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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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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임대 들어서도 집값은 오른다

서울 강일·가좌 지역 청년 행복주택 가보니…

‘슬럼’과는 거리 멀고 집값 하락은 ‘기우’
등록 2018-05-09 20:59 수정 2020-05-03 04:28

5월3일 낮 서울 서대문구 가좌지구 행복주택 전경(위). 같은 날 서울 강동구 강일리버파크 11단지 행복주택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어 있는 아파트 시세표.

5월3일 낮 서울 서대문구 가좌지구 행복주택 전경(위). 같은 날 서울 강동구 강일리버파크 11단지 행복주택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붙어 있는 아파트 시세표.

서울 강동구 지하철 5호선 종점인 상일동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10여 분 들어가면, 아파트 숲 자락에 자리잡은 낮은 언덕 같은 4개동짜리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총 11개로 이뤄진 대단지 가운데 가장 늦은 2016년 입주했고,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행복주택으로 지은 강일리버파크 11단지다.

5월3일 오전, 이 단지를 찾았을 때 쾌적한 주거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단지인데도 경로당과 보육시설, 작은도서관과 산책로 등 생활 편의 시설이 꼼꼼히 갖춰져 있었다. 단지 내에는 쓰레기 한 점, 거슬리는 구조물 하나 눈에 띄지 않았다. 입주자 대부분이 직장생활로 바쁜 청년이라, 평일 오전 단지는 새소리와 택배 차량 소리가 드문드문 적막을 깰 정도로 고요했다. 사방으로 온통 아파트 단지뿐,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생맥줏집과 노래방조차 없으니 밤이라고 유흥가로 돌변할 리 없어 보였다.

“젊은이들 입주해서 문제 된 일 없다”

이 입주 2년째로 접어든 청년 위주 행복주택 강일리버파크 11단지를 찾았다. 청년임대주택이 건설될 때마다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슬럼’이라는 단어는 이 단지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강일리버파크 11단지 관리사무소에서 만난 관계자는 “입주 초반 입주자들이 단톡방에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아파트 벤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신 적이 있다”며 “초반에 잠시 그랬을 뿐, 젊은이들이 입주해서 단지가 시끄러워지거나 문제가 되는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2016년 12월 입주가 시작된 강일리버파크 11단지는 29m²(약 9평) 단일면적 346가구로 이뤄졌다. 주변 시세보다 20~40% 싼 임대료에 6~10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애초 60%가량을 신혼부부에게 배정하려 했지만, 너무 작은 원룸이라 신혼부부들한테는 호응을 얻지 못했다. 대신 혼자 사는 청년에게 맞춤이었다. 사회초년생 임대료는 표준보증금 4500만원에 월세 23만원 수준이다.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입주자의 80% 정도는 사회초년생 1인 가구”라고 했다.

보통 임대주택 건설 계획이 발표되면 인근 주민들은 집값 하락을 우려하며 반발하기 마련인데, 지역별로 특수성이 있다. 강일리버파크의 경우 정부가 보금자리주택 위주 개발을 염두에 두고 새로 만든 계획 단지다. 개발 단계부터 임대주택 비율이 일반분양보다 높았다. 2009년 3월부터 입주가 시작된 11개 단지 7100여 가구 가운데 60% 이상이 임대로 공급됐다. 대규모 임대주택이 포함된 단지는 일반분양 때 주변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공급된다. 일반분양을 받은 주민들은 임대주택을 고려한 가격 이점을 선택한 셈이다. 리버파크 10단지 부동산의 공인중개사는 “강일리버파크 11단지는 민간 아파트 주변에 들어서는 행복주택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정부가 임대주택용으로 비워둔 터에 행복주택이 들어섰기에 이웃의 반대나 추가 집값 하락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서울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지난해, 강일리버파크 1~10단지도 1년 만에 1억원 넘게 매매가가 올랐다. 예를 들어 강일리버파크 6단지 전용 84m²(34평형)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기준으로 지난 2월 6억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2월 4억8800만원에 비해 1억1200만원 오른 가격이다. 10단지 공인중개사는 “전용 84m²는 요즘 7억원 이하 선에서 거래된다. 다른 강남권 주택보다 집값 상승률이 낮은 편인데, 새로 지은 행복주택과 무관하고 교통이 불편한데다 애초 임대주택 비율이 높게 개발된 단지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대규모 임대주택 공급이 아니라면, 소규모 임대주택 건설은 오히려 주변 주택 가격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보고서도 이미 많다. 일례로 SH(서울주택도시공사) 도시연구원이 2017년 6월 공개한 ‘서울의 임대주택이 주변 지역의 주택 가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서울 지역 임대주택은 오히려 주변 주택 가격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줬다. 2006년 이후 공급된 서울 임대주택(재개발임대·국민임대·장기전세) 주변 아파트의 1년 실거래가(2015년 7월~2016년 6월)를 분석해보니, 임대주택 반경 250m와 500m 이내 아파트의 매매가가 각각 평균 8.8%, 7.3%씩 올랐다. 임대주택이 들어서면서 기반시설이 확충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집값 하락 우려가 무색해

지난 2월 입주를 마친 서울가좌 행복주택은 경의중앙선 가좌역 바로 앞, 철도 부지에 들어섰다. 전체 입주 물량 가운데 50% 이상을 대학생에게 분양하는 대학생 특화 단지 5곳 가운데 첫 입주다. 전체 362가구 중 61%인 222가구를 대학생에게 배정했는데, 집값 하락 우려가 ‘기우’였다는 게 바로 확인되고 있다.

가좌 행복주택은 서강대·연세대·이화여대·홍익대가 가깝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가좌역이 있다. 주변에 버스 노선도 많아 인근 지역 대학생들에게 최상의 입지 조건이다. 전용면적이 16m²(5평)·29m²(9평)·36m²(11평) 세 가지인데, 16m²에 입주한 대학생의 경우 임대보증금 2737만원에 월 임대료 10만9천원을 낸다. 학생들은 통학 여건이 좋은 곳에 들어선 저렴한 행복주택을 반겼지만, 이 지역 주민들은 반대했다. 근린공원이 들어설 자리이며, 행복주택이 들어오면 집값이 내릴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행복주택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월드컵 아이파크 아파트의 전용면적 84m²는 최근 1년 사이 1억원가량 올랐다. 실거래가 기준 지난해 2월 5억6500만원이었으나, 지난 2월에는 6억4500만원에 거래됐다. 행복주택 바로 맞은편 건영 월드컵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가좌 행복주택 인근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78m²(24평)가 5억2천만원 정도인데, 1년 사이 1억원 올랐다”며 “행복주택과 집값은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다만 임대사업자 처지에선 일부 임대료 하락이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이 지역에는 2015년 무렵부터 오래된 낡은 집을 싼값에 사들여 개조한 원룸과 오피스텔이 우후죽순 늘었다. 마포 상암동 디지털단지 입주사 직원들을 겨냥한 움직임이었다. 원룸 기준으로 보증금 1천만원에 월 40만~50만원으로 임대료가 형성돼 있었다. 행복주택 인근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이 지역은 이미 원룸과 오피스텔이 포화상태였다”며 “임대료가 저렴하고 깨끗한 행복주택까지 들어오면서 체감적으론 최근 공실률이 20% 정도 늘고 임대료는 10% 정도 낮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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