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비밀조직, 국정 역사 교과서 TF팀

청와대 비선 논란… 20명 넘는 대규모 조직, 불법성 시비 무릅쓰고 꾸려진 주요 구성원의 면면
등록 2015-11-03 17:42 수정 2020-05-03 04:28
“‘국민이 역사를 다르게 기억한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분열뿐이다.’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추모관장의 말입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0월12일에 한 말이다. 이날 그는 ‘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2017년부터 중·고등학교 국사와 한국사를 정부가 발행하는 하나의 교과서로 수업하고, 2020학년도 수학능력평가부터 이 교과서로 시험을 치르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황 부총리가 인용한 말은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사료관인 ‘야드바??’ 로버트 로제트(59) 관장이 지난 8월15일 와 한 인터뷰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런데, 황 부총리가 거론하진 않았지만, 로제트 관장의 인터뷰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역사는 굳은 화석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물입니다.” “역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일부 국가 지도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우려스럽습니다.” 국정 역사 교과서를 추진하는 쪽의 의도와 배치되는데다, 박근혜 대통령을 부정적으로 빗댄 듯한 인터뷰 가운데 일부를 황 부총리가 끌어온 것이다.

교육부 것으로 보기 어려운 ‘비밀작업’
지난 10월25일 저녁 8시께 정진후 정의당 의원(왼쪽) 등 야당 의원들과 언론사 취재진이 서울 동숭동 국립국제교육원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회관에 있는 ‘교육부 국정 역사 교과서 태스크포스팀’ 사무실을 급습해, 직원들에게 잠근 문을 열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지난 10월25일 저녁 8시께 정진후 정의당 의원(왼쪽) 등 야당 의원들과 언론사 취재진이 서울 동숭동 국립국제교육원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회관에 있는 ‘교육부 국정 역사 교과서 태스크포스팀’ 사무실을 급습해, 직원들에게 잠근 문을 열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겨레 김성광 기자

대통령을 욕보이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면, 아마 실수일 것이다. 교육부의 이런 미숙한 대응은 ‘국정 역사 교과서 태스크포스팀’(TF팀)에서 비롯했을 가능성이 높다. 황 부총리가 설명한 TF팀의 주요 업무에 ‘올바른 교과서 홍보계획 수립과 추진’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TF팀의 존재는 지난 10월25일 저녁 8시께 야당 의원들과 언론사 취재진이 서울 동숭동 국립국제교육원 정부초청 외국인장학생회관에 있는 TF팀 사무실을 급습하면서 확인됐다. 새정치민주연합 ‘한국화 교과서 국정화 저지 특별위원회’ 소속 도종환·김태년·유기홍 의원과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이 건물에 들이닥쳤을 때, 김관복 교육부 기획조정실장을 비롯해 TF팀 소속 오석환 단장과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TF팀은 황급히 문을 걸어잠근 채, 다급히 경찰에 보호 요청을 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박남춘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이 10월28일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국정화 TF팀 112 신고 녹취록’을 보면, 경찰에 9차례나 시설 보호를 요청하면서 “여기 우리 정부 일하는 데예요. 지금 여기 이거 털리면 큰일 나요” “이거 (경찰력을 더) 동원 안 하면 나중에 (경찰이) 문책당해요”라고 말하는 등 허둥댄 기색이 역력하다.

이에 대해 도종환 국정화 저지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행정예고(10월12일~11월2일) 기간이 남았는데, 교과서 국정화를 기정사실화한 채 비밀작업을 하고 있다”며 이들이 국정교과서 추진을 위한 청와대 비밀조직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도종환 의원이 공개한 ‘TF팀 구성 운영계획(안)’을 보면, 이들의 담당 업무 가운데 ‘BH(청와대) 일일 점검 회의 지원’이 있다. 또한 ‘(역사 교과서 관련) 언론 동향 파악 및 쟁점 발굴, 온라인 동향 파악, 기획 기사 언론 섭외’처럼 교육부의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업무들이 주어졌다.

