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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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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는 왜 촛불의 분노를 샀는가

① 청문회 합의하자 압수수색
② 정경심 교수 조사 없이 기소
③ 11시간 과잉 압수수색과 추가 영장
등록 2019-10-05 16:08 수정 2020-05-03 04:29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2일 점심을 먹기 위해 대검찰청 구내식당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검찰총장이 10월2일 점심을 먹기 위해 대검찰청 구내식당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는 왜 ‘촛불’의 분노를 샀을까. 이 수사를 지휘하는 윤석열 검찰총장과 수사팀은 최근까지 ‘촛불’의 지지를 받았던 이들이다. 국정 농단과 사법 농단, 이명박 전 대통령 비리 등 ‘적폐 수사’에서 뛰어난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이들은 조 장관에 대한 수사가 ‘살아 있는 권력도 원칙대로 수사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충실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은 ‘윤석열 사단’에 폭주를 멈추라고 경고한다. 이들은 조 장관에 대한 수사에 검찰개혁을 막으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본다. 윤 총장이 ‘적폐 청산의 아이콘’이라 불릴지라도 2016년 서울 광화문 촛불의 준엄한 명령이었던 검찰개혁을 거부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전례 없는 청문회 전 수사

검찰 수사가 촛불의 분노를 산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검찰이 8월27일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전에 전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윤석열 사단은 조 장관 청문회 개최를 두고 싸우던 여야가 가까스로 청문회 일정에 합의하자마자 서울대 등 조 장관 의혹과 관련된 20여 곳을 무더기로 압수수색했다. 이를 두고 여권에서 “국회의 권한을 무시한 행태”라는 비판이 나오자, 검찰은 “국민적 의혹이 불거진 사건이라서 신속한 규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을 내놨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정권에서 정치적 쟁점이 된 권력형 비리 사건에 검찰이 뒤늦게 대응해 국민들로부터 ‘정치검찰’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과거의 검찰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라는 게 국민의 바람이다. 또 조 장관 인사청문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자칫 핵심 증거라도 사라진다면 수사가 실패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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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법조계에서는 검찰 수사가 너무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청문회가 열리기도 전에 장관 후보자를 수사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인데다, 조 장관 관련 의혹이 특수부 인력을 대거 투입할 정도로 중대한 권력형 비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조 장관 의혹은 청문회 이후에 수사하더라도 충분히 규명이 가능한 사건이다. 그럼에도 검찰이 너무 급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국회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로 보였다”고 말했다.

검찰의 성급한 수사는 윤 총장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했다. 수사의 진짜 목적이 진상 규명이 아니라 다른 데 있지 않냐는 것이다. 이 의심은 9월6일 조 장관의 인사청문회가 열린 날에 검찰이 조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소환 조사 없이 불구속 기소함으로써 더욱 짙어졌다. 검찰은 “청문회 당일이 사문서 위조의 공소시효가 끝나는 날”이라는 이유를 댔지만, 여권에서는 이날 동남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문 대통령에게 조 장관을 임명하지 말아달라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했다. 검찰 수사의 진짜 목적은 ‘조 장관 낙마’에 있고, 윤 총장은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인사권에 도전한 것이라는 게 여권의 생각이다.

대통령의 해외 순방 기간에

검찰이 9월23일 조 장관의 집을 압수수색한 것은 대규모 촛불집회를 불러온 직접적 계기가 됐다.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출국하자마자 조 장관 자택을 기습한 검찰은 11시간 동안 그곳에 머물면서 ‘과잉 수사’ 논란에 휘말렸다. 압수수색 영장 제시 직후 조 장관 쪽의 요구로 변호사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린 것과 압수물 범위 문제로 법원에서 추가 영장을 발부받은 데 걸린 시간 등을 빼면 실제 압수수색은 6시간이 걸렸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하지만 압수수색 현장에서 영장을 추가 발부받은 것은 수사팀의 사전 준비가 그만큼 철저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대통령이 출국한 틈을 노리다보니 압수수색 준비가 미흡했던 게 아니냐는 의심도 받는다. 조 장관에게 큰 타격을 준 검찰의 액션(행동)은 공교롭게도 대통령의 해외 순방 기간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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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법원에도 문재인 정부 지지자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진다. 법원은 사법 농단 수사 당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자택 압수수색 영장은 무려 네 차례나 기각하며 검찰의 주거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다. 반면 조 장관에 대해서는 자택 압수 당일에도 추가 영장을 발부할 정도로 검찰에 ‘관대’했다. 조 장관 수사에서 한 달여 동안 무려 70여 건의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됐다.

