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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공작의 역사 속으로

14대 대선 ‘초원복집 사건’에서 18대 대선 국정원 여론 조작 사건까지
등록 2017-07-03 18:18 수정 2020-05-02 04:28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경기장 아래로 내려와 북한 선수와 격파에 실패한 10cm 두께의 송판을 화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시범단과 일일이 악수하는 등 예상 밖 행보로 북한 대표단을 반갑게 맞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경기장 아래로 내려와 북한 선수와 격파에 실패한 10cm 두께의 송판을 화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시범단과 일일이 악수하는 등 예상 밖 행보로 북한 대표단을 반갑게 맞이했다.

역대 가장 성공(!)한 정치 공작은 1992년 14대 대선의 ‘초원복집 사건’이다. 당시 대선은 김영삼-김대중 양강 구도에 통일국민당 정주영 후보와 무소속 박종찬 후보가 무시할 수 없는 지지세를 보인 안개 판세였다. 민주자유당의 승리를 위해선 ‘영남표 결집’이 필요했지만 대구·경북의 부산·경남 비토 정서가 작동해 여의치 않았다. 공작 정치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김기춘 당시 법무부 장관은 이 상황을 그 유명한 “우리가 남이가” 정서로 돌파하려 했다. 부산의 초원복집에 부산 지역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 대화는 정주영 후보 쪽에 도청당해 세상에 공개됐다. 이후 놀랍게도 이 사건은 ‘부정선거 개입’이 아닌 ‘불법 도청’이 더 주목받으며 김영삼 민자당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공작에 역공작이 겹쳐 ‘역풍’이 발생한 희대의 사건이었다.

다시 주목받는 ‘BBK 주가조작 사건’

‘초원복집 사건’만큼의 파장은 아니었지만 1997년 15대 대선에선 ‘총풍’이 있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청와대 행정관이 북한 쪽에 무력시위를 요청한 사건이다. 이후 법원은 윗선의 개입과 조직적 모의를 밝혀내지 못하고 우발적 행위에 방점을 찍어 사건을 종결했다. 하지만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북한의 무력시위가 보수 정치 세력과 북한 정권의 모의 속에 기획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2002년 16대 대선의 향방은 ‘병풍’이 갈랐다. 전직 부사관 김대업은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 면제와 관련해 “녹음테이프가 있다”고 주장했다. 15대 대선에서 지나간 줄 알았던 이회창 후보 아들의 불법 병역 면탈 여부가 다시 대선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자, ‘가장 강력한 보수 후보가 가장 허약한 여권 후보’와 붙었다는 전문가들의 평은 뒤집어졌다.

역대 최다 표차가 났던 2007년의 17대 대선은 특별히 ‘공작’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최근 김경준씨의 석방을 계기로 ‘BBK 주가조작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애초 당내 경선에서 처음 제기됐던 BBK 주가조작 사건은 이명박 대선 후보가 직접 불법에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동영상이 잇따라 공개되며 선거 국면을 좌지우지했다. 야당은 이명박 후보가 십수 개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은 기획 입국 논란을 일으키며 BBK의 실소유주 김경준을 등장시켰다. 김경준 등장 이후 논점은 BBK 실소유주 논란으로 바뀌었다.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이 직접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습니다”라고 발언한 동영상이 공개됐지만 그 유명한 ‘주어는 없다’는 논리로 빠져나갔다.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는 “내가 BBK를 막아줘 MB가 대통령이 됐다”며 “이후 MB가 세 번이나 법무부 장관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최근 만기 출소한 김경준은 현재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변호하는 유영하 변호사가 “한국 들어오면 3억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선 후보의 위법 사실을 기획 입국 같은 ‘공작’으로 막은 것이라면 BBK 사건 재수사가 필요하다.

가장 퇴행적이고 치명적인 공작

2012년 18대 대선에선 ‘초원복집’ 사건에 비견될 가장 퇴행적이고 치명적인 공작이 자행됐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이 직접 여론 조작을 벌여 선거에 개입했다. 대선을 8일 앞둔 12월11일 국정원 직원이 서울 논현동 오피스텔에서 문재인 후보 비방글을 달았다가 스스로를 감금시켰다. 박근혜는 이를 두고 “야당이 국정원 여직원의 인권을 유린한다”고 성토했다. 김용판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마지막 TV토론이 끝난 직후인 12월16일 일요일 밤 11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후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증거를 발견하고도 허위 발표를 한 것이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국가기관이 노골적으로 정치 개입 공작을 벌인 이 사건들은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박근혜 정부 내내 대한민국 정치 시계는 20~30년 전의 시간을 살아야 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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