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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갈아엎어야 직접민주주의

하승우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이 말하는 ‘촛불’…

“권력 통제 장치 만들고 가치 지키려는 시민 절실”
등록 2016-12-14 17:23 수정 2020-05-03 04:28

29년 전 부산. “10시경이었다. 서면 시위대는 한 명씩 촛불을 들기 시작했다. 촛불시위대는 서서히 전진했다.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모여들었다. ‘독재 타도’ ‘호헌 철폐’의 함성은 거대한 촛불시위대를 만들어냈다. 그들은 다시 범일 고가도로를 통해 이어지는 좌천동 고가도로를 통과하려고 했으나 경찰의 저지에 부딪혀야 했다. 인파는 도로와 고가도로에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시위대가 전진을 시도하자 경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최루탄을 난사했다. 도로는 아수라장이 됐다. 최루가스가 만들어낸 연무로 뒤덮인 고가도로에서 한 사람이 떨어졌다.”(월간 1997년 6월호)
1987년 6월항쟁 당시에도 ‘촛불’이 있었다. 이후 지금까지 민주·정의·평등·저항의 이름으로 촛불은 황색 경고등처럼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했다. 2016년 겨울, 다시 촛불이 시대의 어둠을 밝힌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우리는 무엇을 만들어내야 할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우리는 어떻게 모여야 할까….
12월7일 서울 종로구 녹색당 사무실에서 하승우(46) 공동정책위원장을 만났다. 촛불-직접행동-시민불복종-민주주의로 이어지는 열쇳말을 중심으로 인터뷰했다. 정치학을 전공한 하 위원장은 권력, 민주주의, 풀뿌리 자치 등을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탄핵 정국.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는 교차로에서 생각의 좌표를 찾아본다.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1987년 6월항쟁 때도 촛불 촛불. 2008년에도 대규모 촛불집회가 100일 넘게 이어졌다.

2008년에는 단일 의제였다. 정부 정책 반대. 지금은 사실상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권력’에 반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 자체가 다양하면서도 하나로 집결된다. 이전보다 훨씬 대규모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구조.

집회 현장에서 축제, 즐거움, 여유를 느낄 수 있다.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면 사람들은 광장으로 나오지 못한다. 이제는 집회가 이뤄지는 광장이 더 안전한 공간. 역사적 현장에 동참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전남 순천에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사투리 섞어가며 거침없이 발언하더라. 예전 같으면 어른한테 반말하고 욕하니 버릇없다고 할 텐데, 지금은 시민들이 박수 치고 환호한다. 무언가에 순응했을 때 박수와 환호를 받는 게 아니라, 무언가에 저항했을 때 박수와 환호를 받는 건 중요한 경험이다.

‘자력화(empowerment) 효과’. 광장에서 퍼지는 고양·연대·각성의 심리적 효과일 텐데.

개념적으로 보면 힘(권력)은 외부로부터 받는 게 아니라, 사실 시민들 속에 있다. 일상에서는 전혀 체감할 수 없다. ‘내가 무슨 힘이 있어?’ 하는 식. 그런데 촛불집회로 오면 ‘우리가 힘인가?’ 하는 물음표로 바뀐다. 그리고 ‘어, 진짜 우리가 힘이 있는 거네!’. 2008년에는 그게 안 됐다. 그때 미국산 쇠고기 정책이 폐기됐으면 지금과 좀 달라졌을 거라고 본다.

본인이 권력의 ‘대상’이라 생각하지 않고 ‘주체’라 생각하면 다른 시민의 삶이 나온다. 지금은 어쨌든 긍정적 방향으로 가고 있다. 초등학생도 발언대에 올라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시민이잖아, 시민이면 말할 수 있지’라는 연대의식의 발로.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더 많은 사람과 공통의 경험을 하는 것, 의미 있는 과정이다.

저항으로 환호받는 경험 중요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서 경찰과 시민들이 충돌하는 모습. 박승화 기자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서 경찰과 시민들이 충돌하는 모습. 박승화 기자

2008년 촛불집회 뒤 수많은 해석과 전망이 쏟아져나왔다. 8년의 시차가 무색할 만큼 지금과 이어져 있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는 대목이다.

“시민들은 ‘이명박 OUT’이라는 구호를 통해 참다운 민주주의와 완전히 배치되는 행태를 보이는 집권세력을 포함한 정치계급의 무능을 심판하려 했고, 형식적 민주주의에 갇히지 않는 더 근원적인 민주주의의 가치를 촉구했다.”(문학비평가 이명원)

“아마도 전진과 역진의 겨룸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촛불에 함께 담았던 미래의 싹을 키워가면서 서로에게 안식과 치유가 될 수 있을 때, 우리는 이미 이 싸움에서 이기고 있는지 모른다.”(신진욱 중앙대 교수)

“촛불은 정당정치와 직업정치에 대한 구토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활성화시키는 비판의 힘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촛불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민주주의의 실체를 찾아가는 발견의 기술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시민자치의 예술이 될 수 있다.”(박구용 전남대 교수)

대의민주주의. 자동차 꼴은 갖추고 있는데 툭하면 가다 멈추는 식이다.

