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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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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주화했는데 청년들은 겨우 집 달라고?”

서울 영등포 청년임대 반대 주민 설득하려 텐트농성 시작한 청년정당…

세대 간 주거권 투쟁 현장에서 기자가 목격한 1박2일
등록 2018-05-09 20:55 수정 2020-05-03 04:28
‘우리미래’의 우인철 서울시장 예비후보(오른쪽 두 번째)와 임한결 청년정책국장(오른쪽 세번째) 등이 농성하는 모습.

‘우리미래’의 우인철 서울시장 예비후보(오른쪽 두 번째)와 임한결 청년정책국장(오른쪽 세번째) 등이 농성하는 모습.

그곳은 교통의 요지다. 서울지하철 2호선과 5호선이 만나고, 여의도(동), 목동(서), 신도림(남), 당산(북)이라는 서울의 알짜배기 땅을 가로세로 연결하는 도로가 만난다. 그 사거리에선 욕망과 욕망이 충돌한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2가 사거리. 버스와 지하철을 잔뜩 품고 있는 이 사거리의 터줏대감은 두 도로면을 물고 있는 현대홈타운아파트다. 낡고 오래된 상가와 주택들이 고만고만한 크기로 자리잡은 이곳에서 덩치로는 단연 으뜸이다. 20층 높이로 7개 동에 780여 가구가 산다. 전용면적 82.77㎡(30평형) 크기의 방은 시세가 6억~7억원에 이른다.

사거리에 얼마 전 새 식구가 들어왔다. 현대홈타운에서 한참을 눈을 내리깔아야 보이는 곳에 1.5m 키의 노란색 3인용 텐트가 마주 보고 앉았다. 어느 모로 봐도 사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작고 이질적인 존재다. 영등포구청역 7번 출구 앞 공터에 허락도 없이 비집고 들어온 텐트는 이곳을 주거권 투쟁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고시원보다 노란 텐트

서울 영등포구 당산2가 청년임대주택 터에 걸린 ‘결사반대’ 펼침막 앞에서 우인철 ‘우리미래’ 서울시장 예비후보(왼쪽)가 기자에게 말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2가 청년임대주택 터에 걸린 ‘결사반대’ 펼침막 앞에서 우인철 ‘우리미래’ 서울시장 예비후보(왼쪽)가 기자에게 말하고 있다.

노란 텐트는 우인철(33) ‘우리미래’ 서울시장 예비후보와 당원들이 4월21일부터 24시간 철야농성을 하는 장소다. 우리미래는 2017년 3월 창당한 20~30대 중심 청년정당이다. 얼마 전 현대홈타운 주민들이 남쪽 담장 너머 하이마트가 있는 자리에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고 반대에 나서자, ‘맞불’을 놓기 위해 텐트를 쳤다. 정부와 서울시가 20~30대 대학생, 신혼부부, 사회초년생을 위해 역세권 주변에 시세의 60~90%로 공급할 계획인 청년임대주택은 그동안 터가 선정되는 곳마다 주민 반대에 부닥쳤다.

우 후보는 고시원이 싫어서 텐트로 들어왔다. 전북 전주가 고향인 그는 재수 생활을 할 때 처음 서울로 와 14년간 고시원과 옥탑방, 반지하, 원룸을 전전했다. 농성을 시작한 건 정치인으로서 의제를 선점할 목적도 있지만 그 자신부터 청년임대주택을 간절히 바라는 무주택자여서기도 하다. 농성을 처음 해본다는 그는 보통 키에 마른 체형이었다. 눈가에 잡힌 주름과 곱슬머리, 옅은 빨간색 셔츠가 밝고 온화한 분위기와 어울렸다.

“텐트가…” 부드럽던 목소리가 다소 굵어졌다. “고시원보다 나아요.” 물론 텐트가 좋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는 가로 2.2m, 세로 1.8m 크기에 불과한 텐트와 거의 같은 평수의 고시원에 두 차례(1년, 3개월) 살았던 경험이 있다. 2009년 서울역 앞 창문 없는 고시원에서 월 22만원씩 내고 살 때는 주변 사람들과 말 한마디 안 했다. 서로 경계하는 분위기에 음식 먹는 걸로 싸우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텐트는 그래도 사람들 속에 있잖아요.”

