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투자자 배두열(29)씨는 요새 서너 집 건너 한 집이라는 ‘1인가구’다. 대학 졸업 뒤 서울 양재동 오피스텔에서 5년 넘게 ‘나 홀로’ 생활하는 배씨는 집에서 밥을 거의 해먹지 않는다. 끓는 물은 3분, 전자레인지는 2분이면 ‘오케이’라는 간편식을 마트에서 구입해 먹거나, 편의점에서 ‘1식 8찬’에 국까지 딸려나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비율) ‘갑’을 자랑하는 5천원짜리 도시락을 사먹는다. 낱개로 팔지 않아 혼자 사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멀리했던 과일이나 채소도 요즘엔 편의점이나 마트에 종류별로 1개씩, 그것도 세척 포장돼 나와 골고루 먹는다. 지난여름 무더위엔 한번 먹기에 딱 좋은 ‘16등분 수박’을 사다가 밤마다 1개씩 먹으며 더위를 식혔다. 배씨는 “처음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집에선 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전부였지만 지금은 김치·된장·청국장 찌개는 물론이고 알탕과 갈비탕 등도 소용량 간편식으로 포장돼 나와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에 사는 조미영(38)씨는 미국 드라마 의 주인공들과 같은 화려한 싱글이다. 대학 진학과 함께 혼자 살기 시작해 나 홀로 생활이 벌써 20년째다. 학원 강사인 조씨는 독신으로 살면서 같은 연령대 직장인들에 비해 소득이 높아 당당하게 싱글 생활을 즐긴다. 혼자 사는 만큼 취미나 자기 계발, 그리고 사회적 관계 유지에 많은 투자를 한다. 조씨는 최근 이탈리아로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사에서 내놓은 ‘1인여행’ 상품을 이용했다. 자유여행에 견줘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전문 여행가이드가 설계해준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다보니 알차게 여행을 마쳤다. 조씨는 “결혼 시기를 놓쳐 혼자 사는 주변의 또래 싱글들은 대부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소비하고 자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3년 전 이혼을 한 최영순(59)씨는 올해 봄 서울 도봉동의 전용면적 165㎡ 대형 아파트를 팔고 신림동의 전용면적 63㎡짜리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이사했다. 이사하기 전까지 딸과 함께 살았지만 올해 초 딸이 결혼해 혼자 남게 되면서 집을 옮겼다. 중대형 주택을 보유해야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는 통념을 깨고 작은 평형대로 이사한 것이다. 한푼 두푼 돈을 모아 식구가 늘면 큰 집으로 이사 가는 게 과거 한국인들의 ‘내 집 마련 정석’이었지만 이젠 상황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대형 아파트의 인기가 압도적으로 높았던 과거와 달리 85㎡ 미만의 중소형 아파트에 수요가 몰리며 주택시장의 패러다임이 ‘축소 지향’으로 변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 우리 주변에 1인가구가 가파르게 늘어나며 나타난 현상이다. 최씨는 “내 또래 혼자 사는 이들을 보면 외형보다는 실속을 중시하는 경향이 크다”며 “요즘 새로 들어서는 소형 아파트 단지는 보안이나 편의시설이 잘돼 있어 큰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소비시장 큰손 떠오른 1인가구 </font></font>급증하는 1인가구가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르면서 비즈니스 개념을 바꾸고 있다. 편의점·마트·백화점 등 식품·유통 업계는 말할 것도 없고 주거, 금융서비스, 가구·가전, 음식점, 여행·레저, 문화 콘텐츠, 의료, 보안·청소·심부름 서비스 등 소비시장 전반에서 1인가구를 겨냥한 맞춤형 상품이 넘쳐난다. 이는 일시적인 트렌드(추세)가 아니다. 인구구조와 가구 구성의 급속한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주택시장에선 이미 소형 주택이 대세가 됐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1인가구가 최대 고객으로 자리잡았다. 마트와 편의점에선 낱개 포장 상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음식점은 혼자 오는 손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가게 구조까지 뜯어고친다. 가히 1인가구가 탄생시킨 ‘1인경제’의 진화라고 할 수 있다.
1인가구는 이미 전체 가구의 30%에 육박했다. 통계청이 9월28일 발표한 ‘2017년 인구주택 총조사’를 보면 1인가구는 28.6%(561만9천 가구)를 차지했다. 2인가구(26.7%)나 3인가구(21.2%)보다 많아 가장 주된 가구 형태로 자리잡았다. 증가세도 가파르다. 1980년 4.8%였던 1인가구 비율은 1995년 12.7%로 완만하게 오르다가 2000년 15.5%, 2015년 27.2%로 치솟았다.
