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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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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표지가 먼저 이룬 통일이여

파격적인 ‘파노라마 표지’ 3개 등 2018년 50개 표지를 만든

편집장·사진기자·편집팀장의 뒷이야기
등록 2018-12-22 14:39 수정 2020-05-03 04:29
<한겨레21> 표지들이 붙어 있는 벽. 류우종 기자

<한겨레21> 표지들이 붙어 있는 벽. 류우종 기자

기자의 뒷자리에는 표지들이 붙어 있다. 편집장 옆 벽에서 시작한 표지가 책장을 건너뛰어 벽을 타고 여기에 이르렀다. 비공식적인 일이라, 붙이는 사람이 없으면 통째로 홀랑 빠져 있다. 최근 표지는 진명선 기자가 갖다놓은 책들을 옆으로 밀치고 옆에 붙었다. 그만큼 아래까지 내려왔다. 2018년은 ‘평화의 창 평창’ 제1193호부터 지난주 제1142호 ‘뉴스 부당거래’까지 50개다. 이 표지들이 붙은 꼴은 단정하지 않은데 그 주요한 원인은 ‘파노라마 표지’에 있다. 류이근 편집장의 첫 표지 제1210호 ‘평화여 여서 오라!’와 제1217호 ‘정전에서 종전으로’, 제1221호 남북 정상회담 표지는 모두 뒷면 광고를 빼고 앞뒤를 연결한 표지였다. 박승화 사진기자가 이전 미국 시사 화보 잡지 (LIFE·1991년 3월18일치)에서 미국 노먼 슈워츠코프 사령관이 걸프전쟁에서 돌아온 여군을 안는 장면을, 앞표지에는 여군 얼굴을 뒤표지에는 사령관 얼굴을 실어 메시지를 입체적으로 전달했던 것을 기억해내고 제안한 것이다.

통하였더냐
조국 청와대 민정 수석이 <한겨레21> 1210호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조국 청와대 민정 수석이 <한겨레21> 1210호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미국 시사화보 잡지 <라이프>(LIFE) 1991년 3월18일치. 인터넷 갈무리

미국 시사화보 잡지 <라이프>(LIFE) 1991년 3월18일치. 인터넷 갈무리

류이근 편집장은 김연기 당시 편집팀장과 함께 앞과 뒤가 각각 표지가 될 수 있도록 구상했다. 앞쪽은 문재인 대통령이 “어서 오라!” 하고 뒤쪽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성큼성큼 걸으며 “평화여”라고 하는 각각의 표지는, 펼치면 만나기 직전의 희열이 전해지는 한 장의 사진이 된다. 표지의 대히트 뒤 ‘광고 수익’을 내동댕이친’ 디자인은 ‘통일’ 이슈 표지들에서 이어졌다. 제1217호에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정전 회담에 서명하는 1953년의 사진과 6월12일 공동합의문에 서명하는 북-미 두 정상의 모습이 앞뒤 표지에 담겼다. 제1221호는 남북 정상이 백두산에 올라 손을 든 뭉클한 사진에 바쳐졌다. 이번에는 나뉜 로고도 하나로 합쳐졌다.

‘통일’의 염원을 담아 앞과 뒤로 나뉘었던 표지를 하나로 ‘통일’한 것인데, 신문 역시 앞뒷면을 털어 남북 두 정상을 담는 파격을 선보였다(4월28일치). ‘파격’과 ‘파격’이 부딪쳐 ‘누가 먼저 했냐’, 다시 말해 ‘누가 따라 했냐’는 질문도 있었던 모양이다. 류이근 편집장은 “생각은 우리가 먼저 했고 실행은 신문이 먼저 했지만, 독립적으로 같은 아이디어를 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통하였느냐’는 다른 시사주간지와도 있었다. 사회를 훑는 이슈를 좇는 것이 시사주간지의 숙명이고, 그 숙명은 비슷한 꼴로 점지되기도 한다. 제주도에 예멘 난민이 도착했을 때 누구보다 빨리 이재호 기자는 제주도로 내려갔다. 이재호 기자는 현장에 내려온 다른 기자들에게 난민들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누르와 파티마(제1218호)는 난민 중 드물게 부부인데다 파타마의 히잡이 이슬람교도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 상징적 인물로 적당해 보여 인기가 많았다. 당시 경쟁지가 이들 사진을 찍는 것을 알았고, 목요일 마감이던 경쟁지에서 낸 표지를 본 뒤였지만(당시 은 금요일 마감이었다) 표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사진을 찾아보면 알 수 있다. 간절한 눈빛은 백 문장이 불필이다.

