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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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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돼지의 공존 플랜

환경·이웃 희생한 돼지농장 지속 불가능해…

사육총량제·양분총량제로 패러다임 대전환을
등록 2018-09-15 14:47 수정 2020-05-03 04:29
경남 거창 한 동물복지 농장의 돼지 모습. 영국은 2001년 구제역 홍역을 치른 뒤 환경부와 농식품부를 통합한 환경농촌식품부를 출범시켰고, 동물복지 정책을 강화했다. 류우종 기자

경남 거창 한 동물복지 농장의 돼지 모습. 영국은 2001년 구제역 홍역을 치른 뒤 환경부와 농식품부를 통합한 환경농촌식품부를 출범시켰고, 동물복지 정책을 강화했다. 류우종 기자

대한민국 돼지농장은 고속성장의 길을 달려왔다.

2016년 돼지 사육 총생산액은 6조7702억원으로 쌀 생산액 6조4572억원을 앞질렀다. 유사 이래 대한민국 농업의 대표 품목 쌀이 1위 자리를 내놓은 것 자체가 일대 사건이다. 이듬해인 2017년에도 돼지 사육 생산액은 8.7% 더 늘어났다. 독보적인 돼지 산업의 상승 기세는 현장에서 더 뚜렷이 체감된다. 수년간 돼지고기 가격과 수요가 쌍끌이 상승세를 타면서, 지속적인 호황을 누리고 있다. 악취 민원 때문에 신규 농장 설립이 어려워지면서, 기존 농장의 거래 가격은 금값이 됐다.

돼지는 수입해도 환경은 수입못한다

문제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다. 전문가들은 과거와의 과감한 단절, 새로운 패러다임의 무장을 요구한다. 서울대 그린바이오과학기술원 최지용 교수는 “환경과 축산의 공존 플랜”을 제안하고, 농업계 민간 싱크탱크인 GS&J의 이정환 이사장은 “돼지는 수입할 수 있어도 환경은 수입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거칠게 이야기하면, 그동안 돼지농장은 압축성장을 했다. 그 과정에서 환경과 이웃이 대신 비용을 치렀다.

첫째, 물과 땅과 공기를 오염시켰다. 돼지똥을 처리하는 데 충분한 돈과 정성을 들이지 않았다. 이를 방치한 국가의 책임도 크다. 둘째, 이웃을 희생했고, 소비자들의 일방적인 지원을 받았다. 순박한 시골 이웃은 악취를 참았다. 지하수에서 냄새가 나도 그러려니 했다. 소비자들은 국산이라서 건강한 먹거리라고 무조건 믿었다. 많은 돼지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지 미처 몰랐고, 돼지 사료가 거의 전량 수입된다는 사실도 잘 알지 못했다. 셋째, 돼지를 불결한 환경에서 학대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세상도 사람도 크게 달라졌다. 지금의 시민은 이중적 요구를 한다. 값싸고 건강한 단백질을 원하면서도, 농장 돼지의 최소한 동물권을 배려해 줄 것을 기대한다. 다행히, 동물복지에 과감하게 지갑을 여는 윤리적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 시대변화를 거부해선, 결국 시장에서 외면당한다..

이정환 이사장은 축산, 나아가 농업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다시 질문할 것을 요구한다. “지금까지는 좀더 싸게, 좀더 많이,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이제는 아니다. 글로벌 시장이 열려 있어, 언제라도 싼 농산물이 무한정 밀려들어온다. 어떻게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수입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에 가치가 있다. ‘환경’ ‘생태’ ‘안전’이 열쇳말이다. 그런 것이 농축산 생산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깨끗한 농촌을 수입할 수 있는가. 마을을 오염시켜서는 존속할 수가 없다. 소비자는 깨끗하고 안전한 국내산 식품을 절실하게 찾는다. 소비자는 믿음이 생기면, 얼마든지 값을 낸다. 그렇게 대전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괴리가 생기면, 세금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

이제, 돼지농장은 환경과 이웃, 그리고 동물권과 공존하는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 농장주들이 먼저 나서야 하고,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 시민사회도 머리를 맞대야 한다. 세가지 정책 대전환을 제안한다.

첫째, 우리 땅과 물이 얼마나 많은 돼지 사육을 감당할 수 있는지, 국가에서 그 총량을 정해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1100만 마리 돼지가 날마다 쏟아내는 막대한 양의 똥오줌을 우리 환경과 이웃이 감내할 수 있는가. 그런 환경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인가. 축산 똥오줌을 거름으로 순환시키는 경축 순환 농업을 구축해야 하지만, 필요충분한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네덜란드와 벨기에서는 1980~1990년대부터 가축사육마릿수 총량제를 실시해, 지역별로 가축사육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우리도 제주 등 일부 밀집지역의 돼지사육 축소가 불가피해 보인다.

환경부-농식품부 통합한 영국 사례

둘째, 양분총량제도 함께 체계적으로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양분총량제는 지역별로 농경지의 양분의 투입과 반출을 파악해, 지역의 환경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총량을 관리하는 제도이다. 우리 농토는 화학비료의 과다 살포로 질소와 인 등의 양분이 이미 과잉 상태다. 너무 많은 비료는 작물의 생장을 해치고 물로 스며들어 오염원이 된다. 덴마크와 네덜란드 등의 유럽연합 국가들은, 가축사육 농장에서 분뇨를 퇴비로 만들어 뿌릴 수 있는 적정면적의 농경지를 확보할 것을 엄격히 요구한다. 그렇게 가축 사육 마릿수를 실질적으로 통제한다.

셋째, 환경·생태·안전과 농축산(생산)을 하나로 묶는 정책 통합을 제안한다. 지금처럼 농산물 생산을 담당하는 농식품부의 고립된 기능과 힘만으로는 축산분뇨 문제조차 해결할 수 없다. 환경부와 농림축산식품부를 환경농촌식품부(데프라)로 통합한 영국 사례가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은 2001년 어마어마한 구제역 홍역을 치른 뒤 경제·환경·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농업과 식품의 미래’를 연구하는 정책위원회를 가동했고, 환경부와 농식품부를 통합한 데프라를 출범시켰다. 데프라는 농업이 소비자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수질·공기·토양·생물다양성·경관 등 농업과 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강화하고, 동물복지와 건강한 농촌경제를 구축하는 환경농업 정책을 수행한다.

농식품부와 환경부는 발등의 불로 떨어진 축산 분뇨와 사육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돼지 분뇨 처리와 관련해서는 공동자원화 시설에서 퇴비와 액비로 처리하는 비중을 지금 35% 수준에서 2024년 50%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임신한 돼지가 이용하는 스톨 크기의 동물복지 기준을 강화하는 등 밀집 사육 환경을 개선하려는 여러 정책도 조율하고 있다. 당연히 꼭 해야 할 조처들이지만, 눈앞의 미시적인 것에 머물러 있다는 한계가 뚜렷하다. 패러다임을 바꾸는 큰 논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정부, 밀집 사육 개선 대책 마련

한편, 대한한돈협회 쪽은 “농장주들이 먼저 분뇨 처리와 사육환경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를 이루고 있으며, 자체 대책을 세워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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