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3월24일 오후 3시, 경기도 김포 양촌읍 김포이주민센터 건물 1층에 있는 ‘재한줌머인연대’ 사무실. 다섯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줌머족 어린이들이 익숙한 한국어로 ‘쎄쎄쎄’를 하며 “꺄르르” 웃고 있었다. 아이들의 말과 웃음소리, 웃는 표정은 여느 한국 어린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면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들의 ‘따뜻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부모들은 친구들과 한국어로 수다를 떨며 장난치는 자녀를 자랑스러운 듯 바라봤지만 아이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이웃 부모들과 줌머 언어로 대화하던 부모들은 이따금 어눌한 한국어로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며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다.
김포에 모여 사는 줌머인 150명은 방글라데시 동남부에 있는 ‘치타공 산악지대’의 선주민(먼저 살고 있던 주민)이다.
차크마, 마르마, 트리푸라, 텅창갸 등 11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줌머인은 75만 명에 이르지만, 전체 인구가 1억6천만 명이 넘는 방글라데시에서는 소수에 불과하다. 방글라데시의 주류인 벵골족과는 인종, 언어, 종교가 다르다. 줌머인 대부분이 불교·힌두교·기독교를 믿는 반면, 방글라데시 국민은 90.4%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1971년 방글라데시가 독립하면서 주류가 된 무슬림 벵골인들은 치타공 지역 줌머인들을 박해했다. 이를 견디지 못하고 전세계를 떠도는 줌머 난민은 수십만 명에 이른다. 인도에 20만 명, 미얀마에 2만 명이 살고 프랑스와 일본 등지에 넓게 퍼져 있다.
2002년 줌머인 10여 명과 함께 재한줌머인연대를 세운 로넬 나니 차크마(47)가 처음 김포 땅을 밟은 건 1994년이었다. 당시 20대 초반의 짙푸른 청년이었던 로넬은 어느새 하늘의 뜻을 아는 쉰 살, 지천명을 내다보고 있다. 2002년 법무부에 난민신청서를 낸 뒤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그는 2003년 아들 패마스 주니 차크마(19)와 아내 졸리 데완(40)을 한국으로 데려왔다. 4살에 한국에 온 아들은 지난해 대학에 진학했다.
지난해 예멘 난민 500여 명이 제주도에 들어와 난민 지위를 신청하면서 한국 사회에 난민이 처음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난민협약국인 대한민국이 2001년 26살 에티오피아 전도사에게 난민 지위를 준 뒤 17년 만이었다.
낯선 손님인 난민에게 두려움을 느낀 일부는 ‘환영’ 대신 ‘혐오’의 말을 쏟아냈다. “난민법을 폐지하라”는 격앙된 목소리도 나왔다.
법무부 자료를 보면 한국이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한 1994년 이후 누적 신청자 수는 4만8906명으로 파악됐다. 2018년 한 해 난민 신청자 수가 1만6173명에 이른다. 2017년까지 난민 신청자 4%가 만 18살 미만이었음을 참작하면 한국에는 2천여 명의 난민(인정자, 인도적 체류자, 신청자) 아동과 청소년이 살고 있다. 부모 없이 혈혈단신으로 한국에 오는 난민 아동이 거의 없음을 고려할 때, 이들을 ‘난민 2세’로 분류할 수 있다. 지난해 500여 명의 난민 신청자에 여론은 떠들썩했지만 이미 그보다 네 배나 많은 난민 2세가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은 국내 언론이 한 번도 제대로 주목한 적 없는 난민 2세의 삶을 두 달에 걸쳐 따라가봤다. 아울러 줌머인들을 심층 설문조사해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난민의 삶을 들여다봤다. 이 이야기는 가장 오래돼서 역설적으로 난민의 미래가 될 줌머인들의 삶이다.
김포=<font color="#008ABD">글</font> 이재호 기자 ph@hani.co.kr<font color="#008ABD">사진</font>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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