TF팀 업무에 대한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10월27일 이 자료를 업데이트한 ‘역사교육지원팀 업무 분장’ 자료를 새로 냈다. TF팀 이름이 ‘역사교육지원팀’으로 바뀌고, 기존 담당 업무에서도 ‘TF’ ‘동향 파악’ 같은 단어들이 삭제됐다. ‘BH 일일 점검 회의 지원’이란 문장은 아예 빠졌다.

교육부는 국정 역사 교과서 TF팀을 “기존 역사교육지원팀 보강 차원에서 조직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청와대 비밀조직’ 논란이 일자, 황 부총리는 10월27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정확하게는 역사지원팀이 있거든요. 그 팀이 너무 작아요. 12명인데 일반 업무 하는 사람 빼놓으면 실제로 그 내용이나 업무 추진에 있어서 너무 적기 때문에 이러한 예고, 또 앞으로 닥칠 큰 엄청난 업무량에 비해서 보강할 필요가 있어서….” 하루 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TF팀에 대해 “개별 부처에서 업무 추진을 위해 만드는 상황팀”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TF팀 구성원의 무게감을 보면, 단순 ‘업무 지원’이나 ‘상황팀’으로만 보기 어려운 구석이 많다. TF팀에선 교육부 김관복 기획조정실장과 김동원 학교정책실장이 핵심 구실을 하고 있다. 교육부 실장은 1급(관리관) 공무원으로 장차관을 빼고 직급이 가장 높다. 3실 3국 11관 49과 체제인 교육부의 실장 3명 가운데 2명이 이 팀에 동원된 것이다. 나머지 1실은 역사 교과서 문제를 관장하기 어려운 대학정책실(실장 한석수)이다.

교육부의 실장 3명 가운데 2명이 관여

황 부총리가 밝힌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이번 TF팀을 꾸린 인물은 김동원 학교정책실장이다. 황 부총리는 10월27일 기자회견에서 “TF팀은 누구의 지시로 꾸려진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교육부의 업무가 늘어나고 줄 때에는 대개 실장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이 경우에는 아마 실장이, 학교정책실에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김동원 실장은 황 부총리가 취임한 지 3개월 무렵인 지난해 11월 교육정책실장으로 임명됐다. 올해 1월 현재 직책인 학교정책실장으로 부임했다. 교육정책실장은 교육과정과 교과서 정책뿐 아니라 학교 지원까지 다루는 자리여서 교과서 문제 전반을 주무를 수 있는 직책이기도 하다. 김동원 실장은 인천교대를 졸업한 뒤, 중등 교사 등으로 주로 인천 지역에서 근무했다. 실장 부임 직전에도 인천 계산여고 교장을 지냈다. 황 부총리는 1996년 신한국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 2000년 인천 연수구에 출마해 이 지역구에서만 5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 때문에 지난해 김동원 실장 임명 당시, 황 부총리의 ‘인천 인맥 인사’ 논란이 불거졌을 만큼 측근으로 꼽힌다.

TF팀의 직제에 등장하진 않지만, 김관복 기획조정실장도 핵심 인물이다. 지난해 12월부터 기조실장을 맡은 그는 국정 역사 교과서 추진 과정에서부터 황 부총리, 김재춘 교육부 전 차관과 함께 당정협의회에 참여해왔다. 야당 국회의원 등이 TF팀 사무실에 들이닥칠 때에도 이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는 행정고시 31기 출신으로,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를 거쳤다. TF팀 실무를 총괄하기 위해 호출된 오석환 단장(충북대 사무국장)과는 서울대 행정학 석사과정 동문이기도 하다.

TF팀 오석환 단장 역시 ‘고위 공무원단’으로 분류되는 2급 공무원인데 이는 교육부 안에서 최고위직 가운데 하나다. 현재 충북대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국립대 사무국장은 대학 살림을 책임지는 자리로 교육부 장관이 임명한다. 교육부가 직속 직원을 놔두고, 특정 현안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국립대 사무국장을 호출한 점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김일곤 국립대학노동조합 정책위원장은 과의 통화에서 “국립대 살림을 책임지는 사무국장이 절차적 불법성 시비를 무릅쓰고 TF팀에 간 것 자체가 의혹을 부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1~2급 고위 공무원이 3명이나 들러붙어 TF팀을 진두지휘한 것이다. 특히 김동원·김관복 실장이 현 직책을 맡은 시기에 눈길이 간다. 도종환 의원이 공개한 올해 6월2일자 교육부 공문을 보면, ‘대통령 지시 사항(역사 교과서 관련 제도 개선, 지시일-14.2.13.)’이란 대목이 나온다. 지난해 2월부터 역사 교과서 문제를 청와대가 직접 챙기기 시작했고, 올해 6월 교육부가 본격화했고, 그 직후인 지난해 8월 새 교육부총리로 황우여 부총리가 입각했으며, 다시 서너 달 사이에 김동원·김관복 실장이 요직에 중용된 것이다.

