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새 정부가 반드시 곱씹어봐야 할 이야기다. _편집자
정리 길윤형 편집장 charisma@hani.co.kr·김선식 기자 kss@hani.co.kr·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새 대통령의 우선 과제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진상 규명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풀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진상이 규명돼야 참사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처벌할 수 있다. 강력한 처벌이 있어야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선 세월호 참사 같은 사건이 일어나면 똑같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노동하지 말아야 할 5월1일 노동절,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크레인이 넘어져 하청 노동자 6명이 숨졌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3년을 싸워왔는데도 이런 일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뉴스를 보면서 너무 화가 났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변한 게 없다. 바뀐 것이라곤 큰 선박의 경우 배가 넘어지면 기어오를 수 있게 사다리가 설치된 것 정도다. 재발 방지를 위한 법률 하나 제대로 통과된 것이 없다. 세월호 참사와 노동자의 죽음은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안전에 드는 비용보다 사람 목숨값이 더 싸다는 생각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다. 사람 목숨이 돈으로 매겨지는 사회는 지옥이다. 다음 정부에선 결코 세월호 참사, 노동자의 안전사고 같은 비극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지옥이 이어져서는 안 된다.
장훈 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세월호_특조위] 강력한 2기 특조위 꾸려야한국 사회가 한 발자국이라도 더 앞으로 나아가려면 세월호 참사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지난 3년 동안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와 관련된 모든 일에서 ‘발목잡기’만 해왔다. 이제 정상화해야 한다.
새 대통령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피해자 처지에서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인 진상 규명과 피해자 지원 등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하루빨리 세월호 참사의 모든 것을 조사할 권한과 역량을 갖춘 강력한 2기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를 구성해야 한다. 또 정부와 국회는 특조위의 조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피해자 지원 역시 시급한 일이다. 이 문제를 단순히 보상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 피해자들은 비극적인 참사로 인해 큰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피해자들을 고립시키고 악의적으로 대했다. 그로 인해 세월호 참사 상처가 아물기는커녕 더 커져왔다. 이들이 지난 3년여 동안 겪은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야 한다.
물론 이는 새 대통령 혼자 해야 하는 역할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를 거듭나게 하는 반성의 계기가 될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에 주어진 의무이다.
김형욱 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관[언론_공영방송] 공영방송 정상화언론은 아주 중요한 민주주의 실현 수단이다. 그런 언론이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방송 장악’을 거치면서 오히려 독이 되었다. ‘클릭 장사’라는 상징적 표현에서 드러나듯, 현재 언론은 ‘언론에 자유’를 준다고 저절로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상황이 아니게 됐다.
그렇다고 국가가 언론을 재단할 수는 없다. 결국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 언론이 정도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런 면에서 새 대통령이 공영방송 정상화에 앞장서야 한다. 정권이 임명해 정파성을 띠는 언론사 경영진을 교체하고 언론 구성원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게 핵심이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정상화를 이뤄야 한다.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채널이 문제가 되는 건 뉴스를 다루는 방송이기 때문이다. 종편을 승인한 방송통신위원회는 ‘위험한’ 언론의 등장을 이끌어냈고 용인했다. 공공성을 띤 지상파 방송을 살리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방통위가 지상파 중심 정책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방침을 정하고 그에 맞는 방통위원을 임명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론 방송의 사회적 기능을 다루는 부서와 상업적 기능을 다루는 부서를 분리해야 한다. 현 방통위는,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송 콘텐츠를 중심으로 정책을 수행하는 방송영상규제기구로 바뀌어야 한다.
