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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미” 전국은 쓰레기로 신음 중

‘쓰레기산’과 재활용 선별장에서 확인한 전국 폐기물 86.4% 재활용의 진실
등록 2019-06-04 13:37 수정 2020-05-08 11:28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무분별한 플라스틱 사용이 초래할 재앙에 대해 보통 ‘생산에 5초, 사용하는 데 5분, 분해되는 데 500년’이라고 한다. 이 표현은 전세계가 골치를 앓는 ‘플라스틱’ 문제의 본질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당장의 편의는 가깝고 이후 벌어질 문제는 멀리 있다.
문제는 편리함을 이유로 외면해온 플라스틱의 재앙이 점점 현실화한다는 것이다. 전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한 해 3억4800만t(2017년 기준)으로 추정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외국 통계 자료를 분석한 것을 보면, 1950년 150만t이던 전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50년에 11억2400만t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적 규모로 생산된 플라스틱은 어떻게 처리됐을까. 1950~2015년 플라스틱 누적생산량은 8억3천만t으로 이 가운데 4억9천만t(59%)이 쓰레기로 매립되거나 버려진 것으로 짐작된다. 플라스틱을 삼켜 죽는 거북이와 물고기는 지금도 세계 바다 곳곳에서 꾸준히 발견된다.

지난해 11월 <한겨레21>은 제1239호 ‘독자의 발제가 표지가 됩니다’라는 제목으로 독자편집위원회(독편)3.0 중간보고를 하며 독자 표지공모제의 출발을 알렸다. 당시 독자들은 <한겨레21> 표지에서 가장 보고 싶은 주제로 ‘일회용품의 나비효과’를 꼽았고, 내부 회의를 거쳐 ‘플라스틱 로드’로 구체화했다. 나날이 쌓이는 플라스틱 문제를 편리하다는 이유로 더는 외면할 수 없다는 독자들의 의지가 담겼다.

<한겨레21>의 내부 사정으로 3월 초(제1251호)에야 플라스틱 로드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렸다. 전자우편과 독편3.0 단체대화방을 통해 의견을 주신 분들은 25명이다. ‘<한겨레21> 플라스틱 로드’ 단체대화방에 참여해 기획부터 취재, 기사 작성까지 함께하신 분은 13명이다.

든든한 25명의 ‘동료’와 머리를 맞댔다. 제1265호 표지이야기는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한겨레21>과 독자들의 끈끈한 연대로 이뤄진 결과물이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곽민희·손승희·이삼식·정유리·장인숙·조배원·지윤정 등 ‘<한겨레21> 플라스틱 로드’ 참여 독자 25명

물이 들어찬 논으로 모내기 준비에 한창인 농민들이 보인다. 야산은 짙은 푸른색을 띠었다. 5월15일 찾은 경북 의성군 단밀면 생송리의 한 마을은 여느 농촌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단 하나 4만㎡(1만2100평) 면적에 10m 높이로 우뚝 솟은 회색 ‘쓰레기산’만 아니면. 이곳은 지난 3월3일 미국 이 “한국 플라스틱 문제는 엉망진창이다.(South Korea’s plastic problem is a literal trash fire)”이라며 보도한 17만t 규모의 쓰레기산이다.

여름에도 창문을 다 닫고 사는 마을

쓰레기 더미를 뒤져보니 비료 포장지, 폐비닐, 플라스틱 호스, 라면 봉지, 폐타이어, 섬유 등 온갖 생활·건설 폐기물이 나왔다. 쓰레기산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시커먼 물이 졸졸 흘렀다. 쓰레기에서 나오는 메탄가스로 자주 불이 나서 수시로 쓰레기산에 물을 뿌리다보니 생긴 것이다. 마을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지난 몇 년 동안 인천, 부산, 강원도 등 이곳저곳 이름이 쓰인 번호판이 달린 덤프트럭이 수시로 와 버려놓고 갔다”고 했다. 마을 주민 심아무개(70)씨는 “바람이 불면 (쓰레기) 악취가 동네 쪽으로 와 창문을 다 닫고 산다. 장마가 오면 저 더러운 물이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갈 텐데 어떡하냐”고 한숨을 쉬었다.

쓰레기산은 경북 의성에만 있지 않다. 환경부 조사 결과 현재 수도권을 포함해 전국 곳곳에 불법 폐기물이 방치된 235개의 쓰레기산(120.3만t)이 있다. 쓰레기산으로 가지 않은 폐기물 가운데 일부는 외국으로도 간다. 지난해 필리핀 불법 폐기물 수출 문제가 불거진 데 이어 최근 베트남 호찌민 깟라이항 터미널에 국내 업체가 보낸 불법 폐기물 113개 컨테이너(2112t)이 보관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관세청). 환경부의 ‘전국 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을 보면 2017년 하루 평균 41만4626t의 폐기물(생활·사업장·건설 폐기물)이 생기고 86.4%가 재활용되며, 7.8%가 매립, 5.8%가 소각됐다. 플라스틱과 폐비닐 등이 다수인 생활폐기물은 하루 평균 5만3490t이 생기는데 그중 61.6%가 재활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곳곳에 방치된 쓰레기산을 생각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통계 수치다. 현장과 통계 사이 간극은 왜 생기는 걸까? 가정에서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는 어디로 이동해 어떻게 처리되는 걸까? 이는 ‘<한겨레21> 플라스틱 로드’ 참여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기도 했다.

