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아무나 노조’ 시대지만, 노동조합을 만드는 법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학교는 물론이고 사회에 나와서도 노조를 생판 겪어보지 못한 이가 대다수다. 노조를 처음 만드는 창조자들은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으며 ‘인생은 실전’이라 한탄할 수밖에 없다. 노조,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요?
최근 1~2년 사이 노조를 직접 만든 ‘노조 메이커’들에게 핵심 노하우를 들었다. 처음 노조를 만들 때 이것만 꼭 알았더라면 좋았을 ‘꿀팁’을 대방출해달라고 졸랐다. 전국의 노조 메이커 꿈나무들이여, 노조 DIY(Do It Yourself·직접 만들기)를 참고하시라.
민주노총의 ‘떠오르는 샛별’들을 인터뷰해 작성했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조의 오세윤 네이버지회장,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 전국언론노조의 이미지 방송작가지부장, 전국공공운수노조의 구슬아 전국대학원생노조지부장, 희망연대노조의 김두영 방송스태프지부장 등이다. 이 밖에 정의당 비정규노동상담창구(비상구)의 이인자 차장,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준비위원장 등도 인터뷰했다.
노조 출범. 더 많이 모을수록 더 좋다노조 메이커들은 공통적으로 “충분히 준비 기간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오세윤 네이버지회장은 “노조에서 할 일은 많은데 함께할 사람을 모으는 게 쉽지 않다”며 “출범 전에 일할 사람(집행부)을 최대한 많이 모으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준비하는 동안 보안 유지는 필수다. 노조를 만든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회사가 어용노조를 만들어서 방해 공작을 펼치기도 한다. 현행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때문에 ‘쪽수’에서 밀리면 어용노조에 교섭권을 뺏기기도 한다.
정의당 ‘비상구’의 이인자 차장은 “사회적 분위기상 노조에 대한 색안경이 있다. 동료들은 회사에 찍혀서 손해를 볼까봐 두려워하고 머뭇거린다. 이런 불안함을 극복하려면 조합원을 더 많이 모으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국 노조의 힘은 조합원 수에서 나온다. 이인자 차장은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노조가 초반부터 고립돼 현장에서 멀어지는 일이다. 동료들과 계속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조합원 확장 사업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지 방송작가지부장은 “노조 조끼 대신 (스티커·배지 등) ‘굿즈’를 제작해 배포하는 등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라”고 추천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조합원 수가 적더라도 노조를 먼저 출범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전국대학원생노조지부는 사업장인 대학 연구실이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산별노조다. 조합원을 모으기 쉽지 않은 구조다. 그래서 소수 인원으로 먼저 노조를 출범한 뒤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공중전’으로 조합원을 모았다. 음식배달 노동자들로 구성돼 올해 5월 출범 예정인 라이더유니온의 박정훈 준비위원장도 생각이 비슷하다. 박 준비위원장은 “아래를 훑을 수 있는 근거 조직이 없는 경우 공중에 띄워서 등대 같은 역할을 하면 된다”고 말했다.
상담 전화를 걸어보자동지들을 규합했다면 이제 깃발을 올릴 때다. 사실 처음부터 노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는 드물다. 회사에서 부당한 일을 겪고 노동 상담을 받다가 ‘그건 노조를 만들어야 해결되는데요’라는 말을 듣고 얼떨결에 만드는 경우도 많다.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과 오세윤 네이버지회장은 이렇게 정의당 ‘비상구’에서 상담을 받고 노조를 만들었다. 김두영 방송스태프지부장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방송계갑질119’(직장갑질119)에서 상담을 받고 ‘방송스태프협회’를 거쳐 노조를 만들었다. 노동 상담 창구를 먼저 활용해보자. 여기서 자신의 직종과 근무 형태에 맞는 노조 메이커 전문가들을 소개받을 수 있다.
기초부터 알고 싶다면 책을 펴보자. 구슬아 전국대학원생노조지부장은 노조를 만들 때 에서 펴낸 책 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노조 설립부터 단체교섭, 파업, 부당노동행위 등 노조를 만들었을 때 겪게 되는 일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민주노총에서 만든 책 에도 근로기준법의 쟁점들과 지역별 상담창구 연락처가 잘 정리돼 있다.
직장갑질119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직장갑질119’ 검색정의당 비정규노동상담창구(비상구) 1899-0139
민주노총 노동상담·노조가입 문의 1577-2260
한국노총 노동상담·노조가입 문의 1566-2020
책·스마트폰 앱
책 상위 노조를 잘 선택하자
노조를 만들고 처음 만나는 갈림길이다. 이때 선택이 향후 노조의 운명을 가름할 수 있다. 방송스태프지부는 상위 노조로 희망연대노조를 택했다. 방송스태프지부 조합원들은 카메라·조명·장비·미술·분장 등 직종도 다르고 사업장도 다르고 근무 형태도 다르다. 게다가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일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많다. 노조를 운영하는 데 까다로운 조건은 다 가지고 있다. 희망연대노조는 보험설계사, 인터넷 설치기사 등 특수고용직을 상당수 조직했다.
김두영 방송스태프지부장은 “노조 경험이 전무한 사람들이 방송사라는 거대 권력과 싸우려니 상위 노조가 필요했다. 그중에서도 우리처럼 특성화된 노조를 운영한 경험이 많은 희망연대노조를 택했다”고 했다. 최근 화두는 ‘장시간 노동’ 타파다. 김 지부장은 “방송 스태프들에게 처음 설문조사했을 때 온갖 애로사항이 나왔는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안건을 우선순위로 삼으라고 노동 전문가들이 조언했다. 장시간 노동을 앞세운 덕에 노조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했다.
동종 업계 다른 노조는 어찌하는지도 살펴보자. 이미지 방송작가지부장은 “(비슷한 여건인) 방송연기자노조에서 단체협약 체결 노하우를 전해 들었다”며 “선배 노조의 노하우를 전수받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정부·지자체 지원을 받자신생 노조는 재정과 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찾아보면 의외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하는 노조 지원사업이 쏠쏠히 있다. 방송작가지부와 라이더유니온은 올해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동복지기반구축사업으로 1천만원을 지원받는다. 방송작가지부는 서울시뉴딜일자리(민생 호민관)에 지원해 상근자 임금을 지원받기도 했다.
서울시 감정노동 종사자 권리보호센터는 감정노동자끼리 스스로 만든 모임에 운영비(1회당 30만원)와 ‘촉진자’ 활동비(1회당 15만원)를 지원한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준비위원장은 “감정노동자들이 노조 전 단계에서 소모임을 만들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추천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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