그의 말마따나 손바닥만 한 텐트에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오후 3시40분. 키 155cm 정도에 마르고 꽃무늬 바지를 입은 50대 여성이 텐트 앞을 서성거렸다. 우 후보가 반갑게 인사하자 여성이 “이거 청년들이 이용당하는 거야”라고 대뜸 말을 뱉었다. 서울시가 청년임대주택 공급을 위해 터 주인이 건물을 지을 때 각종 혜택을 주는데, 그게 과도한 특혜라는 내용이었다.

“네, 네.” 듣기만 하던 우 후보가 말을 보탰다. “그래도 8년 동안은 임대주택 의무…”

말을 잘라 가로챈 여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8년 동안만? 8년 동안만?”

청년임대주택은 8년 동안 저렴하게 임대할 의무가 있고, 그 뒤엔 민간 소유주가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다. 단, 건물의 10~30%는 서울시가 기부체납을 받아 계속 공공임대주택으로 쓴다. 50대 여성은 8년 뒤 이 건물이 슬럼가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서울에 안 살면 되잖아요. 경기도에 다른 오피스텔 가면 되지.” 우 후보는 다른 데로 가라는 말에 할 말이 떠나버렸다.

“서울 말고 다른 데로 가라”

농성 텐트 안에 먹을거리가 가득 쌓여 있다(가운데). 우리미래 당원이 닭튀김을 사와 당원들이 함께 먹고 있다(위). 주민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아래).

농성 텐트 안에 먹을거리가 가득 쌓여 있다(가운데). 우리미래 당원이 닭튀김을 사와 당원들이 함께 먹고 있다(위). 주민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아래).

사람들이 몰리면 뭔지 궁금해 찾아오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지나가던 40대 남성은 호기심이 많았다. “우리미래가 뭐예요? 민대협이에요? 주사파예요?”

텐트에 함께 있던 임한결 우리미래 청년정책국장이 웃으면서 “청년정당이에요~”라고 답했다. ‘알바예요? 돈 얼마 받아요?’라고 물어보지 않아 다행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오후 5시14분. 우 후보가 텐트에서 150m 떨어진 아파트 입구로 향했다. 기자가 “지역주민들이 붙인 반대 펼침막을 보고 싶다”고 하자 보여주러 간 것이다. 입구에서 사진을 찍으려다 경비원과 주민에게 딱 걸렸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냐”고 눈을 부라리던 김아무개(70·여)씨가 우 후보를 알아보고 따지기 시작했다. 눈빛이 강한 김씨는 아까 텐트를 방문했던 50대 여성과 마찬가지로 “개인 이○○(터 주인)을 위한 특혜”라고 주장했다. 주름이 가득한 팔이 거칠게 움직이며 얇은 밤색 옷이 파르르 떨렸다. 목에는 핏대가 서고 쇳소리가 섞여 나왔다. “뭐라도 알고 덤벼야지!”

옆에 있던 경비원은 “이분이 교회 선교회에서 일하는 분”이라고 거들었다. 김씨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이랑 아이티랑 소록도에서 자원봉사했던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국가유공자라는 말도 꼭꼭 씹듯이 뱉었다. ‘님비’가 아니라 자신도 공공성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라고 기자는 추측했다.

저녁 7시18분. 으스름이 깔리기 시작했다. 텐트 안에서 랜턴을 다느라 분주한 와중에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배가 나온 50대 남성이 우산 끝으로 텐트 안을 가리키며 농담처럼 말했다. “청년들, 겨우 집 달라고 아우성이야? 우리 세대는 민주화를 했잖아. 너희 세대는 통일을 외쳐야 될 거 아니야! 고작 구청 앞에 집 달라고 텐트 쳐놓고.”

웃으면서 말해 농담인 줄 알았는데, 말끝에 “잡것들이”가 붙어나왔다. 비웃음이었다. 임 국장이 맞받았다. “네, 통일도 이룰게요.”