플라스틱은 탄생부터 재활용·폐기까지 먼 거리를 이동한다. 국내 정유사들이 주로 중동에서 수입한 원유는 정제 과정(분별증류)에서 끓는점에 따라 다양한 성분으로 분리된다. 75~150℃에서 생산되는 ‘나프타’를 석유화학업체가 가공하면 우리가 흔히 쓰는 합성수지, (PP(폴리프로필렌), PE(폴리에틸렌), PS(폴리스타이렌)·PVC(폴리염화비닐)·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등) 플라스틱 제품이 탄생한다.

가정에서 쓰고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도 여러 경로를 거쳐 재활용되거나 폐기된다. 단독주택에서 내놓은 재활용 쓰레기는 보통 구청(민간업체에 위탁)에서 수거해, 공공 재활용품 선별처리시설(공공 선별장)로 보낸다. 공동주택(아파트)은 관리사무소와 계약한 민간업체가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해 고철 등 값나가는 것은 팔고, 나머지는 공공·민간 선별장으로 보내는 구조다.

플라스틱 용기도 일반 쓰레기로

선별장은 재활용할 수 있는 제품을 골라 재질에 따라 다양한 재활용 중간처리 업체로 보낸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버린 페트병은 어떻게 재활용될까? 수거·선별을 거쳐 재활용 업체로 간 뒤 뚜껑과 라벨, 이물질을 제거하고 무색·유색·복합 등 색깔에 따라 나뉜다. 분류된 페트병은 파쇄·세척 과정을 거친 뒤 플레이크(작은 조각) 형태로 생산되고, 품질등급에 따라 각각 재활용 제품 생산 업체로 이동해 섬유, 인조 솜, 부직포, 쿠션 내장재, 달걀판 등의 제품으로 거듭난다.

문제는 재활용 가능하다고 표시된 페트병이 모두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간단한 공정으로 높은 품질의 재활용 원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페트병이 무색이어야 한다. 하지만 2016년 기준 국내 음료·생수 중 유색 페트병 비율은 36.5%에 이른다. PP, PE, PS 등 끓는점이 다른 다양한 재질이 혼합된 플라스틱은 재활용 과정에서 이를 분리하는 데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조사 결과 페트병 15만6401개 가운데 재활용이 쉬운 1등급은 1.8%(2015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페의 플라스틱 컵이 재활용 업체에서 찬밥 신세인 것도 색깔이 들어가 있거나 그림이나 글씨를 새겨 다른 재질이 혼합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공 선별장에서는 흔히 재활용되리라 생각한 플라스틱 용기가 일반 쓰레기로 분류되고 있었다. 5월23일 서울 강북구 번동의 강북재활용품선별처리시설(강북 선별장)을 가까운 곳에 거주하는 <한겨레21> 독자 김수지씨와 함께 찾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각종 생활폐기물이 악취를 풍기며 컨베이어벨트 위로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컨베이어벨트 양쪽으로 직원들은 과일 포장재, 반찬 용기, 컵라면 용기 등을 부지런히 골라내고 있었다. 선별장 관계자는 “용기에 색깔이 있거나 라벨이 붙어 있고 다른 재질로 코팅돼 있으면 보통 일반 쓰레기로 버려진다”고 설명했다. 4월1일 대형마트 일회용 비닐 사용을 금지한 뒤 현재 대부분 마트는 플라스틱 용기에 과일을 담아 팔고 있는데 모두 재활용이 안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쓰레기들은 대부분 매립장으로 가게 된다.

