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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수혜자는 총수 일가

삼성물산의 삼우 자회사 편입 뒤 삼성 계열사 일감 1385억원어치 몰아줬지만 현행법상 규제 대상서 제외… 국회, 기준 강화한 공정거래법안 발의
등록 2016-08-23 21:28 수정 2020-05-03 04:28

“꿩 먹고, 알 먹고.”
삼성이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삼우)를 삼성물산의 자회사로 편입한 것을 두고 나오는 말이다. 삼성물산은 2014년 9월 삼우의 지분 100%를 88억원(영업권 19억원 포함)에 사들여 자회사로 편입했다. 건축사법 개정으로 건설사가 설계회사를 보유할 수 있게 된데다, 2014년 금융실명제법 규제 강화로 명의를 빌려준 사람뿐만 아니라 실소유주까지 처벌받게 되는 등 차명 주식을 계속 보유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커진 점이 종합적으로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이를 통해 삼우와 관련한 위장 계열사 의혹이라는 앓던 이를 빼냈다.
삼우, 지난해 매출 61%가 내부거래
하지만 이것만이 아니다. 이건희 회장의 자녀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삼성 3세들은 삼우의 삼성물산 자회사 편입으로 사실상 최대 수혜자가 됐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삼우는 지난해 매출액 2277억원 중에서 61%에 달하는 1385억원을 삼성전자, 삼성물산 등 삼성 계열사들과의 내부거래를 통해 손쉽게 달성했다. 삼우는 이에 힘입어 14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그런데 삼우가 삼성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이익을 많이 얻으면 100% 지분을 가진 삼성물산의 이익도 늘어난다. 이는 다시 삼성물산의 지분 31.17%를 가진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총수 일가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간다.


“현행 공정거래법 규제는 총수 일가가 기존 일감 몰아주기를 유지하는 것을 돕는 사실상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
-채이배 의원

더구나 삼성물산은 삼우를 헐값에 인수했다. 인수가격 88억원은 삼우의 자본총계 69억원을 제외하면 영업권 명목으로 19억원의 웃돈만 지급한 셈이다. 이는 삼우의 지난해 영업이익 173억원 중에서 한 달 열흘치(40일)에 불과하다.

정부와 여당은 2013년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공정거래법을 개정해, 총수 일가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로 사익을 추구하는 것을 규제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막강한 지배력을 쥔 총수 일가가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회사의 이익을 빼돌리는 것은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심화하고 중소기업의 사업 기회를 원천적으로 가로막는 등 폐해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우에 대한 삼성 계열사들의 일감 몰아주기는 공정거래법의 규제 대상이 아니다. 법상 규제 대상은 총수 일가의 지분이 30% 이상(비상장사는 20% 이상)인 재벌 계열사다. 삼우는 총수 일가의 직접 보유 지분이 없기 때문에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설령 총수 일가 지분이 법상 기준을 넘는다고 해도 모두 규제받는 것도 아니다. 일감을 몰아준 회사별(예를 들면 삼성전자)로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 미만이고, 그 내부거래 금액이 지원받는 회사(예를 들면 삼우)의 연간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2% 미만이라면, 이 역시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시행령이 정하고 있다.

또 ‘기업의 효율성 증대, 보안성, 긴급성 등의 예외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도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개정 공정거래법의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금지 규정이 규제 대상을 지나치게 좁게 제한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현행 공정거래법 규제는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총수 일가가 기존 일감 몰아주기를 유지하는 것을 돕는 사실상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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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181조원 규모 재벌 내부거래, 1년6개월 동안 제재는 단 1건

재벌 계열사 간 내부거래는 2014년 한 해에만 181조원(48개 민간 대기업집단 기준)에 달할 정도로 막대하다. 그런데도 개정 공정거래법이 본격 시행된 지 1년6개월이 지나도록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 실적이 현대그룹 1건에 불과한 것은 원천적으로 법조항상의 ‘구멍’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현대그룹의 현대증권과 현대로지스틱스는 현정은 회장의 동생·제부·조카가 소유한 회사들에 일감을 몰아주면서 단가를 비싸게 쳐주고, 실제 역할은 없는데도 거래 중간 단계에 끼어줘 이른바 통행세를 챙겨준 것이 적발돼 1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삼성이 마냥 안심할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야당들이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허점을 메우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잇달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채이배 의원은 8월8일 규제 대상이 되는 재벌 계열회사의 총수 일가 지분율 기준을 상장사와 비상장사 구분 없이 모두 20%로 통일하고, 총수 지분을 계산할 때 직접 보유 지분뿐만 아니라 중간에 다른 회사를 매개로 해서 갖고 있는 간접 보유 지분도 포함시키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에 앞서 같은 당의 김동철 의원은 지난 6월 규제 대상 총수 일가 지분율 기준을 아예 10%로 대폭 강화하는 법개정안을 내놓았다. 더불어민주당도 4월 총선 당시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약속을 한 바 있어, 가을 정기국회에선 공정거래법 개정을 위한 야권 공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상대적으로 온건한 채이배 의원 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삼우는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삼우는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총수 일가의 직접 보유 지분은 없지만 간접 보유 지분은 31.17%에 달해 규제 대상 총수 일가 지분율 기준(20%)을 상회하기 때문이다.

삼우뿐만이 아니다. 삼성물산이 지분 100%를 가진 또 다른 자회사 삼성웰스토리도 같은 운명에 처한다.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는 공정거래법 개정 직후인 2013년 12월 단체급식사업부를 떼어내 웰스토리를 만들었다. 웰스토리는 지난해 매출액 1조6600억원 중 40%에 육박하는 6200억원을 삼성전자·삼성물산 등 삼성 계열사와의 내부거래를 통해 손쉽게 달성했다. 하지만 웰스토리는 외견상 총수 일가 주식이 한 주도 없기 때문에 공정거래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다. 웰스토리 분리 당시부터 삼성이 공정거래법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꼼수를 썼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야권의 공정거래법 개정 추진에 정부·여당이나 대기업들은 반대한다. 공정위의 채규하 시장감시국장은 “여야 합의로 법을 개정해 본격 시행한 지 아직 1년 반밖에 안 된 시점에서 또다시 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삼성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삼우와 웰스토리가 규제 대상이 되는 것은 절대 달가운 일이 아니다.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3세들의 지분이 많아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이 가뜩이나 기존 사업부문인 건설·상사·패션 등의 실적 부진으로 고전하는 터에 다른 계열사들의 지원으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장사해온 삼우와 웰스토리의 사업길까지 막히는 것은 엎친 데 덮친 꼴이 되기 때문이다.

여소야대 국회,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할까

야권은 19대 국회에서도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했으나 정부·여당과 재벌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하지만 20대 국회는 과거 국회에 비해 ‘여소야대’ 구조라는 차이점을 갖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공정거래법의 총수 일가 사익 편취 금지 규제가 애초 기대한 만큼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곽정수 경제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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