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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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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관광지냐 주거지냐”

주민 떠나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 전조 보여 …
한옥 관광명소 됐지만 주민들은 “못 살겠다”
등록 2018-07-10 16:56 수정 2020-05-03 04:28
토요일인 6월23일 관광객이 붐비는 서울 종로구 북촌로11길 모습. 골목 벽에 주민들이 걸어놓은 “북촌 주민은 노예”라는 펼침막이 보인다.

토요일인 6월23일 관광객이 붐비는 서울 종로구 북촌로11길 모습. 골목 벽에 주민들이 걸어놓은 “북촌 주민은 노예”라는 펼침막이 보인다.

서울 종로구 전체 한옥 4분의 1이 모여 있는 가회동. 이곳 북촌로11길로 들어서는 돈미약국 앞에서는 4월 이후 토요일마다 주민집회가 열린다. 주민 김아무개씨는 6월23일 집회에 “We are just money-maker for Seoul city!”(우리가 서울시를 위한 돈벌이 도구인가!)라고 쓴 영어 손팻말을 들고나왔다. 그는 “북촌 한옥을 홍보해 엄청난 관광객을 서울로 끌어들이지만, 정작 주민들은 시끄러워서 살 수 없다”고 서울시를 맹비난했다.

주거 공간 빼앗긴 주민들의 분노
같은 날 열린 주민집회에서 “우리는 서울시를 위해 돈 버는 도구”라는 자조적 문구가 적힌 손팻말이 등장했다.

같은 날 열린 주민집회에서 “우리는 서울시를 위해 돈 버는 도구”라는 자조적 문구가 적힌 손팻말이 등장했다.

골목 벽에 적힌 ‘서울시는 주인, 북촌 주민은 노예’라는 구호도 눈에 띈다. 조금 아래쪽 골목엔 “Our village is suffering from tourists!”(관광객들 때문에 마을이 힘들다)라는 펼침막이 붙어 있다. 하루 1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서울 한옥 관광의 명소가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다. 이곳 관광객의 70%는 외국인이고, 이른 시간(아침 6시 이전)에 찾아오는 관광객도 전체의 10%에 이른다.

주민 오아무개(57)씨는 “시도 때도 없이 사진을 찍거나 대문 안을 기웃거리는 관광객들한테 시달리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앵그리 주민’이 됐다”며 “집을 비워둔 채 떠나는 이웃이 많아지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민속촌처럼 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북촌이 ‘정주형 관광지’라는 원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내 집이 있는 비좁은 골목길로 자동차를 몰고 들어오다 관광객에게 욕먹기 일쑤여서 자동차를 아예 시골집에 내려놓았다”고 하소연하며 “시골집에서 지낼 때가 점점 더 많아진다”고 했다.

서울시 통계로도, 관광객에 떠밀려 주민들이 북촌을 떠나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 현상이 뚜렷이 확인된다. 2012년 9005명에 이르던 삼청동과 가회동의 북촌 인구가 2017년엔 7537명으로 5년 사이 16.3%나 줄어들었다. 주소지를 옮기지 않고 집을 비워둔 이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주민 이탈은 더 클 것이라고 주민들은 말한다.

사정이 이러니, 주민들의 환영을 받지 못하는 관광객도 불편한 ‘침묵 여행’을 강요받고 있다. 관광객을 이끌고 온 한 가이드는 “한옥 골목을 들어서면 ‘크게 소리 내지 말고 집안 들여다보지 말라’고 먼저 주의부터 주게 된다”면서 “관광객들은 작은 소리로 소곤거리지만 수가 많다보니 여전히 시끄럽게 들린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북촌마을 계동에 사는 김태성(80) 할아버지는 이날 집회에서 “북촌에 한국 사람은 오지 않는 게 좋다”는 이색적인 손글씨 팻말을 들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북촌에서 장사하다 망해서 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한국 사람만 이곳에 오지 않아도 동네가 조용해지고 집세가 들썩거리는 일이 덜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말했다.

북촌 관광 효과 2조원?

“관광의 악영향이 커요. 집회 장소 바로 건너 편의점 월세가 얼마인 줄 아세요. 250만원 하던 것을 하루아침에 750만원으로 올렸어요. 그런데 여기 오는 관광객은 서민이에요. 돈을 잘 안 써요. 재동문방구 옆 커피전문점도 2년6개월 만에 2억5천만원 까먹고 나갔잖아요. 젊은이들이 큰돈 벌 생각으로 시설비를 들여 장사를 시작하지만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문 닫고 떠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요.” 실제 돈미약국 바로 아래 도로변엔 “장사하려다 1억~2억원씩 까먹고 떠난” 가게 세 곳이 나란히 비어 있었다.

집회 하루 전날인 6월22일, 서울시가 마련한 주민 토론회 자리에선 서울시를 성토하는 주민들의 고성이 쏟아졌다. 서울시가 얼마 전 발표한 ‘북촌한옥마을 주민피해 개선대책안’을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였다. 서울시는 7월부터 평일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골목 관광을 허용한다는 등의 8개 대책을 발표해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일요일은 ‘골목길 쉬는 날’로 정해 관광객 통행을 불허하기로 했다.

주민들의 성토는 “북촌이 관광지냐 주거지냐”는 목소리로 모였다. 주민 김아무개씨는 “풍문여고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개방하면 안 되나. 관광버스 때문에 돈미약국 앞에서 마을버스도 안전하게 못 탄다. 내가 괴로운데 관광객한테 좋게 대할 수 있겠나. ‘너네들 왜 왔니’ 이런 마음이 된다”고 쌓인 분노를 터뜨렸다. “내 집을 내 맘대로 못하면서 고통만 받고 있다. 북촌을 거주지로 잘 가꿔나갈 능력이 없으면, 한옥을 규제하는 북촌 지구단위계획을 폐지하라.” 또 다른 주민은 “한옥 빈집이 늘면서 슬럼화되고 있다. 관광 소리만 나와도 열불 난다”고 고함을 질렀다. 윤종복 종로구의원은 “북촌의 방문객 효과가 2014년 2조원이라는데 주민들한테 뭐가 돌아왔나”라며 “용인민속촌처럼 입장료를 받아 주민들을 위해 쓰는 방안 등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북촌로11길 집에서 만난 주민 김아무개씨는 “내 집을 잘 가꿔서 관광객들한테 명품 한옥을 보여주고 작은 음악회와 영화상영도 하고 싶다”면서 “지금처럼 싸구려 관광지로 방치할 게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서울시가 길을 열어달라”고 말했다.

관광도 양보다 질이다

김강열 한국관광통역안내사협회 사무국장은 “중국 단체관광객을 값싸게 덤핑으로 유치한 여행사들이 면세점에 데려가 손실을 메운 뒤 마지막 날 비용이 들지 않는 북촌마을에 관광객을 풀어놓곤 한다”고 중국 관광객 저가여행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범수 경기대 교수(관광개발학)는 “이제는 관광도 양보다 질이 중요하고, 주민이 행복해야 관광객도 행복할 수 있다”며 “서울시와 관광 전문가들이 2016년부터 기존 관광정책을 돌아보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호진 북촌협의회 간사는 “그동안 중앙정부와 서울시는 관광객을 맞을 준비도 없이 북촌을 알리는 데만 급급했다”며 구체적인 제안을 보탰다. “서울시에서 매입한 한옥을 지금처럼 직접 공방으로 운영하기보다는, 선진국처럼 동네 커뮤니티 기능을 하는 카페나 빵집으로 운영하거나 사람이 들어와 살도록 주거용으로 임대해주는 것이 좋겠다.”

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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