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돈 앞에 대학 없다

출생아 수 급감한 2001~2005년생 대학 입학 시기 앞두고 대학재정지원사업 수단 삼아 정원 감축 유도하는 대학구조개혁
등록 2016-08-16 16:14 수정 2020-05-03 04:28
이화여대가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으로 지원받는 금액은 한 해 30억원이다. 교육부가 대학에 국고를 지원하는 각종 대학재정지원사업을 수단 삼아 대학구조개혁을 밀어붙인 결과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이화여대가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으로 지원받는 금액은 한 해 30억원이다. 교육부가 대학에 국고를 지원하는 각종 대학재정지원사업을 수단 삼아 대학구조개혁을 밀어붙인 결과 여기저기서 파열음이 터져나오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한국의 대학은 ‘저출산’의 타격을 이미 받고 있다. 교육부가 2024년을 목표로 대학 입학정원을 16만여 명 감축하는 ‘대학구조개혁’을 2014년부터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2024년은 출생아 수가 역대 최저치를 찍은 2005년생이 대학에 입학하는 때다. 2005년 출생아 수는 43만5031명으로 이후에도 이보다 출생아 수가 적었던 적은 없다.

대학구조개혁=입학정원 감축?

1990년대 줄곧 한 해 60만 명 이상이던 출생아 수는 ‘밀레니엄 베이비붐’이 일었던 2000년(63만4501명)을 끝으로 급감했다. 2001년(55만4895명)에 50만 명대로 떨어지더니 2002년(49만2111명)엔 40만 명대가 허물어졌다. 2005년엔 2000년에 견줘 무려 31.4%(19만9470명) 줄었다.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은 출생아 수가 급감한 2001~2005년생이 대학에 가는 시기(2020~2024년)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시작됐다. 대학구조개혁이라는 명분은 거창하지만 알맹이는 대학 입학정원 감축이 전부인 이유가 여기 있다.

2014년 1월 교육부가 수립한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보면 2020년 8만8200여 명, 2024년 16만8천여 명의 미충원이 예상된다. 교육부의 1주기 대학구조개혁(2014~2016년)을 통해 각 대학들은 이미 올해 고3 학생들이 대학에 가는 2017학년도 입학정원을 4만3천여 명 감축한 상태다. 교육부는 내년부터 2주기 대학구조개혁(2017~2019년)을 통해 5만여 명의 추가 정원 감축을 예고하고 있다. 20대 국회가 본격적으로 활동할 바로 그 시기다.

19대 국회는 대학구조개혁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교육부가 2014년 1월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을 수립한 지 3개월 만인 2014년 4월 김희정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대학 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대학 평가를 통해 교육부 장관이 각 대학에 정원 감축 및 조정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하고 대학이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행정적·재정적 제재를 하는 등 사실상 교육부에 대학 입학정원 감축에 대한 전권을 부여했다.

하지만 이 법은 2025년 이전에 폐교 및 해산하는 사립학교 법인의 경우 설립자에게 학교의 재산을 그대로 돌려주는 조항이 ‘부실·비리 재단의 먹튀를 부추기는 특혜 조항’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2015년 10월엔 새누리당 안홍준 의원이 ‘김희정 법안’을 보완해 설립자에게 학교 재산을 돌려주되, 학교 설립 당시 출연한 기본금만큼만 돌려주도록 수정했으나 논란을 피하지 못하고 19대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시급하게 대학 입학정원 감축이 필요한 상황에서 부실 대학의 퇴출을 유도하려면 일종의 ‘당근’이 필요하다는 정부·여당의 입장은 20대 국회에서도 변함이 없다. 김선동 새누리당 의원은 ‘안홍준 법안’과 같은 내용을 담은 ‘대학구조개혁 촉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20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발의했다.

정부·여당이 대학구조개혁을 밀어붙이고 야당은 이를 반대하는 단순한 구도가 되풀이된 19대 국회에선 대학구조개혁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공론화가 어려웠다.

“도박하듯 일단 정원 10% 감축”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도 교육부는 대학에 국고를 지원하는 각종 ‘대학재정지원사업’을 수단으로 교육부가 세운 정원 감축 목표를 각 대학에 관철했다. 2014년 3월 전국 대학 관계자를 상대로 열린 2600억원대 규모의 대학재정지원사업인 ‘대학 특성화 지원사업(CK사업) 설명회’에서는 교육부 담당 국장이 나서 2023년까지 16만여 명의 대학 입학정원을 감축하겠다는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을 설명하는 시간이 따로 있었다. 교육부는 CK사업에서 입학정원을 최대 10%까지 감축한 대학에 가산점을 줬다. 부산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면밀한 분석을 토대로 입학정원 감축률을 정할 수가 없었다. 대학마다 신경전을 벌이면서 마치 도박하듯 일단 10% 감축하고 보자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i>“기본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고등교육 재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세계 100대 대학이 없다, 대학 경쟁력이 없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
-김유경 전국국공립대학 교수연합회 사무총장
</i>

지방대의 경우 수도권 대학에 견줘 대학 재정 지원을 앞세운 교육부의 정원 감축 압박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실제 교육부 자료를 보면, CK사업을 통해 감축된 대학 입학정원(1만9085명)의 85.7%(1만6361명)는 지방대 몫이었다.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 10곳은 CK사업 신청 당시 정원 감축 계획을 아예 내놓지 않았다.

대학구조개혁 수단으로 전락한 대학재정지원사업을 정상화하는 일도 20대 국회의 과제다. 최근 교육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 가운데 하나인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을 둘러싼 대학 구성원들의 갈등이 폭발한 이화여대는 한국 고등교육의 ‘영세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화의 난’으로까지 일컬은 내부 구성원의 거센 반발을 부른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으로 이화여대가 지원받는 금액은 한 해 30억원이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교육학)는 “교육부가 대학재정지원사업으로 지원하는 규모가 2조9천억원 정도 되는데 이걸 87개 사업으로 쪼개서 주니 지원금이 10억원도 안 되는 사업이 많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으로 받는 30억원은 비교적 큰 규모다”라고 말했다.

2012년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국가장학금 제도’가 도입된 이후 대학의 등록금이 사실상 동결되면서 각 대학이 추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곳은 정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뿐이다. 대학교육연구소 자료를 보면, 2024년까지 대학 입학정원이 16만 명가량 줄어들 경우 사립대 1곳당 185억원 정도 등록금 수입 감소가 예상된다. 돈에 쪼들리는 대학이 학내 갈등을 무릅쓰고 대학 구성원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상존하는 것이다.

김유경 전국국공립대학교수연합회 사무총장(경북대 교수)은 “서울대 학생들이 3만5천여 명 되는데 1년 예산이 1조5천억원 정도다. 반면 미국 하버드대학은 학생 수가 2만 명도 안 되는데 1년 예산이 4조5천억원”이라며 “기부금 모금이 활성화된 미국과 일률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고등교육 재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세계 100대 대학이 없다, 대학 경쟁력이 없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고등교육예산 GDP 1%의 약속

충분한 고등교육 재원 확보는 박근혜 정부의 약속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에는 국내총생산(GDP)의 0.7% 정도인 고등교육 예산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GDP의 1%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GDP의 1%에 해당하는 재원을 ‘고등교육재정교부금’으로 확보해 대학에 지원하는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이 19대 국회 때 발의되기도 했다. 임희성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20대 국회에서는 교부금법안에 관심 갖는 의원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야당에서도 추진 동력이 없는 상태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사회정책팀 기자 torani@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 캠페인 기간 중 정기구독 신청하신 분들을 위해 한겨레21 기자들의 1:1 자소서 첨삭 외 다양한 혜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