새 대통령은 신문과 공영방송을 포함해 저널리즘의 본질을 실현하는 매체를 사회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이윤 추구에서 자유로워야 하는 공영방송도 돈 버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정파성은 물론이고 상업성 앞에서 공공성을 포기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합리적 근거에 따른 직간접적 저널리즘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명확한 목표가 우선이다. 무엇이 저널리즘이고, 왜 저널리즘이 필요하며, 어떻게 지원할지 사회적 논의의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언론_종편] 해고자 명예 회복, 종편 정상화가장 중요한 건 공영방송 정상화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방송 장악 과정에서 부당하게 해고·좌천된 언론인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이 필요하다. 그간 언론 장악 과정을 평가해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과정이 없으면 언론이 계속 정권에 아부해서 살아남는 문화를 청산하기 어렵다. 그와 함께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와이티엔(YTN) 등 공영언론이 정권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최소한의 내용을 담은 ‘언론장악방지법’이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과정에서 정권과 특정 정치세력의 입김에 휘둘리지 않도록 정치적으로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두 번째는 종합편성채널 특혜를 환수하고 ‘정상적인’ 방송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동안 종편이 얻은 특혜는 채널 배정, 의무전송 채널 포함, 자사 미디어랩을 통한 광고영업 등 여러 측면에서 유지되고 있다. 이를 해결해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하거나, 그렇지 못하면 종편 재승인에서 탈락시켜야 한다.
이 과정을 일부 언론은 또다시 ‘방송 장악’이라고 주장하거나 반박할 것이다. 방송 장악 과정에서 탄압받은 해고자의 명예 회복 과정에서도 언론의 저항이 있을 것이다. 새 대통령이 뚝심 있게 갔으면 좋겠다. 어느 대통령이든 그동안 언론과의 싸움을 불편해하고 피하려다보니 지금의 문제가 생겼다. 언론의 반발에 너무 부담을 느끼지 않고 원칙에 입각해 추진해야 한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민주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위임받은 정부다. 그런데 지난 5개월 동안 주권을 위임받지 않은 관료가 사드 배치를 포함해 인사권의 일정 부분을 지배했다. 이는 민주주의에 정면 도전한 것이다. 정당들이 이 문제에 대해 별다른 관심 없이 선거만 한 것은 정치적 범죄행위라고 생각한다.
새 정부는 지난해 말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예산으로 국정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선거가 아니기 때문에 예산과 행정부 구조는 한동안 박근혜 정부와 이중 정부 상태를 감수해야 한다. 가장 긴급한 과제는 새 정부의 가치에 맞게 대통령비서실장과 국무총리를 인선해 내각과 대통령 권력을 조속히 안정시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실패하면 5년 내내 관료에게 끌려다닐 수 있다. 두 번째는 추경을 통해서라도 새 정부의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그 뒤 촛불집회의 기본 정신 가운데 하나인 ‘대통령중심제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구체화하는 ‘의회중심적 정부 운영’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개헌을 당장 내년에 하는 것은 위험하다. 인수위원회도 없는 등 여러 어려운 조건에서 정권이 출범하기 때문에 일단은 정부 운영을 정상으로 만든 다음 개헌 논의를 해야 한다.
개헌은 권력구조와 사회적 힘의 작용이 제도화되는 맥락을 바꾸자는 것이다. 학술논문 하나 발표하듯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천천히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대통령중심제에서 의회중심제로, 양당제에서 다당제 중심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본다. 그에 맞는 헌법과 선거제도를 바꾸어야 장기적으로 노동 개혁까지 이뤄낼 수 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정치_선거] 승자독식은 이제 그만정치체제의 변화가 필요하다. 정치체제 가운데 선거제도, 선거제도의 결과로 나타나는 정당체제, 그리고 권력구조 등 세 분야에서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현행 헌법이 만든 ‘87년 체제’를 승자독식 체제라고 한다면, 새로운 체제의 이름은 ‘권력 공유형 합의제’다. 87년 체제는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권력을 혼자 독식해 임기 동안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권력 공유형 합의제의 결과는 ‘포용’이 될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포용한다는 의미다. 강한 경제주체가 약한 경제주체까지 끌어안는 포용경제, 사회적 약자가 충분히 동등한 파트너십을 인정받는 포용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정치체제는 경제·사회 체제와 상보적 관계에 있다. 새 대통령이 새 정치체제를 만들면 새로운 사회, 새로운 경제가 반드시 열린다.
