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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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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엄마’라는 공식을 깨는 법을 제정해주세요!

카테고리 육아/성평등 청원시작 2019-1-31

청원 마감 계속, 청원인'엄마가 아닌'양육자
등록 2019-02-03 01:11 수정 2020-05-03 04:29

*육아휴직 중이거나 육아에 동참하는 남성들의 인터뷰와 글을 바탕으로 청와대 국민 청원 형식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청원 내용

저는 18개월 된 아이를 대구에서 키우고 있는 31살 아빠입니다. 2018년 3월부터 육아휴직을 했고 복직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육아휴직에 ‘태클’(?)을 걸지 않는 직장이지만 실제 휴직을 선택하기까지 고민을 수백 번 했습니다. 그래서 겨우 자신감을 가지고 휴직에 들어가려는데 주변 지인들이 그러는 거예요. “아빠가 애 잘 볼 수 있겠냐.” 어렵게 결심했는데 기가 확 꺾이더라고요.

휴직하고 평일 낮에 아이랑 외출할 때 택시를 가끔 탔어요. 기사님마다 물어보시죠. “엄마 어디 갔어요?” 그래서 육아휴직이라고 설명해드리면 “요즘 세상 편해졌다”라고 하세요. ‘아빠인데 왜 매번 아이 보는 이유를 설명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속으로 삼켜요. 아내는 “그런 이야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고 하지만 자신감이 없으면 그렇게 안 돼요. ‘엄마=육아’라는 사람들의 시선 앞에 서면 좀 위축돼요.

종일 아이 보시면 알겠지만 시간이 안 가요. 그래서 문화센터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아이 기저귀 갈려고 수유실에 들어가려는데 다른 어머님이 깜짝 놀라시더라고요. 뭐라 대꾸해야 할지 할 말이 없죠.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선배 육아 아빠들 이야기 들어보면 외출했다가 남자 화장실 변기 뚜껑 닫고 그 위에서 아이 기저귀 가느라 진땀 흘렸다는 경험이 많아요. 남자 화장실에는 기저귀 교환대가 없는 곳이 많으니까요. 화장실이 깨끗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미안할 때도 많아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남성도 들어갈 수 있는 수유실에서 기저귀를 갈다보면 ‘초보 엄마’들보다 제가 빨리 갈더라고요. 좀 뿌듯했죠. 아, 이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닌데...^^;

고용노동부가 최근 밝힌 것을 보면, 지난해 민간 부문의 남성 육아휴직자가 총 1만7662명이었다고 해요. 2017년보다 47%나 증가한 수치죠. ‘엄마가 아닌 주양육자’가 늘고 있어요. 아빠 육아휴직자만 있는 게 아니에요. 동네를 보면 유모차나 아이들의 손은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님(육아 도우미) 등 다양한 이들이 잡고 있어요. 가족 형태나 개개인 사정에 따라 주양육자의 얼굴은 점점 다양해지는 것 같아요. 육아휴직 안 하더라도 퇴근 이후나 주말에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아빠도 많고요. 그런데 사회의 시선이나 편의시설은 여전히 ‘육아는 엄마 몫’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엄마들에게만 육아 부담을 전가하는 사회는 이제 지속가능할 수 없잖아요. 아빠들도, 엄마가 아닌 사람들도 아이 양육을 주도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회로 만들어주세요! 일단 수유실 표지판에 그려진 치마 입은 여성 그림부터 바꿔보면 어떨까요?

청원 동의 1만7662명+α

39살 주부아빠 동의합니다. 몇 년 전에 2살 된 딸을 데리고 평일 오후 놀이공원을 갔습니다. 분유 먹이고 기저귀 갈려고 수유실 들어가려니 시설 관리자가 “아빠는 못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사정하니 평일 낮이라 사람이 없으니 들어가라고 해서 수유실에서 분유를 먹였어요. 그 관리자가 밖에서 망을 봐주셨네요. 엄마들 오면 나가야 한다고요.

젊은 아빠 동의합니다. 새로 생긴 대형 쇼핑몰 수유실은 남성도 들어갈 수 있게 기저귀 갈거나 분유 먹이는 공간과 수유 공간을 분리해놨더라고요. 양복 입고 아이 기저귀 가는 아빠도 가끔 보여요. 그런데 정말 수유실 표지판은 왜 매번 치마 입은 여성으로 그려져 있죠? 이것부터 바꿉시다.

나는 아빠다 “아빠는 유모차를 끌 수 없나요? ‘유모차’(乳母車)에 ‘어미 모’(母)자가 들어가 평등 육아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아요. 아이가 중심이 되는 ‘유아차’(乳兒車)가 어떨까요?” 지난해 서울시가 6월 초에 실시한 ‘성평등 언어사전 시민 참여 캠페인’에서 한 시민이 이렇게 제안했대요. ‘유모차’란 이름부터 육아는 엄마라고 못을 박아놓은 거였네요.

이런 법이 어딨어 동의요! 육아휴직하면 고용노동부에서 매달 주는 육아휴직급여 있잖아요. 남성들 육아휴직 많이 하라고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제’도 도입됐잖아요. 그런데 신청하려고 고용보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모성 보호’ 카테고리 아래에 ‘육아휴직급여 신청란’이 있어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도 ‘모성 보호’라는 표현만 있습니다. ‘부성 보호’는 없는 겁니까! 네이버에 육아 정보를 한곳에 모아둔 ‘맘앤키즈’ 카테고리는 지난해 ‘부모i’로 바뀌었어요. 육아는 ‘엄마만 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함께 하는 것’이라는 인식 변화가 반영됐다고 하더라고요.

녹색 할아빠 아이가 어린 부모들은 아직 경험 못했겠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등하교 교통안전을 지도하는 ‘녹색어머니회’가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녹색학부모회’라고 이름을 바꾸고 아빠들에게 회원 자격을 주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아직 그대로입니다. 2018년 10월21일 청원에 이런 게 있네요. “저는 서울 금천구에 있는 한 초등학교를 다니는 4학년 학생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제가 1학년 때부터 녹색어머니 교통봉사를 하시는데 우리의 안전을 위해 함께 하시는 아버지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녹색어머니회를 ‘녹색부모회’로 전환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동의하는 댓글 중에 이런 것도 있네요. “한부모가정이나 조손가정의 아동은 아침에 등교 때마다 자신의 어머니 부재를 느껴야 하네요. 명칭 개정에 동의합니다.”

여성가족부 육아 부담을 함께 짊어지고 계신 전국의 양육자를 응원합니다! 성평등한 육아를 위한 정부의 노력을 알려드립니다. 기존 철도역·공항시설 등 도로 휴게시설 남녀 화장실에 의무적으로 설치하게 되어 있는 기저귀 교환대는 문화 및 집회시설·종합병원 관광 휴게실에도 의무 설치하도록 행정안전부에 개선을 권고했고, 2018년 11월22일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개정돼 시행되고 있습니다. ‘모·부성권 표현’을 넣는 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부족한 게 많지만 여러분의 의견에 더 귀 기울이겠습니다.

청원자 여러분의 뜨거운 반응에 힘이 납니다! 제가 문화센터 수업을 들으면 처음엔 선생님이 “어머님들~”이라고 하세요. 그런데 한 달쯤 되면 저를 의식하신 건지 “어머님, 아버님들”이라고 부르세요. 최근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등·하원을 아빠가 하니까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뭐라도 엄마들보다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세요. 남성들이, 엄마가 아닌 분들이 육아에 더 많이 참여할수록 우리 사회의 모습도 조금씩 바뀌겠죠?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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