야당은 이번 TF팀을 두고 ‘국정교과서를 비밀리에 추진하기 위해 총동원령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TF팀의 조직 규모는 27명에 이른다. 현재 교육부 내 가장 규모가 큰 교육과정정책과(22명)의 인원을 훌쩍 넘는다. 정진후 의원에 따르면, 애초 7명이던 역사교육지원팀이 이번에 TF팀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27명(세종 6명·서울 21명)으로 4배 커졌다. 명칭으로만 보면 (태스크포스) ‘팀’이지만, 그 지휘 체계와 규모를 보면 별개의 ‘국’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청와대에 상시 상황 보고”

상황이 이런데도 황 부총리는 ‘사후 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 10월27일 기자회견에서 “이 팀에 대한 것은 꾸려졌다는 이야기를 제가 보고받았습니다, 그즈음에”라고 말했다. 그는 ‘TF팀이 만들어진 뒤, 부총리에게 추후 보고됐냐’는 물음에 “네, 그렇습니다”라고 했고, 정확한 보고 시기를 묻는 질문에는 “그것이 10월5일인가 꾸려졌기 때문에 그 후에 보고를 받았습니다”라고 덧붙였다.

‘TF팀 업무 구성 운영계획(안)’을 보면, TF팀은 청와대에 일일 점검 회의를 지원할 만큼 중요한 업무를 하는 조직인데도, 해당 부처의 수장인 황 부총리가 사전 보고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TF팀의 존재가 드러난 지 하루 만에 청와대 쪽도 “교육문화수석실 차원에서 상황을 관리한다 할지… 이런 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알고 있다”고 답했다.

양쪽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교육부 실장이 황 부총리 모르게 교육부의 핵심 현안 추진 조직을 재구성하고, 여기서 나온 내용을 임의로 청와대에 보고하기로 계획한 것이다.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은 이 조직을 활용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작업의 ‘컨트롤타워’ 구실을 한 셈이 된다.

황 부총리와 청와대 쪽 해명이 배치되면서 ‘청와대가 국정 역사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교육부에 직할 비선 조직을 만든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이병기 비서실장은 “지난 12일 교육부가 국정화로 결론을 낸 다음부터는 관여할 게 있으면 하겠지만 그 전에 청와대가 지시하고 몰아간 것은 아니다”라며 일단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 내 1~2급 고위직 3명이 주도한 대규모 조직이 뚜렷한 절차 없이 구성된데다, 이들이 청와대에 일상적인 업무 보고를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국정 역사 교과서 비밀 추진 조직’이란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TF팀 구성 운영계획(안)’에서 드러났듯이 TF팀이 청와대 일일 점검 회의를 지원한 점을 고려하면, 이들이 교육부의 보고 계통을 생략하고 청와대와 직보 체제를 구축했을 가능성도 있다.

정진후 의원은 “김관복 실장이 국회를 찾아와 ‘TF팀 단장 또는 국장이 BH(청와대)에 상시, 수시로 상황 보고를 해왔다’고 확인해줬다. ‘청와대 교육비서관을 포함해 교육문화수석실에 가서 보고하기도 하고, 내부 전산망으로도 보고했다’고 김관복 실장이 설명했다”고 전했다.

외부 연락 닿지 않는 오석환 단장

여러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김동원 실장 및 오석환 단장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황 부총리는 10월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오석환 단장과 연락이 안 된다”는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지적에 “여러 가지 신변의 (위협) 때문에 지금 그 전화는 사용하지 않는 걸로 안다”고 답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