이것이 목표라면 그 수단으로 선거제도 개혁이 포함된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 이미 대선 후보들이 2018년 지방선거에서 개헌 국민투표를 할 것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 취임 뒤부터 시민의회 등 선거제도, 권력구조를 논의하는 시민합의 기구를 만들어 개헌 공론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이번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에서 모든 구성원이 동의한 것이 하나 있다. 헌법에 선거제도 관련 조항을 넣자는 거다. 사회·경제적 힘의 크기와 관계없이 모든 이의 정책 선호가 균등하게 반영되는 선거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네덜란드와 덴마크는 비례대표제를 헌법에 명시하고 있다. 이들을 포함해 유럽의 13개 국가는 직간접적으로 선거제도를 헌법에 표현하고 있다. 헌법에 선거제도 조항을 넣으면 현행 선거제도는 위헌이 되기 때문에 새 헌법에 맞는 선거제도가 도입될 수 있을 것이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한반도_남북관계] 상징성 있는 북한 특사단 구성해야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려면 (관계 개선 자체보다) 우선 환경을 나아지게 하는 조처가 필요하다. 새 대통령은 당선된 직후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은 물론 북한에도 특사를 파견해야 한다. 새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특사단’을 책임 있고 상징성 있는 인물들로 구성하는 것이다.
현재 가장 큰 현안은 개성공단이다. 2016년 2월 폐쇄된 개성공단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기업인들이 개성공단에 있는 공장 설비 등 시설물을 점검하기 위해 방북하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남북 접촉 과정에서 북핵 등 한반도를 둘러싼 복잡한 문제들이 우선 해결돼야 한다. 특히 남북관계가 개선되려면 주변국 관계가 같이 긍정적으로 풀려줘야 한다. 새 대통령은 이 문제들이 긍정적이고 보완적으로 조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북핵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자세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는 긍정적 요소와 우려스러운 요소가 섞여 있다. 가장 큰 불안 요소는 정책 결정 과정이다. 우리는 트럼프처럼 트위터를 하는 미국 대통령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트럼프 정부를 상대하는 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긍정적 요소도 있다. 먼저, 트럼프 정권은 북한 문제를 (북한 인권 등이 아니라) 북핵을 중심으로 접근한다. 또 북한에 대한 도덕적 접근이 아닌 실용적 접근을 하고 있다. 특히 4월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새 대통령이 진행할 한-미 정상회담의 중요성이 매우 커졌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한반도_한-중 관계] ‘중국 겨냥 않는다’ 일관된 메시지 필요지금 중국이 가장 걱정하는 건 한-미 동맹이 중국을 겨냥하는 지역동맹이 되는 것이다. 한국이 한·미·일 3각 동맹에 가담해 중국을 봉쇄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안보적 이익에 대해 중국의 이해를 받으면서도 한국이 중국을 겨냥하는 지역동맹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던지는 게 중요하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로 경색된 한-중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공조에 한국도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과 중국이 북핵 문제에 대해 서로 소통하면서 공조하는 수준으로 관계를 끌어올려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한국과 중국이 경제 분야에서 전략적으로 협력해나가야 한다.
결국 새 대통령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한-중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중국에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물밑으로 양국 지도자가 사드 문제나 지역 현안을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통로나 계기를 만드는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사드 배치가 진전된 상황에서 중국이 한국의 처지를 얼마나 이해해줄지 예단하긴 어렵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의 명확한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4월 초 미-중 정상회담 이후 북핵 문제에서 미-중 공조가 이뤄지고 있다.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드의 엑스(X)밴드 레이더가 가동되는 시점과 장소 등은 이쪽(한-미 당국)에서 결정할 수 있다. 새 대통령이 사드는 중국을 겨냥하는 게 아니라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확약해주면, 어렵지만 한-중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와 관련해 현재 상황이 매우 꼬여 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이 됐기 때문에 차기 한국 정부가 외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사드의 비용 분담과 관련한 미국의 입장은 ‘재협상이 있을 때까지 기존 협정은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약속을 어길 때까지 약속을 지키겠다’ 혹은 ‘이혼할 때까지 결혼생활은 유지하겠다’는 말이나 똑같은 얘기다. 지난해 7월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한-미 공동실무단은 한국 정부가 부지·기반시설 등을 제공하고 미국은 사드 체계의 전개와 운영·유지 비용을 부담한다고 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재협상을 통해 이 약정의 변경을 시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10억달러(약 1조1045억원)에 달하는 사드 배치 비용의 전부 혹은 일부를 한국이 떠안을 수 있다.