강북 선별장은 대부분 기계설비(비중 선별기·플라스틱 광학 선별기 등)로 폐기물을 분류하고 중간중간 사람이 보조하는 형태로, 폐기물 분류가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편이다. 하지만 민간 선별장 대부분은 긴 컨베이어벨트만 설치하고 쓰레기 분류 작업을 전적으로 인력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 쓰레기를 철저히 골라내기에 취약한 구조로 여기서 분류된 재활용 쓰레기가 재활용 업체로 가더라도 일부는 일반 쓰레기로 버려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을 들여다보면 전국 곳곳에 쓰레기산이 생기고, 쓰레기 불법 수출이 일어나는 원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국내 재활용 수거·선별·제품 생산 체계는 민간 의존도가 높다. 지방자치단체가 맡아서 운영하는 공공 선별장을 제외하고 재활용 쓰레기는 대부분 민간업체가 맡는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민간 의존도가 높은 것은 국내 재활용 체계의 장점이자 약점이다. 재활용 시장이 활발하게 돌아갈 경우는 공공 지출을 줄이고 효율적으로 재활용품을 관리할 수 있지만, 재활용 시장이 불황이면 쓰레기 수거와 처리, 재활용에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4월 폐비닐 수거 거부로 불거진 ‘쓰레기 대란’이 대표적인 예이다. 2000년 이후 국내 재활용 시장은 중국 경제성장에 맞춰 재활용 쓰레기를 중국에 수출해 꾸준히 성장했다. 하지만 중국이 2017년 7월 폐기물 수입 금지를 선언한 뒤 중국으로 가지 못한 폐지, 페트병의 가격이 폭락하면서 수익성이 떨어지는 쓰레기를 민간업체가 수거를 거부한 게 ‘쓰레기 대란’의 배경이다.

2021년까지 유색 페트병 시장에서 퇴출

게다가 오염물질 배출 주범으로 지목되는 소각시설은 꾸준히 줄고, 매립지도 점점 포화 상태로 가고 있어 재활용되지 않는 쓰레기를 처리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명박 정부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장려했던 고형연료(SRF·폐비닐을 발전소 연료로 재활용) 산업도 미세먼지, 오염물질 배출 논란으로 최근 위축돼 폐비닐도 갈 곳을 못 찾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민간 재활용 업체들이 돈이 안 되는 쓰레기를 쌓아두고 방치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 불법 브로커들이 “쓰레기를 싸게 처리해주겠다”며 처리 비용을 받고 야산에 불법 투기하거나 외국으로 보내버리는 일도 벌어졌다. 환경부 통계에서 재활용률이 높게 나타나는 것도 민간업체로 반입·처리되는 재활용 쓰레기양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이다. 쓰레기가 민간업체로 넘어가는 순간 재활용이 안 되는 플라스틱 쓰레기 등의 폐기물이 어디서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사실상 확인이 안 되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와 지자체가 시민들에게 분리배출만 독려할 뿐 재활용 처리를 민간에 맡기고 방치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구조에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의 해법으로 거론되는 것은 생산·유통 단계부터 규제를 강화하고 생산자들에게도 재활용 책임을 지금보다 더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북 선별장 관계자도 “현재 주민들이 분리배출을 잘 못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재활용이 안 되는 제품 생산에 규제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환경부가 지난 4월 관련 업계의 반발에도 2021년까지 유색 페트병을 시장에서 퇴출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플라스틱 제품 생산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재활용 비용을 생산자에게 일부 지우고 이 돈을 민간 재활용 업체에 지원)와 빈용기보증금제도(용기 반환시 보증금 줌) 등이 있다. 하지만 EPR는 매출 규모에 따라 면제되는 업체가 많다. 빈용기보증금제도 가운데 커피·패스트푸드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는 이명박 정부에서 폐지된 뒤 잠자고 있는데,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환경단체는 이 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주기를 요구한다. EPR를 담당하는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관계자는 “EPR가 시행된 지 16년이 됐는데, 그동안 달라진 환경을 고려해 개선할 때가 된 것 같다. 빈용기보증금제도도 재활용품의 가치를 올려 함부로 버려지는 것을 줄이므로 활성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통에 GPS를 붙여 쓰레기의 이동 경로를 알아봤다.

플라스틱 통에 GPS를 붙여 쓰레기의 이동 경로를 알아봤다.

1분마다 울리는 GPS의 “헬프 미!”

‘플라스틱 로드’를 진행하면서 기자는 ‘작은 실험’을 해봤다. 집에 있는 플라스틱 용기(PP)에 저가형 GPS(위성항법장치)를 붙여 아파트 플라스틱 쓰레기장에 버린 뒤 실시간 이동 경로를 파악하려 했다(사진). 2009년 미국의 한 연구소에서 폐기물에 위치추적 칩을 붙여 프린터 폐토너가 5천㎞ 이상 이동한 것을 밝혀낸 것을 ‘어설프게’ 따라 한 것이다.

실험은 5월28일 반나절 만에 끝났다. 서울 은평구에서 수거된 플라스틱은 20㎞를 이동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플라스틱 재활용 업체로 이동해 파괴되거나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쌓여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쓰레기로 버린 GPS는 주로 미아 방지용으로 쓰는데, 재활용 업체에서 처리되는 과정에 주기적으로 “HELP ME!”(도와줘!)라는 알림 메시지를 스마트폰으로 보내왔다. (기기 오작동으로 추정되지만) 플라스틱 문제 전반을 취재하는 과정에 계속 울리는 “도와줘!”라는 메시지는 가볍게 다가오지 않았다.

의성=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한겨레21> 플라스틱 로드’ 참여 독자 2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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