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갖고 싶은 간절함으로 찾는 난임병원은 어떤 곳일까. 일반 산부인과와 얼마나 다를까. 환자를 위해 어떤 상담과 치료를 할까. 그 의문에 답을 찾고 싶었다. 병원 취재를 위해 진료 예약을 했다.
5월15일 오전 10시, 서울의 한 난임병원에 갔다. 이곳은 난임 치료로 유명한 여성전문병원이다. 대기 자리에 여성 둘과 프랑스인 부부와 통역사 한 명이 있었다. “저희 병원 처음이시죠? 여기 문진표 작성해주세요.” 간호사가 건네는 문진표를 받고 자리에 앉았다. 부부 관계 횟수, 분만 경험, 유산 경험, 피임 방법, 피임 기간, 복용하는 약, 난임 시술 여부 등 질문지를 작성했다.
여성만 받는 숙제, 시술과 검사대기실에 있는 텔레비전에서 육아 프로그램이 나왔다.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시험관 시술로 태어났다고 알려진 아기였다. 그 아기가 태어난 곳이 이 병원이다. 아기 영상이 끝나자 다음에는 병원의 기구, 시술 홍보 영상이 나왔다.
15분쯤 흐르자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다.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내 문진표를 보고 앞으로 해야 할 검사와 일정을 이야기했다. “생리 2~3일째 추가 피검사 하고 난자 채취하러 와야 합니다. 이때는 전신마취를 하니 반차 내고 오세요. 그다음에 나팔관이 막혔는지 아닌지를 보기 위해 나팔관 조영술을 받아야 하고요.” 듣자 하니 이번 달에 2~3번 더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남편 분은 다음 방문 때 정액검사하러 오시면 됩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예약 전화를 했을 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상담 가는 첫날 남편도 같이 가야 하나요?”라고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남편 분은 아무 때나 와도 된다”고 했다. 의사가 말하는 앞으로의 숙제는 대부분 여성이 해야 하는 것이었다.
입시학원의 대학 합격자 명단 같은의사는 자궁과 난소 상태를 보기 위해 초음파를 하자고 했다. 옆방에서 초음파를 본 뒤 진료실에서 화면에 자궁 안을 찍은 걸 띄운다. “여기, 난소 보이시죠. 크기가 작죠. 나이 들수록 난소가 작아져요. 그러면 난소 기능도 떨어져요.” 의사의 말에 다른 검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지만 벌써 환자가 된 것 같았다. 검사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라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할 거란다. 그 말만 듣고는 시술을 하는 사람이 앞으로 견뎌야 할 무게를 가늠할 수 없었다.
진료실에서 나와 간호사 데스크로 갔다. 테이블에 ‘난임부부 정책지원’이라는 홍보물이 있었다. “이거 봐도 되나요? 저도 지원을 받을 수 있나요?” “그거 읽어보세요.” 간호사는 수납과 검사 순서가 적힌 종이와 정액검사 안내문을 줬다. “이건 남편분 정액검사 안내문이니 읽어보라고 하시고요. 1층에서 수납하고 피검사실로 가시면 됩니다.”
간호사가 준 종이를 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3월과 4월 시험관 아기 시술 임신 명단이 적힌 전시물이 서 있었다. 일반 산부인과인 아래층에는 없는 것이다. ‘3월 장**(37) 박**(35) 심**(42) 박**(36) 김**(35)…’ ‘4월 김**(32) 정**(37) 박**(33) 양**(36) 임**(31)…’ 마치 입시학원의 대학 합격자 명단을 보는 듯했다. 누군가는 저걸 보고 희망을 품고, 누군가는 절망에 빠지겠구나 싶었다. 외국인 이름도 눈에 띄었다. 이것은 나날이 번창하고 있는 의료 한류의 한 단면인가. 대기실에서 봤던 프랑스인 부부처럼 아이를 낳으려고 낯선 타국까지 오는 이들도 많은가보다.
피검사 비용 13만원 초음파 7만원1층 수납 코너에서 정산을 하니 21만1960원이 나왔다. 피검사 비용 12만8380원, 초음파 6만9천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예약할 때 초기 검사 비용을 듣지 못한 터라 금액을 보고 놀랐다. 병원 뒤에 있는 약국에서 나팔관 조영술을 위해 미리 먹어야 할 항생제를 받아서 나왔다. 약값은 6400원이다. “어, 약값이 왜 이리 비싸요?” “6알 중 2알은 보험이 안 돼요.” 4알까지만 급여고 2알은 비급여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3일치 먹으라는 약을 2일치만 살 수 없으니. 카드 영수증과 약봉지, 정자 검사 주의사항. 이게 난임 부부들이 말한 끝없는 터널의 시작이란 거구나. 손에 든 종이와 약봉지는 가벼웠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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