이처럼 상황이 꼬였기 때문에 역으로 한국 정부가 ‘외교적 기동성’을 발휘할 공간이 생겼다.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다. 먼저 예상치 못하게 1조원 넘는 국민 부담이 생긴 만큼 사드를 배치하려면 국회의 비준 동의 절차를 받아야 한다. 헌법 제60조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에 대해선 국회가 비준 동의권을 갖는다고 규정한다. 사드 배치의 합리성을 놓고 국회에서 논의가 이뤄지게 된 것이다. 둘째, 사드가 배치된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지역이 군사기지가 됐으니 환경영향평가나 생활환경평가 등 국내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한국의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사드 배치 관련 결정을 재검토해야 한다. 한국은 민주주의국가이고 헌법 절차를 통해 대통령을 탄핵한 나라다. 새 정부가 국내 절차를 꼼꼼하게 밟아가는 것을 통해 기존 결정을 수정할 수 있고, 이를 근거로 미국과 중국 등 관계국을 합리적으로 설득해나갈 수 있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외교_위안부] 다시 한번 여론 수렴을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정부의 12·28 합의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새 정부의 중요한 외교 현안으로 떠올랐다. 새 정부는 이 합의를 일본과 무엇을 어떻게 교섭할지라는 ‘외교 문제’로 다루기보다, 국민의 의견을 다시 한번 모으는 ‘국내 문제’로 접근하는 게 순서일 듯하다. 12·28 합의 때도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반영하는 작업이 부족했기에 국민적 반발이 크게 일어났다.
이같은 의견 수렴은 기존 합의와 후속 조처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차원에서 이뤄져선 안 된다. 새 정부는 자기부정에 가까운 겸허한 자세를 갖고 지난 합의에서 어떤 점이 부족했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국민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 이 작업이 끝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대선 후보들이 12·28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과 재교섭을 한다면 한국이 도달할 목표가 무엇인지 국내적 컨센서스 없이 일본과 함부로 접촉해선 안 된다. 섣불리 일본과 재협상을 개시한다고 선언하는 게 가장 나쁜 선택이다.
일본은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서면 소녀상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고 채근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합의를 이행할지 백지화할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에서 국내적으로 차분히 의견을 수렴하는 모습을 보이면, 일본도 긴장하면서 함부로 불만을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의견 수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본과의 긴장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조세영 동서대학교 특임교수 겸 일본연구센터 소장[경제_재벌 개혁] 투 트랙 경제개혁정권 초기부터 수구·보수 세력은 대통령을 엄청 흔들 것이고, 촛불 민심은 대대적인 개혁을 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굉장히 고통스러운 개혁 딜레마다. 자칫하다 약체 정부가 될 수 있다.
대통령이 지혜를 발휘해 ‘투 트랙 개혁’을 해야 한다. 먼저 집권 초기에 선명한 개혁 정부의 깃발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재벌 개혁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동시에 다수 지지층의 응원을 받는 정책을 중심에 둬야 한다. 특히 중소·중견기업, 비정규직, 자영업자, 청년 등 사회에서 배제된 계층에 다시 기회의 사다리를 열어주고 불안과 불신을 걷어야 한다.
