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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링 기간은 ‘평~생’

선한울타리의 주거·취업·교육·자립 지원·멘토링 갖춘 ‘토털 케어 서비스’
등록 2019-03-26 18:55 수정 2020-05-03 04:29
지난해 6월16일 샘물교회와 남서울은혜교회 ‘선한울타리’ 사역팀이 수도권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사업설명회를 하고 있다. 선한울타리 제공

지난해 6월16일 샘물교회와 남서울은혜교회 ‘선한울타리’ 사역팀이 수도권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사업설명회를 하고 있다. 선한울타리 제공

“아동양육시설 보호 종료 아이들을 위한 이상향 같은 곳이 있어요.”

경북 김천의 아동양육시설인 임마누엘 영육아원 관계자가 ‘만 18세 자립’을 취재 중인 기자한테 눈이 번쩍 뜨이는 얘기를 전했다. 경기도, 서울의 몇몇 교회가 선한울타리라는 이름으로 보호 종료 아이들을 위해 국내 유일의 “토털 케어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3월13일 샘물교회에서 ‘선한울타리’라는 이름의 “자립 지원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는 최상규 집사를 만났다. 샘물교회에는 2007년 아프가니스탄 선교사 피랍 사건 이후 ‘나라에 빚을 졌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임마누엘 아동 120명에게 아동발달지원계좌(CDA·디딤씨앗통장) 후원을 시작했다. 샘물교회 신자 중 1% 넘는 30여 가정이 ‘입양 가정’이고, 최 집사도 2005년과 2011년 셋째 딸과 넷째 아들을 입양했다고 했다. ‘우리 애들도 내가 입양 안 했으면 열여덟에 자립할 텐데….’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 최 집사가 “무식해서 용감하게” 시작한 무보수 사역이 선한울타리다.

‘생활의 기술’을 가르칩니다

샘물교회에서 시작된 사역이 지금은 지구촌교회·남서울은혜교회·자양교회까지 확산됐다. 교회 4곳에서 아이 23명을 돌보고 있는데, ‘한국의 건강한 교회들이 딱 두 아이씩만 섬겨준다면’ 하는 바람으로 사역을 확대하고 있다. 교회의 풍부한 ‘인적 인프라’를 총동원해, 철저하게 ‘자립’에 초점을 맞춰 체계적이고 헌신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요보호아동’을 만 18세에 ‘자립’시킬 때, 정부가 흉내라도 내봐야 할 모범 사례였다.

아동양육시설에서 만 18세에 ‘자립당한’ 아이들에게는 몸을 누일 울타리(집)가 필요하다. 선한울타리팀은 시설 자립생에게 원룸·투룸·소형 아파트 형태의 주거지를 제공한다. ‘대숙사(한 방을 여러 명이 같이 쓰는 곳) 생활’에 지치고 ‘시설 아이 낙인’에 고통받아온 아이들에게 정말 ‘집’ 같은 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다. 아이들은 울타리에서 생활하는 동안 임대료·공과금은 물론 생활비도 내지 않는다.

양육시설을 나온 한 자립생은 에 “18세 될 때까지 달걀 프라이 한번 못 부쳐보고, 라면 한번 안 끓여보고 퇴소했다”고 말했다. 흔히 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은 독립적일 거라 오해한다. 오히려 ‘과잉보호’ 상태에서 세상에 나오는 아이가 많다.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라, 혹은 많은 아이에게 일일이 ‘생활의 기술’을 가르쳐줄 수가 없어서다. 선한울타리 사역팀은 아이들과 함께 장을 보고 요리하고 청소하면서, 집에서 사는 법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친다. 아르바이트해서 월급을 받으면, 은행에 가서 예·적금 드는 법 등 재정 관리를 가르치고, 건전한 이성 교제와 여가 활동을 포함해 세세한 자립 훈련이 지속된다.

“아이들 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돼주겠다”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은 종종 ‘큰 사고’도 친다. 최근엔 한 아이가 ‘실종’됐다. 수소문 끝에 찾아보니 불법 다단계에 빠져 두 달 만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있었다. 확인된 채무만 2천만원이었다. 선한울타리팀은 가까스로 아이를 다단계에서 빼왔고, 법무사인 교인과 함께 수시로 대책회의를 하고 있다. 아이는 교인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하루 몇 시간만 일하면 한 달에 120만원을 준다. 최 집사는 “사장님이 섬기는 마음으로 고용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울타리에 정착한 아이들은 고용지원센터 취업성공패키지를 통해 취업을 위한 학원에 다닌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과 지지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마음의 힘이 달린다.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포기하고, 입장이 곤란해지면 ‘잠수’를 타는 일도 흔하다.

대학 입학을 원하는 아이들에게는 멘토들이 공부 지도·진학 지도·원서 접수까지 도와준다. 시설 아이들은 영어·수학 등 사교육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한 방에 여러 명이 생활하는 탓에 공부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아이들한테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공부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선한울타리는 평균 C학점 이상 받아 한국장학재단 장학금을 받는 아이들에게 매달 생활비도 지원한다.

아이들이 직장을 구하면, 그때부터는 소년소녀가정 등 전세주택지원(LH전세임대주택·이하 LH주택)을 구할 수 있도록 부동산 업무를 지원한다. 최 집사는 “LH주택 계약을 10건은 했어요, 머리 빠져요”라며 고충을 얘기했다. 최 집사는 최근 경기도 용인시 기흥에 한 자립생의 원룸을 구해줬다. 집은 당장 필요한데, LH에서 잔금이 나오기까지 2주가 걸렸다. 집주인이 기다려줄 리 없었다. 집주인에게 사정해 잔금을 치를 때까지 보름치 월세를 대납해줬다. 지방에 있는 시설의 담당자들은 퇴소생이 LH주택을 계약할 때마다 일일이 수도권으로 올 수가 없다. 최 집사가 시설 담당자를 대신해 ‘보증’을 서준 아이들만 벌써 10여명이다.

선한울타리의 핵심은 ‘멘토링’이다. 멘토 결연식을 통해 주로 부부가 짝을 이뤄 자립생 한 명의 멘토가 된다. 멘토링 기간은 “평생”이다. 최 집사는 “우리 멘토들은 아이들이 원하면 끝까지,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그 아이의 할아버지 할머니도 돼주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특기병 제도 찾고 모닝콜 하고

가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 집사는 “엄마와 헤어진 상처로 마음이 바짝 말라 있어서 내적 힘이 하나도 없었고, 시설에서 클 때도 ‘아무것도 안 한’ 아이였다”고 했다. 아이는 시설 퇴소 후 울타리에서 2년을 지낼 때도 한 달간 쌀국숫집 아르바이트를 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안 했다. 숙소 바닥에 흘린 요구르트가 말라 비틀어질 때까지,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구더기가 나올 때까지 방치할 정도였다.

문제는 이 아이의 아동양육시설 생활 기간이 만 5년 미만이라 입대를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멘토들에게 비상이 걸렸다. 군대에 보내면 아이가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선한울타리는 수소문 끝에 보안 관련 특기병 제도를 찾아냈다. 6개월간 아이를 보안 프로그램 학원에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려고 매일 아침 멘토가 모닝콜을 했다. 아이에게 “제발 출석만 해달라”고 통사정도 했다. 아이는 그렇게 학원 과정을 수료했다. 군대에서도 잘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멘토와 숙소를 관리하는 울타리팀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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