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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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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다는 회사·정부, 모두 못 믿어

승무원 피폭방사선량 실태조사 입수해보니…

정보 제공 부실 등 위법 사실 드러나
등록 2018-06-12 16:32 수정 2020-05-03 04:28
지난 5월4일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온 대한항공 직원들. 사주 가족의 갑질은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지만, 대한항공이 제구실을 하기까지 갈 길이 멀다. 정용일 기자

지난 5월4일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온 대한항공 직원들. 사주 가족의 갑질은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지만, 대한항공이 제구실을 하기까지 갈 길이 멀다. 정용일 기자

숫자의 세계에서 대한항공 승무원들은 안전한 것처럼 보인다. 이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등의 협조로 취재한 숫자만 놓고 보면, 대한항공은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전체 승무원이 피폭방사선량 권고기준인 연 6밀리시버트(mSv)를 넘지 않고 있다. 2013~2017년 노선별 승무원 우주방사선 피폭량 기록을 보면, 한 개인의 최대 피폭량은 2017년 5.65mSv다. 숫자들은 예외 없이 기준치를 넘지 않았다.

숫자가 진실이 아닐 수 있다. 숫자가 말해주는 것과 달리 승무원들은 자주 아프다. 이 접촉한 전·현직 운항·객실 승무원 10여 명은 “안전하다는 회사의 주장을 믿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 보고서도 믿을 수 없다”

이들의 불신은 대한항공이 국가기관인 원안위에 제출한 자료뿐 아니라 원안위가 작성한 보고서에 대해서도 이어졌다. 원안위의 ‘2017년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는 대한항공에 대한 실태조사와 이 항공사가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작성됐다. 보고서에선 안전관리 실태에 대해 “전반적으로 양호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승무원 및 안전관리 담당자 피폭방사선량 권고기준(6mSv) 준수 △승무원에 대한 피폭방사선량 정보 제공의 투명성 △항공승무원 대상 우주방사선 안전교육 등이다. 하지만 원안위가 제시한 근거 곳곳에 허점이 발견됐다. 승무원들의 불신에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 직접 대한항공에 생활주변방사선안전관리법과 국토교통부 고시 등에 따라 승무원들의 우주방사선 피폭량을 개인별로 조사·분석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네”라는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취재 결과, 운항편(항공편)에서 계산된 피폭량 기록과 승무원 개인별 피폭방사선량을 대한항공이 자체 개발한 프로그램(KRAMS)에서 기록 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만난 승무원 A씨는 기록 자체를 믿지 않았다. A씨는 “피폭량이 가장 많은 폴라루트(북극항로)를 월 3회 미만으로 제한하지만 해당 비행으로 인한 방사능 수치 검사, 누적 피폭량 검사 등은 제대로 알리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피폭방사선량 권고기준을 준수하기 위해 대한항공은 “운항기술부가 누적피폭방사선량을 스케줄운영부와 항공의료센터에 통보하고 스케줄운영부가 승무원 스케줄 작성시 승무원 개인별 피폭방사선량이 6mSv를 초과하지 않도록 조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회사 쪽 설명과 달리 이 접촉한 복수의 승무원들은 스케줄 변경 과정에서 피폭량에 대한 위험을 고지받은 적이 없다고 확인해줬다.

원안위와 대한항공이 거듭 강조하는 피폭량 최대 수치와 관련한 권고기준이 실제 안전을 보장해주기나 하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국제방사선방호학회 등 학계에서는 허용선량 이하의 저용량 방사선 노출에 대해서도 각종 질병의 위험이 낮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저용량 방사선 환경에서도 질병을 얻을 수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원안위가 제시하는 안전기준 자체가 논쟁의 영역 안에 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안전관리 실태를 ‘양호’로 판정한 원안위 보고서와 달리 실제 이 항공사가 법규를 위반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피폭방사선량 정보 제공은 법에서 정한 사항이다.

원안위는 ‘양호’로 판정했지만…

원안위 보고서는 ‘우주방사선에 의한 피폭방사선량 정보 제공’ 여부에 대해 “대한항공은 승무원에게 월별로 ‘우주방사선에 피폭될 수 있는 고도(해발 8000m 초과), 위도 및 경도에서의 방사선량과 실제 비행시간, 피폭방사선량의 평가 내용 및 결과 등을 포함해 우주방사선에 의한 피폭방사선량을 조사 분석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거나 “정보 제공과 관련해 (대한항공을 포함한) 대부분의 항공사에서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반복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원안위 보고서와 달리 대한항공 쪽은 ‘개인별 승무원 피폭량 정보 승무원 제공 여부’에 대해 “매월 계산하는 개인별 승무원 피폭량 정보는 본인에게 직접 제공하고 있지 않다. 피폭방사선량 정보 제공은 사내 규정에 정한 바에 따라 운항기획부와 객실승무기획부가 ‘승무원이 요청할 경우 신청인 본인의 기록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개인별 승무원 피폭량 정보는 승무원 교육시 객실승무원 정기 안전훈련의 해당 교육 슬라이드와 스크립트와 같이 본인이 요청할 경우 제공한다고 안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원안위 보고서에 ‘월별 제공’이라고 기술된 대목을 대한항공 스스로 거짓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원안위 보고서에서는 대한항공 외에 아시아나항공·에어부산·에어인천·제주항공·티웨이항공 등도 피폭량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혀, 이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정보 제공과 관련해 대한항공 운항승무원 B씨는 “피폭량 정보를 받은 적도 없지만, 받으려면 따로 요청을 해야 한다. 다만 이걸 본 사람은 찍히는 분위기다”라며 “누구도 열람을 신청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보고서에서는 “아직까지 승무원의 요구 사항에 실적은 없는 상황”이라고 서술돼 있다.

원안위의 안전관리 실태조사의 허술함은 대한항공 교육 프로그램의 부실 운용에서도 드러난다. 원안위는 “집체교육 및 온라인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현실은 어떨까. 승무원 A씨는 “교육은 항상 온라인을 통해 이수하도록 돼 있었다. 그런데 교육 내용이 (승무원들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설명해주는 게 아니었다”며 “예를 들어 북극항로로 인한 피해 사례를 알려주는 게 아니라 북극항로가 어떻다는 것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어 “위험을 알리는 안전교육이 아니라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안전교육이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승무원 C씨는 “내가 모른다고 해서 안전교육을 안 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며 “동료에게 물어봤더니 정기 안전교육을 받고 시험을 보는데 한 쪽 정도 방사능이 얼마 정도 된다, 회사에서 적절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내용 정도가 나왔던 것 같다고 한다. 이게 교육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방사능은 따지지 않는 건강검진

정보 제공, 정기 검사와 교육 등 일괄해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었다. 일반 기업에서도 실시하는 건강검진을 각 항공사에서도 하고 있다. 원안위 보고서도 이를 언급했다. 그런데 내용이 부실했다. 보고서는 “승무원에 대한 건강진단이 12개월마다 실시되고 있다”고 밝혔지만, 정작 우주방사선과 관련된 검사와 결과에 대한 내용은 없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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