대통령 임기 안에 꼭 해야 할 정책을 꼽으라면 무너진 경제 규율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이를 위해 범법 재벌 총수의 사면 불가 원칙을 확고히 하고 범죄수익 환수법을 제정해 사법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둘째는 대·중소기업, 노사 등 경제주체 간에 상생협력을 도모하고 이익을 공유하는 것이다. ‘공정 경쟁’ 개념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업자 간 집단교섭을 부당공동행위로 규정하는 공정거래법 제19조를 바꿔야 한다. 중소기업 강국으로 가려면, 집단적 교섭력을 가진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셋째, 노동 참여와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가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에선 정경유착으로 인해 재벌 규율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됐다. ‘노동이사제’를 통한 노동의 견제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재벌 규율의 두 축으로 세워져야 한다. 나라다운 나라가 되려면 ‘삼성공화국’을 넘어야 한다. 권력을 재벌에 넘겨준 참여정부의 실패 경험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촛불 민심을 생각하라.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경제_정책] 경제팀에 전권 줘라대통령 자리에 있으면 (재벌의)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 상위 몇몇 재벌이 적극 투자를 하면 금방 경제가 잘 돌아가고, 그러면 쉽게 지지율을 올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통령의 신념, 그런 정책적 지향을 가진 정치세력(정당), 이를 뒷받침하는 아래로부터의 힘이 필요하다. 이 요소들이 갖춰지지 않아 지금까지 경제민주화가 실패했다.
정권 초기부터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경제민주화 정책을 펴야 한다. 어떤 규제를 도입해도 재벌은 그걸 피하는 방법을 찾아내 빠져나간다. 정부가 일관된 정책을 펴려면 중소기업, 자영업자, 서민 등 불공정 경제 시스템의 피해자가 조직화되고 그들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통로가 만들어지는 ‘아래로부터의 경제민주화’가 중요하다. 원칙적으로 대리점, 하청업체, 중소기업 등이 협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그들이 뭉치는 행위를 ‘담합’이라고 규정하는 공정거래법을 풀어야 한다.
재벌 개혁과 관련해선, 대통령이 재벌에 투자를 구걸해서 경기를 살려보겠다는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어디 가서 (재벌과) 밥 먹는 순간, ‘게임 끝’이다. 그와 함께 중요한 건 경제팀을 제대로 짜는 일이다.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팀에는 역량과 철학이 있고 시장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을 배치해야 한다. 아이러니하지만 경제정책을 상대적으로 잘한 게 전두환 정부다. 대통령이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에게 “나는 경제는 모른다. 경제에 있어선 당신이 대통령이다”라고 했다. 전문성 없는 대통령이 나서서 폼 잡으려 하면, 정치적 고려가 너무 개입돼서 정책이 왜곡된다. 대통령은 나중에 책임을 물으면 된다. 팀을 잘 짜는 것이 (성공의) 90%다.
유종일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이사장·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건 많다. 그중 병원비 문제 해결을 최우선으로 꼽고 싶다. 야권 후보들도 병원비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내건 것으로 안다.
이 문제를 첫 번째 과제로 꼽은 이유는, 행정부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국민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을 급여 항목으로 전환하는 문제는 법률 제정 사항이 아니다.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전환하는 행정 프로세스를 가동하면 된다. 병원·의사들한테는 정책적 협력을 구하고 국민(가입자)에겐 보험료 인상 협력을 구하고 민간의료보험의 저항은 이겨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으로 병원비를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에 많은 국민이 비싼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한다. 국민건강보험으로 현재 비급여 항목까지 병원비를 해결해주려면 돈이 더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민이 민간 의료보험에 내는 돈을 국민건강보험으로 돌려야 한다.
다만 병원·의사들이 급여 항목을 진료할 땐 현재보다 더 많은 지원을 해줘야 한다. 비급여 항목이 사라지면 병원·의사들이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럼 이들은 반발할 수밖에 없다. 이를 어느 선에서 조정할지가 중요한 과제다.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면 국민들도 보험료가 다소 오르는 데 동의할 것으로 본다. 민간 의료보험보다 적은 돈으로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는 문제는 민간 의료보험의 저항이다.