대충 고칠 것인가, 아니면 새로 자동차를 만들 것인가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왜 제대로 작동을 안 할까.

사실상 양당제 구조. 기득권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기득권 체제가 다시 부활할 수 없도록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또 반복될 거다. 기득권 세력은 박근혜를 쳐내고 싶은 것. 자기들끼리도 ‘통제가 안 된다. 쟤는 쳐내자’ 이런 식. 그 자신감은 기득권 내에서 다시 (대안을) 충분히 키울 수 있다는 데서 나온다. 마음껏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걸고 마음껏 자기들 이해관계대로 해도 되도록 법을 만들어놓았다.

전형적인 양두구육이다. 간판은 민주주의, 실제는 현대판 귀족.

정경유착, 아직도 유의미한 단어다. 그 단어가 있는 순간 대의민주주의는 이미 없다. 정권과 재벌이 유착해서 짬짜미하는데 무슨 민주주의가 있겠나. 한국에서 대의민주주의라고 말하지만, 서구 대의민주주의와 전혀 다르다. 한국은 더 심한 기득권 체제. 그래서 제도정치의 출구를 찾기가 더 어렵다.

정경유착. ‘강한 시장’ 대 ‘약한 민주주의’ 도식으로 본다면.

한국은 사실상 자유시장이 아니다. 재벌이 국가와 결탁해서 특혜를 받아온 시장. 여전히 재벌들이 원하는 구조조정 하려면, 노동관계 변화시키려면 국가의 힘이 필요. 민주주의, 민주화가 재벌들한테 (역설적으로) 더 좋은 효과를 줬다. 정치 부패는 경제 부패와 맞물려 있다.

‘문어발식 경영’이라는 말로도 모자라는 지경.

시장을 이렇게 독점화한 나라가 있을까 싶다. 정치적 주권도 중요하지만 경제민주주의, 경제 주권도 중요하다. 선한 지도자, 착한 기업, 착한 경영자(CEO)가 경제를 바꿔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경유착도 문제지만 독점화된 구조를 깨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10대들이 아르바이트하면서 엄청난 모멸감, 인간으로서 자존감에 상처를 받는 건 큰 문제다. 이렇게 경제를 경험한 사람들이 20대, 30대가 되면 과연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자존감을 어떻게 찾을까. 민주주의가 잘된다는 것은 시장이 어떤 형태로 작동해야 하고 시민들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지 정부가 큰 틀을 잡는 것이다. 한국은 이것마저 방치했다. 기업들이 알아서 뜯어먹으라는 식.

정경유착 있는 한 민주주의 불가능
2016년 12월3일 6차 촛불집회에서 등장한 패러디 깃발. 한겨레 박수진 기자

2016년 12월3일 6차 촛불집회에서 등장한 패러디 깃발. 한겨레 박수진 기자

대의민주주의의 엔진이라 할 정당은 여전히 시민들의 뜻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지역 정당 구도는 여전히 완강하다.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 서민은 여전히 소외된 처지다. 정당정치에 대한 관심 저하가 정치 불신을 키우고 선거 불참으로 이어지고 대의제는 더 무력해지는 악순환.

시민의회.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직접 국회에 전달하고 성취하는 지점까지 갈 수 있을까.

‘촛불 권력’을 바탕으로 저쪽(기득권 세력)과 맞서는 우리의 대응체계를 만들자는 것.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모델도 있다. 기존 자유민주주의 이론가들 사이에서 제4부(시민부) 이야기는 많이 나와 있다. 스페인에서 2014년 만들어진 ‘포데모스’(우리는 할 수 있다)는 정당인데, 실제 운영 방식은 시민총회다. 당원들끼리 모여서 하는 게 아니라 모두 열려 있다. 개방되고 투명한 정치기구로 작동해야 시민의회다.

시민불복종. 현 단계에서 어떤 것들이 가능할까.

본래 시민불복종 개념은 공개적으로 법을 어기는 행동을 하는 것. 불합리한 법이라 선언하고 운동을 해나가는 게 필요하다. 시민불복종의 목적은 법을 바꾸는 것. 정말 정치개혁을 하려면 현재 정치관계법으로는 불가능하다. 국회나 기득권 세력이 결사적으로 지키려 한다. 이걸 열어주면 본인들의 기득권에 누수가 생기니까.

최근 광장에서는 납세 거부, 심지어 수능시험 거부 얘기도 나왔다.

정당성은 이미 상당히 있다. 우리한테는 임금 안 주려고 쥐어짜더니, 뒤로는 몇백억원씩 미르재단 같은 데 주고.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우리는 이것 안 지키겠다, 없는 것처럼 살겠다’고 결의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제도정치를 압박하는 요건이 된다. 집약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법정으로 가기 전에 어떻게 여론화할 것이냐의 문제다.

직접민주주의. ‘촛불 이후’ 무엇을 생각해볼 수 있을까.