청년임대주택을 향한 반대는 20층 높이만큼 어디서든 잘 보이고 잘 들렸다. 반면 찬성하는 목소리는 텐트 안 먹을거리처럼 꼭꼭 숨어 있었다.

찬성파 주민들은 농성 텐트 안에 음식을 ‘투척’하고 후다닥 도망치듯 사라졌다. “응원합니다”라는 외마디 비명도 함께 남았다. 텐트에는 편의점 물건 들어오듯 먹을 게 쌓여 한쪽 면을 가득 채웠다.

꼭꼭 숨은 찬성 주민들

5시30분 샌드위치 2개, 6시52분 ‘호올스’(캔디) 5개, 8시13분 미에로화이바 350ml 3개, 8시14분 ‘삼송빵집 고로케’, 11시20분 따뜻한 꿀물 2병.

앞서 들어온 케이크와 롤케이크와 방울토마토는 손을 못 대고 있었다. 3분 탕수완자와 즉석밥도 있었다. 한 주민은 “편의점에 이야기해놨으니 전자레인지와 뜨거운 물은 마음껏 쓰라”고 했다. 우 후보와 비슷한 또래의 당원들이 보내준 음식도 많았다. 비 오는 날 농성장이 춥다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리자 경기도 파주 비무장지대(DMZ)에서 농사짓던 당원이 토종 벌꿀과 화분(꽃가루)을 보내줬다. 사과즙과 배즙과 박카스 등 음료수는 한 상자씩 쌓여 있었다.

이날 밤부터 다음날까지 비가 내려 텐트를 비닐로 둘러싼 채 버텼다. 그래도 방문자는 꾸준히 이어졌다. 인근 주민인 강유미(27)씨는 ‘청년들이 함께 힘낼 수 있는 세상이길’이라는 메모를 남기고 갔다. 그는 취업준비생으로 지방에서 올라와 원룸에서 친구와 월세 50만원을 절반씩 나눠 내며 사는데 이곳에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서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5월2일 아침 텐트를 방문한 우리미래 당직자 김순태(34)씨는 주민들에게 섭섭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그는 현재 청년임대주택 터에서 15년 전 변전소 하청업체 직원으로 일하며 전선을 깔았다. 김씨는 “주민들은 자기가 쓰는 전기를 위해, 나 같은 청년들이 열악한 곳에서 제대로 돈도 못 받고 위험하게 일했다는 사실을 알까” 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온종일 빛도 못 보고 콘크리트 먼지를 마시며 일당 5만원을 받고 팔뚝만 한 전선을 깔고 또 깔았다. 김씨는 “삶을 공유하고 있는데 삶의 터전도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라며 여운을 남겼다.

청년임대주택을 둘러싼 전선은 비대칭적으로 보였다. 반대 주민은 뭉쳐 있고 당장 ‘나의 손해’로 와닿기 때문에 조직력이 있다. 서울시는 현재 57곳에서 2만2천 가구의 역세권 청년임대주택을 추진하며, 2022년까지 8만 가구 공급을 목표로 한다. 그런데 에 따르면 4월11일까지 서울시가 인가하고 공개한 사업지 17곳 모두에서 주민들의 반대 민원이 들어왔다. 강동구 성내동에선 주민들이 시위에 나섰다.

모래알의 승리를 위해

찬성하는 청년들은 흩어져 있고, 당장 ‘나의 이익’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래알이다. 모래로 바위를 쳐서 성과를 보려면 뭉쳐야 한다. 우 후보는 “청년임대주택을 추진하는 단계에서 지역에 사는 청년 등 예비입주자와 시민단체, 정당을 포함해 공론화하라”고 주장한다. 서울시에도 당 차원으로 공식 요구한 상태다. 청년임대주택의 임대료를 더 낮추고, 공공임대 비율을 높이고, 임대사업 기간을 늘려 공공성을 높이라는 요구도 포함됐다. 우 후보는 “여동생이 며칠 전 딸을 낳았는데 빨리 끝내고 조카를 보러가고 싶다”고 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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