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1971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다니다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돼 1년6개월간 감옥에 갇혔다. 박정희 정권이 조작한 대표적 공안 사건이었다. 이 사람을 포함해 대학생 ‘5명’이 정부 전복을 획책했다는 것. 이후에도 이 사람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돼 6년 동안 숨어 지내야 했다. 이 기간 그가 온 마음을 다해 쓴 책이 있으니, 노동자들의 성경 . 10·26 사건으로 유신정권이 무너진 이듬해 수배가 풀린 그는 사법연수원(12기)을 수료하고 늦깎이 변호사가 됐다. 이 사람은 인권변호사 조영래(1947~90)다.
조영래가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던 1982년, 한 사람이 사법연수원에 13기로 들어갔다. 검사로 임관한 그는 이후 대표적인 공안검사 길을 걸었다. 1989년 방북 사건 당시 서울지검 공안2부 검사로서 대학생 임수경을 구속하기도 했다. ‘미스터 국가보안법’ 별명은 덤.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 특별수사팀을 지휘한 그는 횡령·뇌물 혐의를 받은 이건희 삼성 회장을 서면조사로 그쳤고 불법 로비 정황이 드러난 삼성 관계자도 모두 불기소했다. 반면 국가정보원 도청 자료를 폭로한 이상호 MBC 기자와 ‘떡값 검사’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 등을 기소했다. 참여정부 후반 검사장 승진에서 2년 내리 미끄러진 주원인.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권 출범으로 그는 ‘부활’했다.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에 이어 지난해 6월 국무총리 자리까지 올랐다. 박근혜 정권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최고위직에 앉아 있는 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다.
조영래는 변호사 시절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이었다. 후기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지금 이 86년 인권보고서의 후기를 쓰고 있는 우리의 심정은 실로 참담하다. 온 나라를 경악과 슬픔과 분노로 뒤끓게 한 박종철군의 참혹한 죽음 앞에서 우리의 는 할 말을 잃었다. 우리는 아무것도 말할 것이 없다. 다만 치떨리는 분노로 이렇게 외칠 따름이다. ‘박종철을 살려내라’”
박근혜 정권의 처음과 끝 ‘황교안’
1987년 박종철은 물고문으로 쓰러졌다. 2015년 백남기는 물대포로 쓰러졌다. 국무총리 황교안은 사건 뒤(2015년 11월17일) 이렇게 말했다.
“사전에 준비된 것으로 보이는 이번 불법·폭력 시위는 국격을 떨어뜨리는 후진적 행태임과 동시에 우리 법질서와 공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므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법무부, 검찰청 등 관계기관은 이번 불법 집단행동과 폭력행위의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해서는 ‘불법필벌’의 원칙에 따라 빠짐없이 끝까지 책임을 묻는 등 단호하게 대처해달라.” 국가폭력으로 처참히 무너진 백남기 농민에 대한 사과나 재발 방지 약속은 없었다. 그는 검사 옷을 벗은 뒤 17개월 동안 수임료 17억원을 챙긴 변호사였다.
청와대 관저에 ‘유배’된 대통령의 권한을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행하고 있다. 그의 앞에 ‘촛불’이 있다. 2016년 세밑, 불법·폭력·엄단·필벌을 소리치던 그도 여느 ‘정치 모리배’들처럼 표변했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많은 시민들이 질서를 지키고 평화적으로 집회를 진행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11월15일 국무회의)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매 주말 대규모의 집회가 열리고, 많은 국민께서 큰 질책을 하고 계시는 데 대해 국무총리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11월29일 국무회의)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합리적 의심이 든다. 집회·시위에 대한 그의 견해가 우려스럽기 때문이다. 그는 2009년 펴낸 단행본 (박영사) ‘머리말’에 이렇게 적었다.
“지난 1월20일 서울 용산의 한 재개발지역 건물 농성 현장에서 예상치 않았던 화재가 발생하여 농성자와 경찰관 6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빚어졌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런데 경찰의 강제진압이 신속히 단행된 주원인은 농성자들의 화염병 투척과 골프공·구슬을 대형 새총으로 쏘아대는 불법·폭력성 때문이었다고 한다. 작년 5월2일 서울 청계천광장에서 시작된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는 8월15일까지 106일간 전국에서 2398회 개최되어 연인원 93만 명에 달하는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하였다. 서울 도심은 밤마다 교통이 마비되었고 국론은 극단적으로 양분되었다. 촛불시위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3조7500억원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었다.”
