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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는 당연히 산재보험으로

불이익 받을까, 승인 안 될까 꺼리는 산재 신청

제1298호
등록 : 2020-02-01 23:44 수정 : 2020-02-0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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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산재은폐 기획
①(통계)은폐된 289억3288만원 
②(사례)막히고 또 막히고…산재 노동자 20명 심층 인터뷰
③(대안)산재는 당연히 산재보험으로
④(인터뷰)국민건강보험공단·고용노동부 인터뷰
⑤(희망)산재보험, 594개 사업장에서 265만개로

‘산업재해’라고 하면 사람들은 주로 대형 사망사고를 떠올린다. 언론을 통해 각인된 효과다. 그래서 산업재해는 내 피부에 잘 와닿지 않는 단어다. 직장에서 넘어져 발목 인대가 찢어진 경우, 장시간 앉아서 일하다 허리 디스크가 생긴 경우, 기계를 다루다 손이 베인 경우, 우리는 산재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산재보험으로 보상을 신청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할까.

노동자들은 경미한 부상을 대부분 묻고 넘어간다. 개인 돈을 쓰든 건강보험이나 실비보험을 이용하든 스스로 해결한다. 산재보험으로 보상받으려면 상당한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산재가 은폐되는 환경에선 큰 부상도 은폐되고 만다.

도대체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산재가 은폐될까. 주로 어떤 집단에서, 왜 산재가 은폐될까. 산재를 당하고도 산재보험으로 보상받지 못한 노동자는 어떤 일을 겪을까. <한겨레21>은 아름다운재단, 노동건강연대, 윤소하 정의당 의원실과 협력해 산재은폐를 처음으로 집중 분석했다. 산재보험이 ‘그림의 떡’이 된 원인과 해결책도 찾아봤다.

독일 지역의료보험조합 누리집

한국의 산재보험은 1964년 처음 시행된 뒤 지속해서 그 적용 대상을 넓히고 보장성을 강화하며 여러 문제점을 개선해왔다. 하지만 아직 적잖은 문제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직업과 관련해 발생한 부상과 질병은 모두 산재보험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직업병을 포함해 많은 산업재해 보상 부담이 당사자나 건강보험료를 내는 다른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은폐·축소가 가져오는 불평등

산재보험 이용에서 불균형 문제는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사업장 노동자, 이주노동자 등 저임금 취약계층 노동자에게 더 심각하다는 점에서 사회 형평성을 저해하고 사회 불평등을 키우는 요인이다. 산재보험 재정은 100% 사업주 부담임을 고려할 때, 이는 한국 기업이 자사가 고용한 노동자에 대한 건강 보장 책임을 구조적으로 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산재를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진정한 산재 규모와 문제점을 알 수 없게 된다. 은폐되고 축소된 통계에 근거해 산재 예방 정책을 펴면 구조적으로 은폐·축소된 영역은 산재 예방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는 것도 문제다. 산재 예방 정책이 더 필요한 영역이 오히려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산재가 일어나면 원칙적으로 산재보험 처리를 해야 하는데도 산재보험을 이용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처리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사업주가 산재보험 신청을 꺼리기 때문이다. 산재 노동자 본인이 잘 알지 못해 산재 신청을 하지 않거나 꺼리기도 한다. 산재 신청 절차가 복잡하고 제출해야 하는 서류가 많다고 생각해 지레 산재 신청을 포기하는 일도 있다. 산재 신청을 해봤자 아예 안 될 거라고 생각해서 산재보험을 신청하지 않는 이들도 있고, 산재 신청시 동료 노동자들이 자신을 좋지 않게 볼 것을 염려해서 혹은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까봐 산재보험 신청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사업주가 산재보험 처리를 꺼리지 않게 만들어줘야 한다. 산재 노동자의 지식, 시간, 노력 등을 요구하는 산재보험 신청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당사자를 대행해 처리해주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의료기관에서 받는 치료라는 점에서 다를 게 없는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행정 절차를 통합해 일원화해야 한다.

