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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지역 소멸’을 소멸한다

30대 전입자가 600명 매년 느는 순천, ‘한 달 살기’ 뒤 순천에 정착한 건희씨, 예린씨
등록 2020-01-02 11:32 수정 2020-05-03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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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곳.

한국고용정보원의 ‘한국의 지방소멸 2018 보고서’에서 분석한 ‘소멸 위험’에 놓인 기초지방자치단체 수다. 전국 229개 시·도·군의 39%다. 10곳 중 4곳이 인구 감소로 소멸할 위험에 처했다는 이야기다. 전국 3463개 읍·면·동 가운데 소멸 위험에 처한 곳은 2013년 1229개(35.5%)에서 2018년 1503개(43.4%)로 5년 동안 274개(7.9%포인트) 늘었다. 소멸 위험 지수는 20~39살 가임기에 있는 여성 인구가 65살 이상 고령 인구의 절반이 안 되는 걸로 정의한다. 바야흐로, 지역 소멸 시대다.

자연휴양림, 서핑 그리고 영화관

이런 지역 소멸 시대에도 전남 순천에선 청년 인구가 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의 인구총조사를 보면 순천의 만 20~39살 인구는 2015년 6만6336명에서 꾸준히 늘어 2018년엔 6만6803명으로 약 500명 늘었다. 증가 폭이 크지는 않지만, 같은 기간 전라남도의 청년 인구가 40만886명에서 39만3514명으로 줄어든 걸 고려하면 의미 있는 수치다. 통계청 국내이동인구 통계에서는 순천의 20대는 전입보다 전출이 많지만, 30대는 매년 전입자가 600명가량 더 많다. 순천시에 따르면, 만 19~39살 청년 비율은 약 27%다.

“순천은 고등학교 때 고흥에 사진 찍으러 갔다가 돌아와 딱 하루 잠만 잔 곳이었을 뿐, 내 인생에서 의미 있는 곳은 아니었다.”

신건희(26)씨에게 순천은 여행지로 별로 고려하지 않았던, 좀더 솔직히 말하면 생각해본 적 없는 도시였다. 그랬던 그가 2019년 11월 중순 서울에서 300㎞ 넘게 떨어진 순천으로 이삿짐을 옮겼다. 충북 청주에서 고등학교 3년을 다닌 것을 빼면 서울에서만 20여 년을 살았던 그다. 낯선 곳, 게다가 수도권도 아닌 남쪽 끝과 가까운 순천으로 이사하는 데 신씨에게 망설임은 없었을까.

신씨가 순천과 인연을 맺은 건 2019년 여름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신씨는 당시 많이 지쳐 있었다. 기업체에 입사지원서를 내도 서류가 통과되기 힘들었고, 서류에서 통과된들 면접은 더 가혹한 결과를 남겼다. “멘털이 많이 깨진(정신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세계와 단절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신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한 달 살기’를 검색했다. 타이, 중국, 일본 등 말이 통하지 않는 국외가 1순위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국내로 눈을 돌리던 차에 우연히 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갯벌 인근에서 캠핑하는 모습이었다. 순천이 이런 곳이었나. 신씨는 바로 ‘한 달 살기’를 지원했다. 그리고 7월 초, 28인치 캐리어, 카메라 가방과 함께 순천 터미널에 도착했다.

신씨의 눈에 들어온 순천은 고층 건물로 뒤덮인 서울과는 달랐다. 낮은 건물이 대부분이라 마치 “시골 같았다”. 택시 기사는 “뭐더러(뭐하러) 순천에서 한 달 사냐”고 했다. 한 달 동안 신씨는 되도록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순천 명소인 선암사에 가서 조용하고 편안히 있으려 했고, 자연휴양림에서 쉬고, 인근 지역인 고흥에 가선 서핑을 했다. 날씨가 좋은 날은 동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순천만까지 갔다. 순천은 청주보다 조용했고, 자연친화적이었다. 그러면서도 도심에 나가면 즐길거리와 영화관, 마트 등 생활 인프라가 갖춰져 있었다.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은 적당히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고, 적당히 혼자 있을 수 있었다.

