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거부를 선택한 이들 중에는 수감생활 대신 한국을 떠난 사람도 있다. 난민을 선택한 것이다. 이예다(27·사진)씨도 그중 하나다. 이씨는 2012년 7월 병역거부를 결심하고 프랑스 샤를드골 공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2013년 5월 프랑스에서 병역거부 사유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는 현재 파리에 살며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징병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과 함께 병역거부, 난민 신청 희망자들의 상담을 받고 있기도 하다.
징병제가 낳은 난민군대가 싫어 한국을 탈출한 그에게 6월28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생각을 전자우편으로 물어봤다.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에 합헌이라 판단하고,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것은 헌법 불합치라고 결정했다. 그는 “법보다 우리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위헌 결정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쉽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라 병역거부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이씨는 특정 종교를 믿지 않고, 사회운동단체 활동 경험도 없다. 성소수자도 아니다. 기존 병역거부자들과 조금은 다른 ‘새로운 병역거부 세대’다. 군대에 가지 않을 자유와 감옥에 갇히지 않을 자유를 원했다.
처음부터 병역거부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아무 이유 없이 생명을 죽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꼭 총을 들어야 하느냐는 의문에 시달렸다.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인 한국 군대의 문제를 인식하게 됐지만, “군대는 언제 가냐?” “쟤가 군대를 안 가서 그런다” 같은 일상의 대화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존재를 알게 됐다. “한국에 남아 수감생활을 할 것인가, 외국에서 병역거부권을 사유로 난민을 인정받아 문제를 환기할 것인가라는 두 가지 선택에서 고민했어요.”
그는 자신의 사례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병역 의무에 더 많은 사람이 질문을 던지기 바라며 후자를 선택했다. 물론 만만치 않은 선택이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노숙생활까지 한 그는 7개월 만에 난민 인정을 받았다. 난민 신청서에 “한국에서 강제적 병역 의무는 어른으로 가는 통과의례와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역 의무를 ‘성스럽게’ 여깁니다. 병역을 끝낸 사람들은 ‘군대를 갔다온 남자’와 ‘군대를 갔다오지 않은 사람’(여성과 장애인도 포함) 간의 차별을 만듭니다.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조국의 배신자’와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두 낙인은 어디나 따라다니며 차별의 대상이 됩니다”라고 썼다. 난민으로 인정받고 새 삶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한국에선 듣지 못하던 말도 듣게 됐다. “프랑스·독일·스위스 사람들에게서 군대가 그렇게 잘못됐으면 거부하는 게 당연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병역거부자들에 대해 비난 여론은 여전하지만, 그에게 병역거부를 상담하는 이들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씨는 “군대에 안 가면 책임감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보니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이들조차 자신이 그냥 군대 가기 싫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자체를 인정 안 한다”며 “그런 생각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변화가 전망되지만 그는 “제 삶의 터전이 이곳에 있으니 (한국에) 돌아갈 필요성을 못 느낀다. (난민 선택이) 후회 없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병역 거부 당연한 세상은 언제그는 전날(현지시각 6월27일) 헌법재판소 결정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한반도의 병역거부권이 더 개선되기 위한 내일의 재판이 병역거부자들과 그의 친구, 지인,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바라고 더 나아가 이것이 결국 기본인권도 높여준다는 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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