이런 과정이 피곤하다고 도망가면 현행 제도에 머물러야 한다. 비급여 항목을 급여로 전환해 별도의 증세 없이 병원비 문제를 해결하면 국민의 복지 체험도도 높아질 것이다. 이를 토대로 다른 복지 공약 실행도 추진력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복지_기초수급]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해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제를 폐지해야 한다. 새 대통령은 부양의무제 완전 폐지를 위한 이행 계획과 실천 의지를 보여주면 좋겠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은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족의 부양을 받으라며 국가가 책임을 미루는 장치다.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가 되려면 부양의무자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부모와 자녀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 가운데 월 165만원을 버는 사람이 없어야 수급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기준에 미달해 수급자가 되지 못하고, 가족관계는 이미 단절돼 국가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이 이미 100만 명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2010년 기준 117만 명).
가족은 보통 강한 ‘묶음’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가족관계가 단절된 이들에게 다시 가족에게 기대라고 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같이 살지도 않는 가족의 주거비·의료비·교육비를 온전히 책임지도록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식들이 부유해도 가난한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가장 가난한 사람이자 국가의 지원이 절실한 사람에게 가족 부양을 받으라고 강요하면 안 된다.
부정 수급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제의 혜택을 받으려면 5년 전 소득까지 조사한다. 부정 수급으로 한 달에 40만원을 받으려면 5~6년 전에 미리 재산을 제3자 앞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말이다. 부정 수급에 대해 이미 제도적으로 방지책이 마련돼 있는 것이다. 새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은 오직 부양의무제를 폐지하는 실천뿐이다.
윤애숙 빈곤사회연대 조직국장 [노동_비정규직] 비정규직 문제, 대통령 의지에 달렸다선거 기간 내내 노동문제는 후순위로 밀려났다. 대선 후보들은 TV토론에서 노동 현안의 본질적인 논의에서 자꾸 벗어났다.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려는 게 역력히 느껴졌다. 책임 회피로 보였다.
당장 새 대통령이 해결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비정규직 문제다. 사실 현행 법체계에서도 대통령이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꽤 있다. 예를 들어 공공부문은 정부가 사용자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여기서 답을 낼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2년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얘기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 기간에 후보들은 그 정도의 약속도 하지 않았다. 특히 대기업 불법 파견은 참여정부 시절에 불거진 문제다. 이에 대해 누구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차기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물꼬를 터줬으면 한다.
이외에 차기 대통령이 꼭 해결했으면 하는 문제는 많다. 원·하청 관계에서 임금 체불이 발생했을 때 공사를 발주한 주체가 직접 노동자에게 밀린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다. 공공부문에서 도입해 민간으로 전파하면 된다. 민간에서 하도급 임금용 전용 계좌를 만들도록 의무화하겠다는 것도 현실에서 벌어지는 여러 금전적 피해를 막기 위한 중요한 방편이다. 원·하청 관계와 인건비 문제를 독립시켜 관리하는 것이다. 이는 특수고용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노조법상 근로자 개념만 조금 수정하면 된다.
노동절인 5월1일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다 참변을 당한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을 보면 새 대통령이 할 일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숨진 작업자 6명이 모두 비정규직이고, 다친 사람들도 대부분 비정규직이었다. 이런 노동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일자리 만들기는 허상에 불과함을 새 대통령은 명심해야 한다.
오민규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전략사업실장
[노동_최저임금] 당장 의지가 필요한 최저임금 인상노동권 보장을 위해 다양하게 터져나온 촛불 민심을 새 대통령이 어떻게 수렴할지 걱정이다. 좌절할 때는 아니다. 시급하게 결정해야 할 현안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게 최저임금 문제다. 대통령선거 기간에 각 후보들이 내놓은 최저임금 공약을 보면, 2020년까지 1만원을 달성한다느니 2023년까지 (1만원까지) 올릴 수 있다느니 장담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그건 몇 년 뒤의 얘기다. 당장 올해 어떻게 하겠다는 것부터 말해야 한다.