1인가구가 이렇게 급속도로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고령사회(65살 인구 비중이 14% 이상)로 빠르게 진입하고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로 젊은층의 결혼연령이 갈수록 늦어지는데다 이혼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성의 활발한 사회 진출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1인가구 증가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은 1인가구 비율이 2025년 31.3%, 2035년 34.3%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1인가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주목할 것은 급증하는 1인가구가 바꿔놓은 경제 환경이다. 경제를 움직이는 거대한 집단으로 떠오르면서 소비시장의 트렌드와 패러다임(체계)을 바꿨다. 정인 KB경영연구소 1인가구 연구센터장은 “1인가구는 다인가구에 견줘 높은 수준의 소비성향(가처분소득 중 실제 소비로 지출되는 금액의 비율)을 유지해 소비지출 분야에서 1인가구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1인가구의 중요한 특징은 왕성한 소비력이다. 부양가족이 없다보니 2인 또는 3·4인 가구에 비해 소비수준이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가구의 소비성향(2015년 기준)은 80.3%로 2인가구(70.2%), 3인가구(74.4%), 4인가구(76%)를 모두 웃돈다. 자연스럽게 1인가구의 소비지출 규모도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1인가구의 문화소비지출행태 분석’ 보고서에서 전체 가계의 소비지출에서 1인가구의 소비지출 비중이 2010년 8.7%(36조원)에서 2020년 15.9%(120조원)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러한 증가세는 앞으로 속도가 붙을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2030년에는 1인가구의 소비지출 규모가 194조원으로 전체 민간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대로 들어맞을 경우 4인가구 소비지출(178조원)을 훌쩍 뛰어넘어 1인가구가 내수를 움직이는 큰손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30대 1인가구 소득이 가장 높아</font></font>
물론 모든 1인가구가 소비시장의 큰손인 것은 아니다. 세대별 또는 계층별로 1인가구의 성격에 따라 소득수준과 소비성향이 달라진다. 높은 소득을 올리면서 독신을 즐기는 화려한 싱글이 있는 반면, 독거노인이나 취업준비생 등 사회적 취약계층인 경우도 많다. 화려한 싱글이 소비를 촉진하고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된다면, 취약계층 1인가구는 경제성장의 동력을 약화하기도 한다.
KB경영연구소가 9월30일 내놓은 ‘2018 한국 1인가구 보고서’를 보면, 1인가구의 연평균 소득은 30대가 3402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정인 1인가구 연구센터장은 “40대 1인가구의 평균소득(3197만원)은 30대보다 조금 낮은 수준이지만 50대(2152만원)와 60대(1121만원) 1인가구의 소득은 급격하게 하락하고 있다”며 “50대까지 연령대 상승과 함께 소득도 높아지는 다인가구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소득수준이 높은 20~30대 1인가구는 당당하게 싱글 생활을 즐기는 계층이다. 이들은 2인 또는 3인 가구, 취약계층에 속하는 1인가구보다 소비수준이 높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이 연령대의 1인가구 비율이 가장 높고 증가세도 가파르다는 것이다. 1인가구 비율을 연령대로 구분하면 25~34살이 23.8%로 가장 높다. 2000년(14.9%)에 견줘보면 8.9%포인트나 뛰었다. 소득과 소비수준이 높은 20~30대 1인가구의 가파른 증가는 경제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져다준다. LG경제연구원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분석한 결과 20~30대 1인가구는 같은 연령대의 2인가구보다 15% 이상 더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솔로 이코노미’(Solo Economy) 개념을 처음 제시한 미국 뉴욕대학 에릭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Going Solo)라는 책에서 “젊은 싱글족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쉽게 받아들이고 소비성향 또한 높다”며 “이들은 소비시장에서 질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가진다”고 지적했다.
반면 독거노인 등 사회적 취약계층에 속하는 1인가구는 사정이 다르다. 경제적 약자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다지 반가운 얘기가 아니다. 취약계층일 가능성이 높은 75~84살 1인가구의 비율과 증가세는 낮은 편이다. 2000년과 견줘보면 남성은 2.3%에서 3.2%로 올랐고, 여성은 11.2%에서 15.8%로 증가했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소득과 소비수준에 따라 자연스럽게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만족도도 다르다. KB경영연구소의 설문조사를 보면 20대와 30대 1인가구 여성의 82.7%, 78.3%가 “현재 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반면 50대 여성의 만족도는 72.6%에 그쳤다. 남성은 20대가 71.2%로 가장 높았고, 50대가 51.4%로 가장 낮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가성비 중시하는 소비 형태</font></font>
여하튼 1인가구 급증에 따른 소비구조의 변화가 불가피한 만큼 기업의 비즈니스 방식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새 소비시장을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1인가구를 겨냥한 상품의 가장 큰 특징은 소형·소용량화다. 이런 ‘축소 지향’ 상품은 모든 소비시장에서 대세로 자리잡았다. 우선 집이 작아지고 있다. 산업화 이후 우리 사회에선 단 1평이라도 늘려 큰 집으로 옮겨가는 것이 성공의 조건이었다. 가족 수에 상관없이 전용면적 85㎡(25평)는 넘어야 한다는 상식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1인가구가 전체의 30%에 이르고 2인가구까지 합치면 절반을 넘어서면서 중소형 중심으로 주택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이다. 지난 8월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의 91%(2만7651가구)가 전용면적 85㎡ 이하 중소형이었다. 새로 공급된 아파트 열 집 가운데 아홉 집이 중소형인 셈이다.
식품업계도 1인가구를 위한 소용량 간편식 제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간편식품은 혼자 먹기 적당한 350g 미만의 소용량이 대세다. 대형마트들은 과일·채소 등 신선식품도 소포장으로 내놓는다. 롯데마트는 소용량 포장 채소의 올해 상반기 매출이 전년보다 크게 늘었다. 가전·가구 업계에서도 크기와 가격을 줄인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KB경영연구소가 연소득 1200만원 이상의 25~59살 1인가구 2천 명에게 지난 6월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1인가구는 무엇보다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 형태를 보여준다. 김회민 KB경영연구소 연구원은 “1인가구의 소비 특징은 구매 전에 쇼핑 목록을 작성해 여러 곳을 비교하고 자체브랜드(PB) 상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요약된다”며 “1인가구 증가에 따른 시장 수요를 선점하려면 기업들이 세대·계층별 1인가구의 소득과 소비 형태를 면밀히 분석해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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