독일에선 산재의사가 치료 등 관할

사업주가 소속 노동자의 산재보험 신청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도록 하려면 산재보험 적용과 산재 예방을 위한 근로감독을 행정적으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 산재 예방을 위한 근로감독을 할 때 상대적으로 은폐나 축소가 어려운 산재 사망 통계 등 객관적 지표를 활용해야 한다. 산재보험 신청을 많이 했다고 해서 근로감독 대상이 되는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여러 계약에 반영하는 지표 역시 일반 산재율이 아니라 산재사고 사망률 등 은폐나 축소가 어려운 지표로 바꿔야 한다. 개별 사업장의 산재율에 연동해 산재보험료를 올리거나 깎아주는 ‘개별실적요율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개별실적요율제도는 산재가 많이 날수록 산재보험료를 올리면 사업주가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을 둬 운영하는 제도다. 하지만 산재 예방 효과보다 산재를 은폐시키고 대기업의 산재보험료를 감면해주는 제도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많다.

산재보험 신청 절차의 간소화도 필요하다. 건강보험의 경우 환자가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건강보험 신청·적용과 관련한 행정 절차는 의료기관과 국민건강보험에서 환자를 대신해 처리한다. 심지어 자동차보험에서도 환자가 처리해야 할 많은 행정적 부담을 보험회사가 덜어준다. 이에 비해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인데도 환자 본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행정 사항을 다 챙겨야 한다. 이는 산재보험을 이용하려는 노동자에게 과도한 행정 부담을 지운다. 그러므로 산재보험 신청과 적용에 드는 여러 행정 부담을 의료기관과 근로복지공단이 나눠 지도록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의료기관이 손상·질병 상태를 파악해 산재에 해당하는 환자들을 대신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는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산재 여부를 판단하고 산재 치료와 관련한 사항을 관할하는 의사를 지정해 운영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독일의 경우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산재의사(D-Arzt· Durchgangsarzt)를 두고 있다. 독일에선 산재가 일어나면 환자는 반드시 산재의사의 진단을 받고 요양 정도를 평가받아야 한다. 재해가 경미해 일반의사에게 치료받을 때도 일반의사는 환자의 치유 경과를 산재의사에게 확인받아야 한다. 산재의사의 주 임무는 요양 절차를 결정하는 것과 요양 실시, 그리고 ‘산재의사 보고서’를 써서 보험기관에 제출하는 것이다. 산재의사는 재해의 종류와 강도를 고려해 일반요양이 필요한지 특별요양이 필요한지 평가해 결정한다. 특별요양이 필요하면 산재의사가 요양을 실시하고, 일반요양이 필요하면 환자가 요청하는 의사에게 환자를 이관한다.(‘독일 산재의사 신고제도 도입 필요성에 대한 연구’, 신영규 등, 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16)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요양 과정 통합 필요

의료기관이 산재를 신청한 뒤 산재 여부 승인에 필요한 행정 절차를 돕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신청 도우미’를 적극 운영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행정 소요가 적은 절차는 근로복지공단이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고, 직업병 승인같이 행정 소요가 많은 절차는 ‘국선 노무사’ 제도 등을 운영해 산재 환자의 시간·경제적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는다는 점에서 환자 처지에선 전혀 다를 게 없는 건강보험 요양 과정과 산재보험 요양 과정을 통합 일원화해야 한다. 환자는 병원에서 치료받고 재활하는 것에만 신경 쓰고 나머지 행정 과정은 의료기관, 국민건강보험, 근로복지공단 등이 소통해 사후 정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한국은 건강보험도 통합 일원화돼 있고, 산재보험도 통합 일원화돼 있다. 지역별, 직장별로 다른 조합을 구성해 운영하는 일본, 독일 등과 다른 사회보험 행정체계다. 오히려 행정체계만을 놓고 봤을 때 영국, 북유럽 등 국영 의료서비스를 운영하는 나라들과 비슷한 점이 더 많다. 그러므로 의료서비스와 공통적인 재활서비스는 보편적인 의료체계에서 동일하게 하고,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급여 비용은 일단 국민건강보험이 의료기관에 지급한 다음, 사후에 근로복지공단이 정산하는 형태로 운영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직업환경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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