직접민주주의라고 하면 보통 결정을 강조한다. 그보다 앞서 필요한 게 ‘정보’.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있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한국에서는 그 자체가 단절돼 있다. ‘세월호 7시간’도 그렇지만 대통령 일정을 잘 모른다. 직접민주주의가 되려면 일단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시민들이 원하는 정보를 알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해줘야 한다. ‘내 고장 알리미’(www.laiis.go.kr)나 ‘e-나라지표’(www.index.go.kr)처럼 전자정보시스템이 잘 갖춰졌는데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홍보를 안 한다.

직접민주주의 핵심은 소환제. 지금은 주민소환제를 거의 못 쓰게 만들어놓았다. 요건이 굉장히 강하다. 투표율이 못 미치면 투표함 개봉도 못한다. 또 하나가 주민투표권. 그런데 주민들이 원자력발전소 반대해도 의미가 없다. 주민들이 하지 말자고 하면 안 해야 한다. 이게 가능해야 직접민주주의. 지금 시스템에 있는 것부터 (제대로) 쓸 수 있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부터 시작돼야 한다.

풀뿌리 자치, 생활정치… 여전히 현실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 같다.

2008년 이후 풀뿌리운동, 생활정치가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본다. 다만 현실에서 제도권력을 변화시킬 만큼인지는 의문. 제도권력이 바뀔 수 없는 구조가 고착돼 있다. 새로운 정치 세력이 나오기도 취약한 구조.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운동을 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꿈틀거린다 해도 자기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기성 정치인들이 너무 잘 안다. 기득권 구조를 건드릴 수 없도록 만들어놓았다.

촛불 국면에서 직접행동, 직접민주주의, 시민의회 같은 말들이 어김없이 쏟아져나온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하고, 정치권력·경제권력에 더는 수동적으로 끌려갈 수 없다는 적극적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시민들의 백가쟁명이 절실한 시점이다.

“촛불항쟁을 통하여 새로운 주권자로 등장하고, 새로운 시민으로 탄생한 이들에게 구태의연한 대의제 민주제도 안으로 다시 들어가서 굴종의 세월을 감내하라고 하는 것은 인권운동에도, 민주주의 원리에도 맞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직접민주주의의 원형을 만들어내는 실험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당장은 시행착오를 거치고 수용도 되지 않고, 실패할 수 있을지라도, 그리고 정권의 탄압 앞에 좌초될지라도 촛불항쟁의 정신을 올곧게 계승하는 것이지 않을까.”(인권운동가 박래군)

촛불 들 이유 사라지지 않아 촛불은 언젠가 꺼진다. 꺼지고 나면 어김없이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녹색당 입장에서 말하면, 촛불은 아마 계속 더 커지지 않을까 싶다. 탄핵만큼 중요한 문제가 ‘탈핵’이다. 수명이 다한 원자력발전소들이 다시 작동되고 있다. 정부에서도 불안하니까 가끔씩 가동을 중단한다. 그럼에도 완전히 중단할 생각은 없다. 다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한국 사회가 촛불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박근혜만 퇴진하면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새로운 문제는 그때부터 발현될 것이다. 만일 그때에도 문제들을 바로잡지 않고 넘어가면 주기적으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야 한다. 이번에도 촛불을 내려놓는 순간 기득권 세력은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몰아갈 것이다. 촛불을 들 이유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 무엇이 필요할까.

일단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법·제도를 바꾸는 것. 기득권 세력이 마음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통제하는 장치. 둘째는 시민의 등장. 가치를 지키려는 시민들이 있어야 한다.

촛불이 꺼져도 ‘내면의 촛불’은 계속 불을 밝혀야 할 것 같다.

사회가 전환되려면 삶의 규모를 바꿔야 한다. 전체적으로 독점화된 것들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경제는 계속 성장해야 하고, 그러려면 계속 독점화해야 하고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한다. 그걸 위해 대다수 사람이 희생된다. 그런 삶이 언제까지 유지될까. 이제 그렇게 유지되는 사회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누가 집권하면 나아지고 누가 집권하면 꿈꾸는 나라가 되는 게 아닌 것 같다. 이명박, 박근혜… 사실 지금 이 사회도 우리가 만든 것이다. 자기 삶의 성찰 없이 좋은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조그만 개선이냐, 개혁·혁명이냐

밀운불우(密雲不雨). 먹구름 가득한데 단비는 내리지 않는다. 나쁜 대통령 쫓아내고 좋은 대통령 선출하자는 수준에 머무는 정권교체론, 정부·의회의 권력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로 쪼그라드는 개헌 논의. 또다시 한국 사회는 조그만 개선의 열매를 쥐고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꿈꾸는 나라’를 향한 개혁·혁명으로 나아갈 것인가. 2016년 겨울, 촛불은 묻고 있다.

*참고 자료
(참여연대·참여사회연구소· 사진부, 한겨레출판, 2008)
(사회와철학연구회, 울력, 2009)
‘촛불항쟁의 전개 과정과 직접민주주의’(박래군, 2008년 9월호)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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