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몇 살이에요?”
“아이 없는데요.”
“미안해요. 결혼 안 하셨어요?”
“아뇨,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어요.”
“어머, 왜요?”
결혼 8년차 이수희(41)씨는 낯선 사람들에게 늘 같은 질문을 받는다. 이제 일일이 대답하는 것도 지친다. ‘결혼을 하면 꼭 아이가 있어야 하는가.’ ‘처음 본 당신은 왜 나의 사생활을 물어보는가.’ 그에게 되묻고 싶은 걸 속으로 삼켰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출산 장려 정책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font></font>
이씨는 결혼 2년차 때 난임병원에 갔다. 피임을 하지 않았는데 아기가 생기지 않았다. 병원까지 간 건 주변의 성화 때문이다. ‘나이 먹기 전에 애를 낳아야 하지 않겠냐’ ‘노산인데 노력해야지’라는 말을 끊임없이 들어야 했다. 병원에서 잡아준 일정대로 검사를 받고 과배란 주사를 맞고 자궁유착 제거 시술을 받았다. 두 달 가까이 하혈을 했다. 출근을 하다가 식은땀이 나고 코피가 멈추지 않아 여러 번 주저앉았다. 도저히 직장에 다닐 수 없었다. 일을 그만두었다. 쉬면서 병원에 다녔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몸은 점점 안 좋아지고 우울증도 왔다.
37살 되던 해, 이씨는 남편과 오랜 고민 끝에 아이가 없는 삶을 선택했다. 다시 일을 하려고 여러 곳에 이력서를 냈다. 연락이 오지 않았다. 정부의 취업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다.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여성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려고 출산 장려 정책을 시행하는 나라에서 임신도 출산도 하지 않은 그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아파트 주민, 인터넷카페 모임 등에서도 그는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당한다. “아이들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친해지고 공감대를 형성해요. 분유, 기저귀, 이유식 등 육아 이야기를 하면 대화에 낄 수 없어요. 어떤 날은 몇 시간 동안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다가 집에 와요. 마음이 헛헛하죠.”
친한 친구들 모임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들 아기 얘기를 하니 나는 주말에 남편과 영화 봤던 얘기를 해요. 그러면 ‘애를 안 키우니 그렇지.’ ‘영화도 보러 다니고, 팔자 좋다’고 해요. 그런 말을 들으면 정말 기분 나빠요. 더 이상 내 얘기를 안 하게 돼요.” 이씨는 친한 사람들이 던진 말에 큰 상처가 남는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만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든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관계를 맺지 못하잖아요. 그러면 예전부터 이어져온 친구 관계만 남죠. 그런데 이들마저 멀어지면 결국엔 나 혼자 남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font size="4"><font color="#008ABD">“왜 아이가 없어요?”라고 묻지 않는다</font></font>
이씨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렸다. ‘아이 없는 친구분들 모여 차 한잔해요.’ 그렇게 2년 전 첫 오프라인 모임 때 대여섯 명이 나왔다. 처음 본 이들이지만 말이 잘 통했다. 무엇보다 “왜 아이가 없어요?”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알음알음 알고 모임에 가입한 이들이 지금은 300여 명이다. 다들 소통의 공간을 찾아 온 것이다.
이 모임 사람들을 만나면서 진정한 위로를 받았다. 이씨는 “언니들이 ‘너 힘들었구나. 근데 나도 겪었어. 그렇게 무거운 일이 아니야. 괜찮아’라는 말을 해요. 그런 말이 큰 위로가 됐어요. 그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다들 (아이를 갖기 위해) 더 달리라고만 했죠.” 이씨는 자신처럼 아이 없는 삶을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를 라는 에세이에 담았다.
최은주(46·가명)씨 역시 아이 없이 남편과 둘이 산다. 13년 전 결혼을 했을 때 남들처럼 당연히 엄마가 될 줄 알았다. 빨리 아이를 갖고 싶어 난임병원에 갔다. 시험관 시술비, 약값, 한약비까지 한 달에 200여만원 넘는 돈이 들었지만 임신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렸다. 시험관 시술 여덟 번째를 끝으로 3년 전 난임 치료를 포기했다. “시험관 시술로 아기를 임신을 했다가 유산을 했어요. 초음파에서 꼬물거리는 아기를 봤는데, 몇 주 지나니 의사가 아이가 안 큰다고 지우라고 하대요. 다시 그런 일을 겪을까봐 두려웠어요. 너무 견디기 힘든 일이었어요.”