10월2일 대법원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여당 의원들은 조 장관 관련 압수수색 영장이 남발되는 게 아니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영장 담당 판사들이 나름대로 사건을 진지하게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다. 다만 영장 발부가 너무 쉽게 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받아들이고 좀더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법원은 검찰의 수사 개시 권한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압수수색 영장은 되도록 발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권력형 비리도 아닌 개인 비리 수사에서 이번처럼 단기간에 무더기로 압수수색 영장이 발부된 경우는 드물다.

검찰이 9월23일 조국 장관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11시간 동안 집에 머물러 ‘과잉 수사’ 논란이 일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검찰이 9월23일 조국 장관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11시간 동안 집에 머물러 ‘과잉 수사’ 논란이 일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우병우 전 민정수석 조사와 비교해보면

촛불의 분노 밑바탕에는 검찰에 대한 오랜 불신이 깔려 있다. 검찰 출신의 권력자에 대해서는 한없이 온정적인 모습을 보인 반면 검찰에 비판적이거나 위협적인 인사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대했다. 검찰이 과거 ‘제 식구’ 수사에서 보여준 태도와 지금 조 장관에 대한 태도는 전혀 딴판이다. 박근혜 정권의 실세였던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는 2016년 11월6일 검찰 소환 때 ‘황제 소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드러웠다. 우 수석은 검찰 고위 간부 출신으로 당시 검찰에는 ‘우병우 사단’이라 불리는 그의 측근들이 검찰 요직에 포진해 있었다. 검찰은 120여 일 동안 우 수석의 개인 비리를 수사했으나 그를 기소하지 못한 채 ‘특별수사팀’을 해체했다. 검찰은 수사를 시작한 지 70여 일이 지난 뒤에야 우 수석을 소환 조사했다. 그의 주거지를 뺀 압수수색은 압수물이 쇼핑백 한두 개 분량에 그쳐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우 수석은 정권이 바뀐 뒤 2017년 12월 개인 비리가 아닌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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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총장은 촛불의 분노에 즉각 반응했다. 윤 총장은 촛불집회 다음날인 9월29일 “검찰개혁을 위한 국민의 뜻과 국회 결정을 충실히 받들고 그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윤 총장은 또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 수사 관행 등에 대한 개혁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자 다음날인 10월1일 서울중앙지검을 제외한 다른 검찰청의 특수부를 폐지하는 등 자체 검찰개혁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윤 총장의 대응은 검찰개혁보다는 조 장관 수사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읽힌다. 윤 총장의 개혁안이 검찰의 힘을 빼는 진짜 개혁과 거리가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겉으로는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내용상으로는 별게 없다. 형사부로 이름을 바꿔도 특수(인지) 수사를 할 수 있고, 형사부 검사를 파견해서 특수부 규모도 맘대로 늘릴 수 있다. 진짜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윤 총장의 발 빠른 대응은 조 장관에 대한 수사가 외부 요인에 영향받는 걸 막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윤석열 사단의 거침없는 태도는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한 ‘적폐 청산’에서 검찰이 가장 뛰어난 성과를 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윤석열 총장이 아니었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 비리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그리고 사법 농단 수사까지 연달아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윤 총장으로서는 문재인 정부에 상당한 지분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6년 11월6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에서 팔짱을 끼고 조사받아 ‘황제 소환’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조선일보 제공

2016년 11월6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검찰에서 팔짱을 끼고 조사받아 ‘황제 소환’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조선일보 제공

민정수석 재직 동안 낙마한 차관급 12명

반면 조 장관은 2017년 5월 민정수석에 취임한 이후 고위 공직자 인사 검증 실패와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항명 사태 등으로 문재인 정부에 큰 부담을 줬다. 그가 민정수석으로 있는 동안 낙마한 차관급 이상 인사만 12명이다. 청와대 특감반 사태는 그의 조직 장악 능력에 의문을 던졌다.

검찰 안에서는 촛불집회를 불편해하는 목소리가 많다. 조 장관에 대한 수사는 그의 민정수석 재직 때 일어난 사건으로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 관계자는 “사모펀드와 웅동학원 관련 의혹은 고위 공직자 재산 등록과 인사 검증에 관련된 것으로 개인적 의혹에 그치지 않는다. 청와대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다. 이를 중대한 범죄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석열 검찰이 촛불의 분노를 이해하기는 요원해 보인다. 양쪽은 조 장관 사건을 보는 시각에서부터 큰 차이가 난다. 사법 절차가 끝난 이후에도 양쪽의 시각차는 좁혀지지 않을지 모른다. 검찰은 10월3일 야당과 보수단체의 대규모 집회가 열린 날 조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를 비공개로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정 교수의 구속영장을 청구할 것이다. 그의 구속 여부는 지긋지긋한 ‘조국 사태’를 일단락지을 것이다. 그래도 ‘검찰개혁 촛불’은 더욱 활활 타오를 것이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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