올해에는 타이포그래피(활자)로 된 표지가 많다. ‘미투 위드유’(제1199호), ‘대구’(제1215호), ‘오버투어리즘’(제1220호), ‘사(史)’(제1222호), ‘폭염’(제1224호), ‘괜찮아’(제1240호) 등이 표지에 등장했다. 표지를 맡고 있는 장광석 디자인주 실장은 “글자가 이미지를 그대로 담고 있을 때 이미지보다 더 낫다”고 말한다. ‘폭염’이라는 글자 자체를 보면 더워지는 식이다. “다 다른 방법으로 제작했고 이력도 다르다. ‘대구’를 쓴 건 편집장의 주문이었고, ‘오버투어리즘’은 과잉을 직관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어서 시도했다. 글자 사이로 관광 쓰레기를 넣었는데 컵라면과 소주를 넣어야 한다는 편집장의 의견이 있었다. 그것을 반영했고 편집장은 매우 흡족해했다.” ‘오버투어리즘’은 제호도 뒤틀린 느낌으로 만들었다. “제호의 경우 가리거나, 손느낌 나게 그리는 정도의 시도는 있었지만 형태를 뒤튼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자세히 보면 재밌는 표지는 또 있다. ‘김진수 전 서울대 교수의 특허 날치기’ 2편인 제1233호는 1편에서 만들었다가 채택되지 않은 표지를 재가공했다. 1편의 특허 인장에서 특허를 훔쳐 도망가는 도둑은 서울대 엠블럼의 도둑으로 재활용됐다.

독자 의견은 표지 결정에 결정적

김연기 전 편집팀장은 사무실에서 가끔 홀연히 사라지곤 한다. “그럴 때 편집장이 찾기도 하는데, 돌아와서 물어보면 우물쭈물하고 말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김 전 팀장은 ‘표지 문구’를 구상하기 위해 효창공원으로 잠적한 것이었다. 법의 여신 디케의 얼굴을 벗기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얼굴이 나오는 식으로 디자인된 표지에 얹은 ‘윗선을 벗기면 위선이 보인다’(제1234호) 문구 역시 효창공원에서 탄생했다. 원안은 ‘양파를 벗기다’였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양파로 불리기도 했다. 까도 까도 비밀이 또 드러난다는 의미다. 표지 문구와 표지안은 ‘안희정’ 무죄판결 뒤 피해자 검찰 진술조서를 입수해 쓴 ‘무죄를 벗기다’(제1226호)의 연속선에 있었지만 너무 비슷해서 오히려 대안을 찾아야 했고 좋은 문구가 나왔다. ‘위선-윗선’처럼 김 전 팀장은 ‘난임-낙인’ ‘평화의 창 평창’ ‘평화를 위한 합창 평창’ 등 문구 안에 반복 리듬을 만드는 것을 즐겼다. 김 전 팀장은 고 노회찬 전 의원의 표지(제1223호)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은 노 전 의원의 유서에 있었던 문구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애도를 넘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다짐하게 하는 문장이다.

은 일반적으로 3개 이상의 표지를 만든다. 월요일, 화요일 표지만을 위한 회의를 하고 나온 안 중 3개를 정리해 표지 작업에 들어간다. 고 노회찬 의원 표지인 제1223호부터는 독자 오픈 채팅방에 의견을 물어서 표지를 결정하고 있다. 류이근 편집장은 “독자들의 의견은 표지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치률은 70%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독자의 많은 지지를 얻은 표지가 아닌 다른 것이 표지가 될 경우 류 편집장은 채팅방에서 이유를 설명해준다고 한다. 미스매치의 주요 이유는 투표가 표지 이미지로만 이뤄지기 때문이다. 문구까지 앉히면 새로운 표지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의 표지 최종 결정 시간은 자정 부근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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