용산 참사는 불법·폭력 때문?용산 참사 원인을 시민들의 불법·폭력으로 일축했다. 경찰의 과잉진압은 물론 농성이 불가피했던 철거민들의 절박함, 사회경제적 모순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2008년 촛불시위를 두고도 교통 마비와 국론 분열만 언급했다. 나아가 경제적 손실액 추산을 인용했다. 촛불이 타오른 원인에 대한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이 책의 후반부(관련 쟁점 해설) ‘저항권과 집회·시위의 자유’ 부분에서도 이런 태도가 보인다. 다른 항목과 달리 이 부분은 단 한 문단밖에 서술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례 단 하나만을 인용하면서 그는 서술을 멈췄다. “국회가 법률을 제정·개폐함에 있어 입법 절차를 무시한 하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저항권 행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며, 그러한 입법 과정의 하자를 규탄하고 시정하려는 집회 및 시위라고 하더라도 집시법에 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한 이상 그 죄책을 면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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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대행은 “좌·우 어느 이념에도 치우침이 없이 객관적 입장에서 집시법에 대한 순수한 법해석, 정확한 법풀이를 위해 노력하였다”(머리말)고 했다. 하지만 집회·시위를 무질서나 폭력으로 폄하하는 듯한 태도는 책 곳곳에서 드러난다.
“우리나라가 온통 집회·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2007년 한 해만 하더라도 전국에서 모두 2만3700여 건의 집회·시위가 개최되어 216만 명이 참가한 바 있고, 그 과정에서 불법행위도 자주 발생하여 지난 10년간 불법 집회·시위로 인해 수사기관에 입건된 인원이 1만2천 명에 이르고 있다.”(머리말)
“집회·시위는 다중에 의한 표현행위로서 집단행동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늘 질서문란을 야기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3쪽)
“일설(一說)은 촛불집회가 폭력을 행사하거나 폭력적·선동적으로 진행될 경우에만 불법집회라고 보기도 하나, 폭력행사 여부와 관계없이 그 내용이 실질적으로 학문, 종교, 의식 등에 관한 집회가 아니라면 본조에 의해 집시법의 적용이 배제되지는 않는다.”(173쪽)
집시법 연혁을 살피는 부분에서도 황 대행의 ‘질서에 대한 집념’이 드러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역시 4·19혁명 이후 각종 집회와 시위가 급증하여 무질서와 사회불안이 극에 달한 상황 속에서 5·16혁명 직후 제정되었다. 집시법은 우리 사회 특성상 빈발하기 쉬운 집회·시위에 대해 한편으로는 이를 보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지키기 위해 일정한 한도에서 규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되었다.”(머리말)
“집회·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그의 주장과 달리 집시법은 일본 제국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을사늑약 2년 뒤 1907년 일제는 보안법을 제정했다(법률 제2호). 1900년 일본이 자국에서 만든 치안경찰법을 바탕으로 규제와 처벌 폭을 크게 강화한 법이다. “보안법은 일본제국의 국권침탈에 대한 한국인들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규제하고자 만들어진 법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02). 당시 보안법 규정은 ‘필요한 경우에는’ 또는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따위 문구를 통해 자의적으로 집회·시위를 차단하는 데 악용됐다.
보안법은 1960년 ‘집회에 관한 법률’ 제정 때에도 ‘불온한 의도’가 유지됐다. 5·16 군사쿠데타 뒤 박정희 정권은 1963년 기존 법률을 통합한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이후 집시법은 15차례 개정돼 지금에 이르는데, 사전신고제를 비롯한 주요 조항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참여연대가 지난 5월 ‘20대 국회에서 우선 다뤄야 할 입법·정책과제’ 가운데 하나로 집시법을 든 이유다. 청와대 관저나 국회의사당 등 절대적 금지구역을 명시하거나, 교통 불편을 이유로 집회·시위를 금지한 조항(제11·12조)을 폐지 또는 개정해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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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법을 대표적 악법으로 규정하고 법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민주화의 진전 그리고 55년 세월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여전히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위축시키고 있다. 집시법이야말로 전형적인 ‘앙시앵레짐’(구체제)이다. 아무리 박정희의 유산이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는 나라라고 해도, 이럴 수는 없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어느 나라에도 집시법이 없지만 그렇다고 나라가 망하는 일도 없다. 헌법상 권리를 경찰의 처분에 따라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집시법을 없애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다.”(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올해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 인권이사회 순회의장국이다. 지난 6월 유엔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한국에서 집회·결사의 자유가 탄압받고 있다’는 요지의 한국 보고서를 발표했다. 특히 한국 정부를 향해 ‘시위자들이 소란스러운 집회를 개최한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 대행이 말하는 ‘법치’는 무엇?그러나 황 대행의 인식은 유엔 인권이사회의 우려와 비판을 무색하게 한다. 한국 보고서 발표 한 달 뒤 지난 7월5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 회의록의 한 대목이다.
이용주 의원(국민의당): “특히 금년은 한국이 유엔 인권이사회 순회의장국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내용의 보고서가 발표되었다는 것은 국가적인 망신이 아니겠습니까?”
국무총리 황교안: “기본적으로 우리 법체계는 다른 나라와 다른 특수성들이 있습니다. 그런 점들을 감안해서 지금 우리 시점에 맞는 합법·부적절·불법 판단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생각하는 ‘법치’(法治)는 무엇일까. 시민들을 법으로 겁박하고 법으로 결박하고 법으로 속박하는 법치일까, 아니면 권력자들의 전횡과 농단을 통제하고 감시하는 원칙으로서 법치일까. ‘촛불 민심’이 그를 응시하는 이유다. 이제 ‘개전의 정’을 보일 때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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