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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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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형량은 늘어날까

대법원 파기환송으로 다시 재판받는 박 전 대통령·최순실…

뇌물 혐의 분리와 말 3마리를 뇌물로 판단한 데 따른 형벌 가중이 고법의 쟁점
등록 2019-08-31 14:09 수정 2020-05-03 04:29
2017년 5월2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1심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7년 5월2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1심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원심 중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환송한다.” 8월29일 ‘국정 농단’ 사건 상고심 선고 재판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낭독한 ‘피고인 박근혜’에 대한 주문이다. 시민 수백만 명이 촛불을 들게 하고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까지 불러온 사건에 견줘 너무나 간단한 주문이었다. 사법부가 국정 농단 사건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듣고 싶었던 이들에겐 아쉬움이 남는 선고였다.

뇌물과 뇌물 이외 혐의 분리하는 법 어겨

그러나 판결 내용은 명쾌했다. 대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유죄를 확정하지 않고 파기환송심에서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그의 공범인 최순실씨와 뇌물을 제공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혐의를 통해 박 전 대통령이 왜 처벌받아야 하는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대법관 13명 전원 일치로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25년·벌금 200억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박 전 대통령 사건의 1·2심 재판부가 뇌물과 뇌물 이외 혐의를 분리해 선고하도록 한 공직선거법을 어겼기 때문에 다시 재판하라는 것이다. 공직선거법 제18조 3호 3항은 대통령 등 공무원이 재임 당시 직무와 관련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뇌물죄(가중처벌)·제3자뇌물·알선수뢰·알선수재 등 혐의를 받을 때 다른 혐의와 분리해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직자의 뇌물죄는 그 결과에 따라 선거권이나 피선거권 등이 제한받기 때문에 별도로 선고하도록 한 것이다.

뇌물 혐의와 다른 혐의를 분리해서 선고하면 형량이 늘어날 수 있다. 합쳐서 경합범 관계로 형량을 정하면 형이 감경되지만, 분리하면 혐의별로 형을 선고한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분리선고’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날 대법원 판결로 박 전 대통령의 형량이 낮아질 요인도 생겼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최순실씨에 대해 박 전 대통령과 공모해 대기업에 재단 출연 등을 요구한 혐의(강요)는 무죄로 판단했다. 따라서 공범인 박 전 대통령도 파기환송심에서 강요 혐의가 무죄가 될 여지가 생긴 것이다. 법정형이 최대 징역 5년에 이르는 강요죄가 빠지면 전체 형량이 줄어들 수 있다.

대법원은 항소심이 박 전 대통령에게 무죄를 선고한 부분은 최종 확정했다. 삼성이 미르·케이(K)스포츠재단에 낸 출연금 204억원을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과, 박 전 대통령이 포스코에 스포츠단을 창단해 최씨의 회사 ‘더블루케이’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하도록 한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부분이다. 지난해 8월 항소심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의도와 달리 실제 포스코그룹 산하에 스포츠단이 창단되지 않았고, 더블루케이와 계약도 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가 안 된다고 판단했다.

최순실 ‘강요 혐의’ 인정하지 않아

박 전 대통령은 국정 농단 사건 외에 ‘국정원장 특별활동비 뇌물’ ‘공천 개입’ 사건으로 기소돼 실형을 선고받았다.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는 징역 2년형이 확정됐고, 국가정보원장에게서 국정원 특활비 수십억원을 받은 사건은 항소심에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까지 박 전 대통령이 선고받은 형량을 합하면 징역 32년에 이른다. 박 전 대통령의 ‘40년 지기’인 최순실씨도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게 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최씨에게 징역 20년과 벌금 200억원을 선고한 항소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과 함께 삼성, 롯데, 에스케이(SK) 등 대기업을 상대로 자신이 설립한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내도록 강요하고 삼성에서 딸 정유라씨의 승마 지원을 받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대법원은 최씨에 대한 항소심 판단을 대부분 인정했다. 최씨와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이 삼성에서 받은 말 3마리의 실질적인 사용 권한이 최씨에게 있다고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를 댔다. 대법원은 “최씨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말 자체를 뇌물로 받았다는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롯데그룹에 추가 지원을 요구하는 등 최씨의 7가지 강요 혐의에 대해서는 “최씨의 요구가 강요죄의 요건인 ‘협박’, 즉 해악의 고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이날 최씨를 변호하는 이경재 변호사는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이 형사소송법의 근본 원칙보다 국정 농단 프레임으로 조성된 포퓰리즘과 국민 정서에 편승해 판단을 내렸다”고 대법원을 비난했다. 최씨와 함께 재판을 받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도 징역 5년, 벌금 6천만원이 선고된 항소심이 파기돼 다시 재판받게 됐다.

대법관들은 삼성의 승마 지원을 뇌물로 볼 것인지를 놓고 판단이 갈렸다. 다수의견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뇌물수수죄의 공동정범에 해당한다고 봤다. 반면 조희대·안철상·이동원·박상옥 대법관은 다수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무원이 뇌물공여자로 하여금 비공무원에게 뇌물을 공여하게 했다면 제3자 뇌물수수죄 성립 여부가 문제될 뿐”이라며 일반 뇌물수수죄가 아니라 제3자 뇌물수수죄를 적용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여전히 현재진행형

대법관들은 삼성이 사준 말 3마리와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낸 지원금이 뇌물인지를 놓고도 의견이 갈렸다. ‘말 3마리의 실질적 처분 권한을 최씨가 가졌기 때문에 말 구입액인 34억원은 뇌물’이라고 판단한 다수의견에 맞서, 조희대·안철상·이동원 대법관은 “최씨에게 처분 권한이 있는 것으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뇌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영재센터 지원금도 “삼성에 경영권 승계 작업 현안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뇌물이 아니라고 봤다.

삼성의 뇌물 부분은 대법관들의 견해가 엇갈린 만큼 파기환송심에서도 치열한 법리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정 농단 사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정의의 여신은 국정 농단 세력에게 최종적으로 어떤 형벌을 가할 것인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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