찍고 수술 날짜를 받아놔서, 수술 전에 확진자 발생 사실을 알고도 병원을 옮길 수 없었어요. 결국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 수술받았는데, 감염 우려로 병원 쪽 통제가 심해요. 어쩔 수 없지만, 면회도 못 가고 보호자 교대도 힘든 상황입니다.

김희진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대구 의료시스템이 체계 없이 주먹구구라는 걸 느끼지만, 평소에도 뒤처진다는 생각은 많이 해왔습니다. 4주 전 대구 지역 대학병원 안과에 갔는데, 전공교수 진료를 받으려면 인턴·레지던트한테 먼저 진료를 받아야 한다더라고요. 교수 밑 레지던트 선생님을 예약하고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그보다 더 젊은 다른 선생님이 앉아 계시는 거예요. “왜 예약한 선생님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분이 바쁘셔서 그렇다”고 멋쩍게 웃더라고요. ‘대구 의료는 아직 멀었구나’ 싶었어요.

이필 가톨릭 대구 대교구에서 2주간 미사를 중단했는데, 성당 20년 다니면서 처음 겪어요. 기사에선 사상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부활주일(사순절에서 부활절. 올해는 2월26일~4월12일)이 연중 가장 큰 행사인데도 오지 말라고….

김승훈 경조사도 축의금·부의금만 온라인으로 보내고 직접 참석을 삼가고 있습니다. 가도 민폐일 듯해서요. 이번 주말 대구 예식장에서 결혼하기로 한 직장 동료는 전체 전자우편으로 급히 결혼식 취소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필 사촌누나네 아들 결혼식이 있는데, 대구에서 서울로 하객을 데려가기로 했던 관광버스가 취소됐습니다. 혼주들만 조용히 올라가서 치르기로 했습니다. 대구에서 버스가 올라가면 사돈댁에서도 우려할 수 있으니까요. 조카 결혼식인데 온라인으로 축의금만 보냈습니다.

김승훈 집에 사둔 마스크 재고가 떨어질 것을 대비해 아내가 필터 교체형 면마스크를 직접 만들고 있습니다. 면을 마스크 모양 주머니처럼 두 겹으로 재단한 뒤, 그 안에 마스크 소재 필터 용지를 잘라서 끼우더라고요.

이성민 저희 집은 마스크가 동났습니다. 대형마트에 가는 것도 무섭고 인터넷에서 주문하려니 다 품절이라 구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신소희 대구시에서 마스크 물량을 충분히 확보해 가가호호 나눠주든지, 동사무소나 관공서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희진 가족 중에 약사가 있습니다. 생필품만 사재기를 하는 게 아니라 종합감기약과 소독약 등 상비약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이필 마트에 식품류도 빈자리가 많아요. 라면은 1인당 두 봉지씩만 팔아요.

2월21일 대구 남부 보건소. 연합뉴스

2월21일 대구 남부 보건소. 연합뉴스

정부 대처, 실망 vs 적절

대구 지역 감염 확산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5명 모두 신천지를 비판했다. 중앙정부의 대응과 관련해서는 판단이 갈렸고, 오히려 대구시의 대응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성민 신천지 중 보건 당국 지침을 따르지 않아 코로나19 확산에 기여한 교인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신천지에서 10만 명이 교육을 수료했다는 펼침막을 내걸 때만 해도 허풍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이 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제 주위에는 신천지를 욕하는 사람이 많으나 정부 쪽 대응도 문제가 있었다는 여론도 많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월20일 영화 제작진과의 오찬에서 먹은) ‘짜파구리’ 인증사진을 찍으며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릴레이로 올라오고 있어요.

김희진 잠시 밖에 나갈 일이 있을 때 제 옆을 지나가는 누군가가 ‘혹시 신천지 교인일까?’ 의심할 정도입니다.

김승훈 정부 초기 대응은 아주 적절했고 소강 국면으로 가나 싶었는데, 이단 종교단체의 무리하고 불투명한 활동 때문에 대구 방역 체계가 무너지지 않았나 짐작합니다. 이후 지방자치단체 대응도 아주 미온적이고요.

이필 정부가 좀더 일찍 ‘심각’ 단계로 격상시키고, 중국인 입국 금지를 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네요.

신소희 대구에선 경찰력까지 동원해 연락 안 되는 신천지 교인들을 신속하게 찾아냈다는 뉴스를 보고 그런 부분은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성민 마스크 수급과 자영업자 지원 대책이 부족한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편성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감염자 정보 공개는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소희 특히 대구는 확진자가 많고 지금도 계속 늘고 있는데, 병상 확보와 의료진 추가 배치 등 현실적인 대처 부분이 조금 더 빠르게 진행됐으면 합니다.