최씨가 난임 치료를 받으며 힘들어할 때 위로를 해주는 이들은 없었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은 ‘정 그럼 둘이 살아’라고 가볍게 이야기해요. 아니면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해요.” 그런 말을 들은 뒤로 그는 자신의 고통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오지라퍼 많은 한국 사회에서 산다는 것 </font></font>
결혼 11년차인 김미진(40·가명)씨는 24살 때 갑자기 생리가 끊겨 난임 진단을 받았다. 20년 전 병원 ‘불임과’로 가는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할 때 죽고 싶었다고 한다. 인생이 끝난 줄 알았다. 자살 시도까지 했다. “20년 전에는 난임병원도 별로 없고 의학적으로도 발달하지 않았을 때죠. 한약 먹고 호르몬 주사 맞는 것만 했어요. 그때 전 갱년기 증세를 겪었어요. 매일 감기 걸리고 추웠다 더웠다 하고. 심장 두근거리고 짜증나고 돌겠더라고요. 회사도 그만두고 집에 틀어박혀 폐인처럼 살았어요.”
시간이 지나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바로 어릴 때부터 아이를 안 낳겠다고 선언한 남편이다. 아이만 없을 뿐 남편과 평범하고 행복하게 산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미국으로 이민 간 시댁 작은아버지까지 김씨 부부의 아이 문제에 신경을 쓴다. “가끔 한국 오실 때마다 우리를 걱정해요. 신랑을 조용히 불러 애만 낳으라고 자기가 보모라도 고용해주겠다고 해요.”
학원 강사로 10년 동안 일한 김씨는 아기가 없다는 이유로 교육자로서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때도 있다고 한다. 학부모 상담을 할 때 불쾌한 일을 겪는다. “상담을 온 학부모님이 ‘선생님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애는 몇 살이에요?’ 꼭 물어봐요. 그래서 아이가 없다고 하면 표정을 확 바꿔요. ‘애를 안 낳았는데 어떻게 아이를 잘 가르칠 수 있냐’라는 듯한 표정이에요. 그러면서 ‘선생님도 (아기를) 낳으셔야죠’라고 해요.” 그리고 이런 시선도 불편하다. “‘우리 남편이 애를 싫어해요. 애를 갖고 싶어 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남편을 남자로서 능력이 없거나 이기적인 사람으로 생각해요.”
김씨는 주변 환경에 예민한 편이다. “스트레스를 잘 받고 그게 몸으로 나타나요. 누구의 말이나 어떤 상황이 신경 쓰이면 며칠 동안 앓아요.” 그러니 김씨는 “예민한 사람이 오지라퍼(남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하는 사람)가 많은 한국 사회에서 평범하게 애를 낳고 엄마가 되는 건 불가능한 거 아닌가요?”라고 되묻는다.
이들을 힘들게 하는 건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가족주의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다. 그 안에서는 ‘결혼=출산’ 등식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지은이 김희경씨는 “가족주의가 견고해질수록 내집단 중심이 되고, 외집단을 배제하는 경향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 안에서 무자녀 부부뿐 아니라 동거 가족, 한부모 가족, 성소수자 가족 등은 외집단이자 비정상 가족이 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비난과 동정이라는 이중적인 시선</font></font>
이런 사회 안에서 아이 없이 사는 이들은 비난과 동정이라는 이중적인 시선을 받는다. “애 안 낳으려면 왜 결혼했냐.” “애국하려면 애를 낳아라.” “밥값 못한다”라는 말을 지겹도록 듣는다. “여자가 살찌면 나팔관이 막혀서 애가 안 생긴다.” “노산이라 임신이 안 된다.” 등 난임의 원인을 여자의 책임으로 전가시키는 말도 듣는다.
이런 가시 돋친 말뿐만 아니라 값싼 동정을 받는 것도 괴롭다. 단지 아이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불쌍하고 동정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어버린다. 김씨는 “사람들이 (아이가 없는) 나를 불쌍하게 보는 눈빛이 싫어요. ‘배우자가 죽으면 노후에 혼자 남아 외로워서 어쩌냐’라는 말도 하고. 자존심이 상해요. 가족들마저도 그런 눈빛으로 날 볼 때가 있어요”라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마냥 우울하진 않다. 이씨는 “행복으로 가는 여러 길 중 다른 길을 선택한 것뿐이에요. 아이 없이 부부만 사는 삶을요”라고 말했다. 최씨 역시 “아이가 있었다면 보이지 않았을 다른 삶에 대해 알게 됐죠. 나를 깊이 들여다보고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각을 갖게 됐어요. 인생이 풍부해진 느낌이에요”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서로 다른 삶의 방식을 배려하고 받아들이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결혼을 했지만 엄마가 아니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사회 말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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