‘한 달 살기’가 끝나고 서울에 돌아왔을 땐 와온해변에서 본 노을이 잊히질 않았다. 그래서 ‘한 달 살기’ 프로그램을 짠 ‘색다른녀석들 협동조합’(색다른녀석들)에서 주최하는 캠핑 페스티벌 기획을 도우며 한 달에 몇 차례 순천을 찾았다. 그리고 얼마 뒤 순천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두 번째 순천을 향해 짐을 쌌을 땐 컴퓨터와 LP플레이어, 레코드판 50개 정도가 함께였다.

주변의 우려가 없진 않았다. 문제는 단연 일자리였다. “서울보다 일자리가 별로 없을 텐데 어떻게 살 거냐”며 친구들이 걱정했다. 그 우려를 불식하고, 신씨가 순천에 정착하기로 결정한 건 취업과 주거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순천으로 이사하는 데는 색다른녀석들로부터 기획 일을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받은 게 컸다. 일자리만 해결돼도 어떻게든 살 수 있을 터였다. 집은 ‘셰어하우스’(공유주거)를 구했다. 보증금 100만원, 월세 45만원인 방 세 개 있는 단독주택을 다른 두 명과 함께 쓴다. 세 명이서 각자 월세 5만원씩 내면, 나머지 30만원은 순천시와 색다른녀석들에서 1년간 지원한다. ‘한 달 살기’에서 사후 정착금 지원 명목이다. 보증금은 색다른녀석들에서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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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지나면 향기로워지는 정원의 도시

신씨가 참여한 ‘순천 한 달 살기’는 전라남도가 2019년 처음 내놓은 ‘전남도 먼저 살아보기’ 사업이었다. 운영금은 전남도와 순천시에서 지원하고,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은 시와 협의해 색다른녀석들이 진행했다. 대상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거나, 대도시가 아닌 지방에서 기회를 찾으려는 만 20살 이상 39살 이하의 외지 청년들이다. 지역소멸론이 나오는 이 시기에 지역에서 내놓은 청년인구 유인 정책이었다. 신씨가 얻은 일자리 또한 행정안전부와 전남도에서 기본급을 2년간 지원받는다.

‘한 달 살기’를 운영한 색다른녀석들의 이사 정희주(28)씨는 대학을 순천에서 다니며 순천시에 정착한 경우다. “고향인 여수가 엑스포 등 개발에 초점을 맞췄다면, 순천은 순천만 등 보존에 초점을 맞췄다. ‘놀이공원은 시간이 지나면 녹슬지만, 정원은 시간이 지나면 더 향기로워진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순천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씨는 순천의 매력을 보여주는 여행사업을 하고 있다.

‘한 달 살기’는 연고가 없는 타 지역으로 이사하기 전에 여행자가 아닌 생활자로서 살아볼 기회를 갖고, 정착을 고민할 계기를 갖게 했다. 신씨는 “만약 ‘한 달 살기’를 하지 않았다면, 순천에서 살 것 같진 않다. 미리 살아보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지역을 알아간 게 이주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김예린(24)씨도 ‘한 달 살기’ 뒤 전북 전주에서 순천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김씨는 “독립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으로 가긴 어렵지 않나. 순천은 지내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 있으니,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있다는 게 마음 놓였다”고 말했다.