김승훈 역설적으로 확진자가 폭증한 이유 중에는 질병관리본부의 투명한 대처가 있다고 봅니다. 검진자 수가 세계적으로도 단연 많고 확진자 수도 그에 따라 올라가는 것이라 봅니다. 거의 잡을 뻔했는데 일부 ‘룰 브레이커’(규칙 위반자·신천지)의 돌출 행동에 흔들린 것이라 봅니다. 오히려 대구시 대응이 상당히 실망적입니다. 처음에 환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을 때 지자체가 패닉에 빠진 모습을 보여줬고, 역학조사관도 정원이 2명인데 1명만 채워놓는 등 예산 탓만 하면서 준비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신천지에서 감염이 확산한다고 했을 때 시설물이나 물리적 접근 차단이 안 됐습니다. 아직도 신천지에 협조해달라, 단체행사 자제해달라는 뉘앙스입니다.(※권영진 대구시장은 2월26일에야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9조 2항의 규정에 의거해, 모든 집회를 금지했다.)

김희진 31번째 환자가 의사의 검사 권유를 거부했잖아요. 감염병은 국민 전체의 건강에 관한 문제이기에 법적 처벌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스크·소독제라도 편히 쓸 수 있었으면

‘대구 폐렴’이라는 말에 지역 민심이 크게 분노했다는 보도가 잇따랐다. 대구 지역 유력 언론은 “대구·경북민들은 ‘코로나 사태가 수도권이나 부산, 광주에서 확산했다면 이렇게 늑장 대처했겠냐’며 울분에 차 있다”고도 보도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5일 오전 “대구와 경북 청도 지역은 (중략) 최대한의 봉쇄 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가 26일 사퇴했다. 실제로 대구 지역 여론이 어떤지 물었다.

이성민 ‘지역혐오’라는 단어가 추상적이라 체감을 못했는데, 대구 폐렴이란 말을 듣고 지역혐오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TK 봉쇄’라는 말은 대구 시민들의 불안을 달래줘야 할 정치인이 오히려 불안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김승훈 코로나19로 부르자고 했을때 바득바득 ‘우한 폐렴’이라고 해야 한다던 대구 지인들한테 질문을 되돌려드리고 싶습니다. 홍익표 의원은 물리적 봉쇄를 뜻하는 건 아니었다고 하지만, 저는 필요하다면 대구시의 물리적 봉쇄도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봉쇄 발언은 누구보다 대구시장 입에서 먼저 나왔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김희진 지인들과 우스갯소리로 대구시장님이 대구에 안 계시고 서울에 사시는데 제대로 사태를 수습할 수 있겠느냐는 말을 했습니다. 하루빨리 대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병원시설, 소독제, 마스크라도 편히 공급받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김승훈 제 주위 의견은 반반입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실책 비중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소모되는 듯해 답답합니다. 추경을 끝까지 반대하다가 이제야 도와달라고 눈물 흘리는 시장의 모습을 한심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성민 코로나19로 인한 지역민의 공포를 이용해 지역을 ‘갈라치기’ 하려는 의도로 생각합니다. 대구에서 확진자가 많이 발생했지만 그 감염자가 신천지 교인들을 중심으로 퍼지고 있으니 현재로선 특별재난구역까지는 선포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이필 특별재난구역을 선포하면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직 확실히 모르겠네요. 혜택이 있다면 선포해서 지원해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돼 재난영화 같은 일상이 하루속히 끝나길 바랍니다.

“대구서 3시간20분 액셀 밟아 경기도로 피난”

단체대화방 채팅을 마치고 5시간 뒤, 추가 취재를 위해 김희진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구에서 채팅에 참여했던 김씨는 어느새 경기도 고양시에 가 있었다. 김씨는 “채팅이 끝나자마자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언니 집으로 왔다”며 갑작스러운 피난 소식을 전했다. 그는 “휴게소도 위험한 것 같아 3시간20분 동안 한 번도 안 쉬고 액셀을 밟았다”고 했다. 언니와 형부가 재촉해 서둘러 갔는데, 사업 탓에 대구에 남은 남편이 “명성교회에서 2천 명한테 문제가 생겼다”며 다시 내려오라고 성화였다. 경기도와 인접한 서울 명성교회에서 부목사가 확진 판정을 받았고, 해당 목사가 참석한 예배 참석 인원이 2천 명이나 된다는 우려였다. 김승훈씨의 장모는 “일찌감치 경기도 처제네 집으로 몸을 피했다”고 했다. 신소희씨 지인은 윗집이 신천지 교인이라는 걸 뒤늦게 알곤, 온 가족이 부랴부랴 할머니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고 했다. 말 그대로 대구는 지금 ‘난리통’이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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