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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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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새로운 비즈니스 전략

언론이 광고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시대에 저널리즘이란
등록 2018-12-15 12:59 수정 2020-05-03 04:29
포털에 검색하면 수많은 언론홍보대행사가 “30분 이내 송출 저렴한 가격” 등 광고 문구로 고객을 모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각 언론홍보대행사 누리집 갈무리

포털에 검색하면 수많은 언론홍보대행사가 “30분 이내 송출 저렴한 가격” 등 광고 문구로 고객을 모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각 언론홍보대행사 누리집 갈무리

‘뉴스’, 그 자체를 ‘사실’이라 믿던 시절이 있었다. 믿을 만한 언론사의 엘리트 기자가 생산하는 것이 뉴스이기 때문에, 적어도 가짜일 리 없다는 상식이 통했다. 하지만 2016년 이후 많은 국가가 가짜뉴스에 몸살을 앓고 있다. 오보, 풍자, 패러디, 루머와 가짜뉴스가 다른 점은 의도성과 형식성에 있다. 즉 가짜뉴스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독자가 신뢰하도록 뉴스의 형식을 빌려 가짜 기자가 만든다. 그리고 인터넷이 연결된 모든 디지털 플랫폼에서 많은 정보와 섞여 유통·확산되며,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교묘하게 기사 복제를 일상화하는 어뷰징 언론 시장에서 더 빠르게 성장해 심각한 사회문제들과 관련이 깊다.

뉴스, 대체로 사실이거나 대체로 사실이 아니거나

물론 뉴스 소비자 개인이 가짜뉴스를 가려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가짜뉴스가 인터넷 매체 성장에 기생해 급성장할수록 피해는 늘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학계뿐만 아니라 언론사와 민간단체까지 협심해 가짜뉴스에 대응하는 것은 옳다. 그런데도 독재정권의 언론 탄압에 저항하며 민주 시민의 자존심을 지켜왔던 언론의 역사가 떠올라 뉴스가 ‘진실 미터기’ 테스트를 통과해야 ‘뉴스’라는 암담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사실 미국의 폴리티팩트(PolitiFact)와 국내 팩트체크(factcheck)는 거짓 뉴스와 사실 뉴스 판정 사이 ‘대체로 사실이거나’ ‘절반이 사실’ 혹은 ‘대체로 사실이 아님’이라는 기준을 두고 있다. 뉴스가 거짓과 사실 사이에서 전략적 협상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뉴스는 소수의 이익과 권력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에 정교하게 뉴스처럼 포장된다.

특히 인터넷에선 광고가 기사 내용을 가릴 만큼 광고자본의 영향력이 세져, 뉴스 소비자는 온라인 기사를 볼 때마다 강제로 수많은 광고를 보게 된다. 하지만 소비자는 무료로 제공돼온 온라인 뉴스 서비스에 길들 뿐, 원치 않는 팝업 광고에 저항하지 않는다. 최근 온라인 광고는 기사 면을 광고판으로 만들어버릴 만큼 다양해져 수용자가 저항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

대신 뉴스를 소비하는 주류 세대가 변하고 있다. 이들은 청소년 시절부터 인터넷을 경험했고, 소셜미디어와 정보통신기술 활용 능력이 뛰어난 밀레니얼 세대로 손안의 모바일이 연결한 네트워크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운다. 신문과 방송에서 지식과 정보를 그리고 즐거움을 찾던 세대조차 모바일과 인터넷이 주는 편리함에 빠져들면서, 세상의 모든 사실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적극적인 소비자, 기업을 위하는 언론

상품과 서비스 판매를 촉진해 끊임없이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영리기업들이 이러한 변화를 감지 못할 리 없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온라인 광고가 신문과 지상파 TV 광고를 추월했고, 언론의 대기업 광고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중소 규모 기업들이 광고비 지출 대비 더 큰 효과를 보이는 온라인 광고를 선호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망가진 저널리즘 논의를 배제한 채, 매체 환경 변화와 언론사 광고 수익 감소로 가짜뉴스로 벌어지는 사회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

뉴스를 믿지 못하는 세상이 온 것을 가장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하는 사람은 우선 기자들이다. 고품질의 뉴스를 생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광고주라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하는 태도로는 문제의 본질을 볼 수 없다. 뉴스 소비자들은 뉴스를 생산하던 엘리트 집단에 더는 의존하지 않고, 원하는 세상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섰다. 다양한 사건의 현장을 실시간 중계하거나, 주류 언론이 주목하지 않은 사건에 의혹을 제기하며, 부당한 권력과 거래를 감시하며, 집단지성을 발휘해 협력적 사고의 힘을 보여준다.

인터넷 사회 속 일상은 모든 세계시민과 실시간 연결돼, 필요하면 언제라도 글로벌 연대를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커져가는 불안정성, 불확정성,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는 개인은 견고하고 경직된 사회가 보여준 예측 가능함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즉, 우리 사회에 아직 희망과 다양한 사회적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기사로써 보여주었던 진실한 언론이 나와주길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에선 언론이 자본에 종속되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이 상황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됐다. 최근엔 관료, 판검사, 학자를 관리하는 대기업 사장에게 언론인이 광고를 청탁하며 조아린 사건이 보도됐다. 그뿐만 아니라 학계에선 소수 대기업이 광고량으로 언론사를 길들여, 언론사는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저널리즘의 사명감보다, 기업에 불리한 기사는 피하고 기업에 유리하거나 호의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기사를 생산한다는 것이 분석 결과로 발표된 바 있다.

더 심각한 경우는, 언론사가 기사의 지면이나 인터넷 기사를 판다는 것이다. 예를 들며 언론사는 기사 종류에 따른 게재 건당 단가표를 가지고 광고주들과 거래한다. 광고주는 이 비용을 기업의 이미지 관리와 홍보 비용이라 생각하고 기사 지면을 사며, 입맛에 맞는 기사를 생산·유통·관리까지 해달라고 요구한다.

기사 거래 시장이 성장하자 일부 홍보대행사는 인터넷 언론을 직접 운영하며, 기업 홍보를 기사처럼 만들어 플랫폼에서 유통까지 하고 있다. 이들에겐 가짜뉴스가 새로운 비즈니스 전략일 뿐이다. 결국 소비자본주의는 온라인에서 뉴스, 취미, 오락, 교육, 생활정보 등 모든 것을 검색하고 공유하는 디지털 세대까지 포섭하기 위해 스펙터클한 사건과 이미지로 저널리즘을 훼손하고 있다.

디지털 세대를 포섭하는 소비자본주의

예컨대 거짓과 사실 사이에서 시장자본 논리에 따라, 전략적으로 비즈니스를 한 일부 언론은 ‘대체로 사실이거나’ ‘절반만 사실’ 혹은 ‘대체로 사실이 아닌’ 애매한 공간에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거나 진실을 왜곡하며, 사실과 거리가 먼 가짜뉴스를 자연스럽게 확대·재생산한다. 결국 뉴스의 진위를 검증하는 방식으로 대응해보지만 저널리즘이 훼손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사회적 비용과 시간을 계속 들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널리즘의 정상화는 지금 바로, 오늘부터 시작해야 한다.

최은경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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