현재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300만 명에 달한다. 이들에게 2020년까지 1만원의 혜택을 주려면 당장 연평균 15% 이상 인상해야 한다. 이렇게 최저임금을 올리면 취임 직후부터 다양한 논쟁이 벌어질 게 분명하다. 이 문제로 노동자와 사용자가 치열하게 대립할 것이다. 문제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해야 하는 시한이 6월 말이라는 것이다. 위원회는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이때까지 최저임금안을 제출해야 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견해를 서둘러 밝혀야 하는 이유다.
최저임금 말고도 일자리 공약처럼 모든 후보가 너나 할 것 없이 약속한 공약이 있다. 일자리 공약은 단순히 일자리를 얼마 늘리겠다는 수의 문제가 아니다. 고용은 사회서비스나 복지의 성격을 갖고 있다. 누가 되더라도 선거 기간에 약속한 일자리 공약을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 일자리를 늘리는 데 사회적 비용이 들더라도 따져보면 경제주체들의 지급 방식이 바뀔 뿐이라는 논리로 반대쪽을 차분하게 설득해야 한다. 물론 잘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새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가 필요하다.
김공회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했지만, 이 모든 사태를 책임져야 할 세력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이것만으로 인권은 위협받고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의 말이나 행동이 그렇다. 그것을 알고도 바른정당 의원들이 탈당해 홍 후보에게 갔다. 인권이라는 기본적 양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 대선이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이런 상황을 보면서 적폐는 언제든 ‘얼굴마담’을 갈아치울 각오나 준비가 돼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월9일 이후 새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최순실씨 등 이번 사태를 몰고 온 국정 농단 세력을 사면해서는 안 된다. 따져보면 이미 수감된 사람도 있고 안 된 사람도 있다. 가족 처지에선 아버지와 관련 있는 서울대병원이 국정 농단 세력에 들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감이 교차한다.
아직 국정 농단에 대해 제대로 수사되지 않은 부분이 너무 많다. 새 대통령은 이것부터 엄정하게 조사해야 한다. 그것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에 퇴행한 인권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려는 노력의 시작이다.
공정한 공권력의 집행을 본 지 오래됐다. 이번 탄핵 국면만 해도 경찰이 촛불 시민을 대하는 태도와 탄핵 반대 태극기집회 참가자를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달랐다. 아버지가 광장에 서 있을 땐 ‘차벽’이 있었고 시위대와 물리적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런 사건이 벌어졌고, 시위 관련자는 모두 사법처리 대상이 됐다. 탄핵 반대 집회에서도 시위 참가자들이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지만 그들이 사법처리 됐다는 것을 들어본 바 없다. 새 대통령은 국민이 맡긴 공권력을 공권력답게 사용하기 바란다.