일자리·주거·결혼·출산 포괄하는 정책

지역인구 감소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지역의 인구가 줄면, 먼저 중앙정부에서 받는 지방교부세 산정에서 불리하다. 주민등록상 인구가 중앙정부에서 지방 정책을 만들 때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지자체에서 인구 부풀리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교육·의료 등 생활 인프라를 축소하고, 그에 따라 수도권이나 인근 대도시로 인구 유출을 가속한다. 통계청이 2019년 6월 발표한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2017년 대비 2047년엔 인천·경기·세종·충남·충북·제주 6개 시도를 제외한 11개 시도에서 모두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역인구 절벽’ ‘지역 소멸’ 같은 단어 앞에서 지역들은 저마다 ‘소멸 시효’를 늦추기 위해 대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지자체마다 생산 활력이 되는 청년인구를 끌어들이기 위해 청년 유인책을 내놓는다. 경상남도는 거제와 남해를 청년친화도시로 지정했다. 남해에 살거나 이주를 희망하는 청년 예술가와 기획자에게 공간과 비용을 지원하는 ‘청년작가 자발적 유배 프로젝트’와 6개월~1년 동안 남해에서 살아보는 것을 지원하는 ‘청년 촌라이프 실험 프로젝트’ 등이 주요 사업이다. 강원도는 청년 농경영 실습 임대 농장을 조성하고 외국 탐방을 지원하는 ‘SEEKER:S’(시커스)를 운영한다.

순천시도 ‘순천 한 달 살기’ 외에 청년 정책을 세우는 데 적극적이다. 단순히 일자리뿐만 아니라, 주거·결혼·출산까지 포괄한다. 2016년 9월 순천시에 거주하는 청년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준다는 목적을 담은 청년기본조례를 제정했다. 전남 지역 22개 시·군 중 네 번째였고, 광역시인 대전·울산·부산보다 빨랐다. 이어 조례를 근거로 청년협의체를 만들었다. 청년 30~40명이 1년 동안 청년 의제를 발굴하고 순천시를 홍보한다.

조례 제정 4개월 전엔 지역 청년 100여 명의 목소리를 듣는 ‘희망순천아이디어페스티벌’을 열었다. 두 달 정도 진행된 이 행사에선 청년들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와 필요한 정책을 들었다. 페스티벌에서 청년들이 제안한 청년활동공간 설치는 2018년 순천시청년센터 ‘꿈꾸는 청춘’ 개소로 이어졌다. ‘꿈꾸는 청춘’은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고, 청년들이 원하는 법률·세무·회계 등의 강의와 문화 공연, 멘토링 사업 등을 한다. 순천시에 따르면, ‘꿈꾸는 청춘’을 이용한 청년은 2018년 1만 명, 2019년 12월 초까지 약 1만8천 명이다. 순천시 관계자는 “청년센터가 없는 지자체에서 많이 견학 온다. 순천은 도농복합도시지만, 도심에 청년이 95% 이상 몰려 있어 청년 정책을 펴기에 유리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경험 살려 무료 수학 강의를

지자체에서 다양한 정책을 내놓더라도 지역에 살면 아쉬운 점이 있다. ‘베드타운’(Bed Town·일터 배후 주거지역)인 순천에는 여수나 광양과 같은 대규모 일자리가 없다. 전주에서 판매원으로 일했던 김씨는 “일자리가 제한적이었다. 주로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등이 많았다”고 했다. 김씨는 요가강사 자격증을 따서 빈집을 개조해 요가학원을 낼 생각이다. 순천시 관계자는 “창업 지원을 더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 호남권 최대 창업보육센터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름과 가을 ‘한 달 살기’를 체험한 27명 중 3명이 순천에 정착했고, 2명은 정착을 고민 중이다. 윤민효(31)씨는 집을 구한 뒤 순천에서 살아볼 예정이다. 집은 셰어하우스를 찾고 있다. 대구에서 수학학원을 운영했던 윤씨는 순천에서 살게 되면 무료 수학 강의를 하고 싶다. “지역에 사는 게 막연히 두려울 수 있다. 그 사람들에게 걱정 말고 오라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지역에도 살길은 있다. 고민하다가 때가 됐다고 생각하면 와보는 것도 괜찮다.”

순천=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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