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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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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은 부통령 선거 시민이 대통령이다”

시민대토론 참여한 촛불 시민들의 747가지 목소리
등록 2017-03-01 20:45 수정 2020-05-03 04:28
지난해 6월 한국 사회 ‘고통의 뿌리’를 물은 지(제1117호 표지이야기 ‘고통의 나라’) 4개월 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이번에야말로 새로운 나라를 위한 설계도를 만들 수 있을까. 1980년 ‘서울의 봄’과 같은 또 다른 배신의 고통이 시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처음과 끝은 시민일 것이다. 철학자 김상봉에게 한국 사회 진단과 전망, 과제를 들었다. 꽃길을 원하는 시민들의 토론 현장을 취재했다. 2016~2017 촛불의 심지라고 할 2015년 민중총궐기의 상징적 인물(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고 백남기 농민의 큰딸 백도라지)도 만났다. 촛불의 의미를 궁구하는 학계의 논의를 차분히 살펴 전한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촛불과 외침을 보여주는 사진들도 싣는다.
취재 전진식·진명선·정환봉·김효실 기자, 편집 김선식·허윤희 기자, 디자인 장광석
2월1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시민대토론.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제공

2월1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시민대토론.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제공

“지난해 10월29일 첫 집회 이후 15차례에 걸친 1300만 촛불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을 뿐 아니라 이제는 국가 대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적폐 청산과 개혁 입법은 1300만 촛불의 염원이고 국민의 명령이다. 그러나 야권을 포함한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기승전‘대선’일 뿐이고, 개혁 입법에는 미온적이다. 또한 현재 정치권과 국회는 1천만 촛불의 개혁 명령을 이행하기는커녕 여전히 ‘주고받기식 법안 거래’ 관행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월1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 칼바람이 몰아치는 토요일 오후 시민들이 체육관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촛불권리 선언을 위한 시민대토론’. 예닐곱 명씩 나눠 앉은 시민들은 무슨 말을 했을까. 대통령 자리를 자신에게 달라고 하는 여야 후보들의 말에 모두의 귀가 쏠려 있는 때. 촛불을 든 시민들은 무엇을 말했을까. ‘광장 사회자’ 김제동(43)씨가 토론 머리에 한 말이 시민들에게 큰 박수를 받은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촛불 시민 1500명 참여

“오늘의 주인공은 저도 아니고, 주최 쪽도 아니고, 앞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아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이 길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지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인생을 걸고 이 자리에 오신 것 아닌가. 한 사람이 움직이는 건 한 우주가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헌법 전문만 봐도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지 나와 있다. 19대 대통령선거는 ‘부통령 선거’다. 대통령은 이미 정해져 있다.”

이날 시민대토론은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마련했다. 애초 올해 연도를 상징하는 2017명 이상의 시민이 참여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실제 참석자는 1500여 명이었다. 헌법으로 치면 전문에 해당하는 내용과, 주제별 분과토론이 테이블마다 나눠 진행됐다. 토론이 끝난 뒤 주최 쪽에 문서로 전달된 의견은 747건이다. 주최 쪽 기획 의도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처음 열린 시민대토론이라는 점이 일단 중요해 보인다.

퇴진행동 시민참여특위 이미현 기획팀장은 “시민대토론은 박근혜 정권 퇴진에 머물지 않고, 더 이상 특권과 권력 남용이 발붙일 수 없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보장되어야 할 주권자의 권리와 구조적으로 개혁해야 할 과제들을 토론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는 지난해 말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시민들에게 향후 우리 사회가 나아갈 개혁 방향에 대한 활발한 의견 개진과 토론을 요청하며 선포했던 ‘토론의 달’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됐다”고 말했다.

시민대토론에 참여한 이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낱말은 사회, 국민, 언론, 교육, 정의, 민주주의, 공정, 제도 등이었다. 서울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100일 넘게 이어지는 촛불집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이다. 민심인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가 개혁해야 할 개별 의제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일 것이다. 주최 쪽이 내건 의제, 의견을 낸 시민의 수(총 747명), 모인 의견들 가운데 주목할 만한 대목을 차례로 소개한다.

사회·언론·교육·정의·민주주의…
시민대토론에서 시민들이 가장 힘주어 말한 것은 사회·국민·언론·정의·민주주의 등이었다.

시민대토론에서 시민들이 가장 힘주어 말한 것은 사회·국민·언론·정의·민주주의 등이었다.

① 재벌체제 개혁. 97명.

“상식과 정의가 작동하는 사회·국가 건설과 부조리 사회 혁파를 위해 촛불을 든다. 국민경제 성장에 있어 재벌은 악이다” “족벌재벌 해체와 순환출자 근절을 해야 한다”

② 공안통치기구 개혁. 25명.

“검찰권력 쪼개고 견제하고 감시해서 시민에 복종하는 검찰로 만들자” “국가보안법 페지하자”

③ 정치·선거제도 개혁. 71명.

“선거연령 18살. 연동형 비례대표제” “국민의 민의가 100% 전달될 수 있도록(사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거법 개정 필요!”

④ 좋은 일자리, 노동 기본권. 94명.

“일한 만큼 돌려받는 사회” “기본소득 필요. 잘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해야”

⑤ 사회복지·공공성·생존권. 86명.

“복지는 시혜가 아닙니다. 보편적 복지로 권리를 찾읍시다” “도적놈만 없애도 복지가 두 배는 된다”

⑥ 성평등과 사회적 소수자 권리. 27명.

“평등한 사회가 되려면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 “여성·남성의 모습에 프레임을 씌우지 말자”

⑦ 남북관계, 외교안보 정책 개혁. 45명.

“한국 사회의 근본 문제인 남북관계는 당사자 간의 약속인 7·4, 6·15, 10·4 선언을 이행하는 것” “외교 및 안보의 처음과 끝은 남북통일이다”

⑧ 위험사회 구조 개혁: 안전과 환경. 65명.

“평화집회로 노벨평화상 타보자” “시민이 희망이다. 국가도 희망이 되어달라” “세월호로 인하여 모든 삶이 고통과 의미가 없는 생활이다”

⑨ 교육 불평등 개혁, 교육 공공성 강화. 88명.

“입시경쟁 교육 해소하고 대학 평준화 실현하자” “나는 개가 아니다. 나는 사람이다” “교육에 대한 주권을 학생에게”

⑩ 언론개혁과 표현의 자유. 81명.

“국민은 말판의 말이 아니다. 투명하고 믿을 수 있는 언론을 만들자” “국민의 생각과 신념을 처벌할 권한을 가진 정부는 없다”

⑪ 기타 의견. 68명.

“경제는 정의보다 우선할 수 없다” “청년을 위한 노동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촛불 시민들의 대선 공약

이날 ‘우리가 꽃이다, 우리가 걸으면 꽃길이다’를 내건 시민대토론은 3시간가량 이어졌다. 주최 쪽은 시민들의 의견을 좀더 효율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실무 논의를 맡게 될 ‘촛불권리 선언 성안위원회’ 위원(50명 안팎)을 테이블마다 1명씩 추천받았다. 성안위원회의 의견 수렴을 거친 시민들의 뜻은 ‘촛불권리 선언’ 형식으로 3월 안에 발표될 참이다. 촛불 시민들이 요구하는 ‘대선 공약’이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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