백도라지 고 백남기 농민의 장녀 [사회_적폐 청산] 적폐 청산에 시민 참여 보장해야걱정이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대통령이 되면 촛불 민심을 받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주변으로 모여든 사람들을 보면 걱정스럽다. 그들을 제대로 관리나 할 수 있을까. 적폐 청산이든 혁신이든 사람이 하는 것이다. 자격이 되지 않는 사람을 옆에 두고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국민 통합’이란 말은 좋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 문제를 낳은 사람들을 끌어안겠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지금대로라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세력이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다시 뭉쳐 그대로 국정 운영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새 대통령에게 이것을 넘어설 의지와 방책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러다가는 모든 삶의 수준이 촛불집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촛불 민심을 거슬러 과거로 역행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협력이 불가능한 세력에게 무리하게 손을 내밀지 말아야 한다. 민심과 소통하고 그들의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는 작업이 우선이다. 적폐 청산이란 구호만으로는 안 된다. 실제 적폐 청산을 위한 기구에 민간이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함께 전 사회 분야에서 청산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국회 의석수라는 지금의 정치 구도를 봤을 때 사실상 제도 개혁이 힘들다. 나아가 새 대통령이 쉽게 고립될 수 있다. 유일한 방책은 시민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그러려면 검찰 등 사정기관 개혁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활력을 되살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 보수단체를 편법·불법으로 지원했던 편향된 청와대가 아니라, 과거 시민사회수석처럼 넓게 시민사회와 교감하는 통로를 살려 국정 과제를 함께 고민하고 나눌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치공학만으로는 어떤 것도 달성할 수 없다.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권력기관_국가정보원] 국내 정보 수집·수사권 폐지
국가정보원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과거로 퇴행했다.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과 정치 개입,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북방한계선(NLL) 관련 대화록 공개, 최근 드러난 민간 여론조작 조직 ‘알파팀’ 운영, 블랙리스트 작성 개입 등 문제가 된 사건을 나열하기도 힘들다. 국정원이 정권 안위를 위해 정치에 직접 개입한 부분만큼은 새 대통령이 반드시 책임을 추궁하고 근본적인 제도 개혁을 해야 한다. 국내 정치 개입과 인권침해를 저지른 국내 정보 수집 파트를 전면 폐지하고 대신 방첩·대테러·국제범죄 관련 파트를 강화하는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둘째, 국가 정보기관은 국가 안보와 이익에 봉사하는 순수 전문 정보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 정보기관이 수사권을 보유하면 안 된다. 정보 수집권과 수사권이 모두 있어서 그동안 국정원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개혁이 안 된 것이다. 새 대통령은 국정원의 인권침해와 정치 개입의 배경이 된 대공수사권을 다른 수사기관에 이관해야 한다. 이는 해외·대북 정보 수집 강화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국회에서 국정원을 감독·통제하는 국회 정보감독위원회를 신설해야 한다. 예산뿐 아니라 국정원 활동의 적정성과 적법성을 감독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국회 정보위원회처럼 예결산 총액만 보고하는 체제로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특수활동비가 어떻게 쓰이는지 통제·감독할 수 없다.
이석범 변호사·전 국가정보원 법제관[권력기관_검찰] 시민을 위한 검찰로검찰 개혁으로 검찰 기능을 정상화하고 시민을 위한 검찰로 거듭나게 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중차대한 과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가능했던 조건 중 하나가 정치권력이 청와대 민정·검찰 라인을 사유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행 제도로는 검찰이 인적 쇄신만으로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전면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우선 새 정부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설치해야 한다. 검찰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역설적으로, 과도하게 비대하며 권한이 독점된 검찰 기능을 균형과 견제의 원리로 재편해야 한다. 기존 검찰에서 독립적인 공수처의 설치는 그 첫출발이다. 해외 사례를 봐도 고위 공직자에 대한 독립적인 사정기구 설치의 사회적 효용이 크다.
다음으로 법무부 파견 검사를 대대적으로 축소하고, 청와대 검사 파견을 금지해야 한다. 법무부는 검찰뿐 아니라 행형, 인권 옹호, 출입국 관리, 그 밖의 법무에 대한 사무를 관장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현실은 검찰이 상위 기관인 법무부의 주요 직책을 독점하는 비정상적인 상태다. 전문성 있는 법무 행정 확보와 검찰 비대화 견제를 위해 법무부로 검찰을 파견하는 것은 크게 축소돼야 한다. 현직 검사를 청와대로 파견하는 것도 금지해야 한다. 청와대 파견 검사는 정치권력과 검찰의 부적절한 고리가 될 개연성이 너무 높다.
이외에 검찰의 위법·부당한 불기소 처분에 대한 재정신청제도 확대, 공판중심주의 확보를 위한 검사 작성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 개선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 검찰에 독점된 수사권·기소권 분리 등 현재 검찰 관련 제도 개혁안이 모두 국회에 법률안으로 상정돼 있다. 새 정부가 지금 당장 추진할 수 있는 개혁 과제다.
김준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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