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야전군 지휘관 시절부터 집무실에 북한 최고 지도자와 인민군 책임자의 사진을 걸어놓았다고 한다. 자신이 상대할 ‘적’을 마음에 각인시키기 위함이었다. 그 사진들이 자신의 등을 지켜보는 것을 떠올리며 군사적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보실장이 된 뒤론 황병서 북한 총정치국장의 사진이 집무실에 추가로 걸렸다고 전해진다. 이번에 김 실장이 그 황병서 국장과 마주 앉아 남북의 군사 대치를 푼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8월25일 새벽 청와대 춘추관에서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 실장은 ‘8월25일 남북 고위급 접촉 합의’를 통해 최근의 남북 긴장을 해소한 주역으로 떠올랐다. 이번 접촉의 출발점이던 ‘목함지뢰 폭발’ 당시 청와대가 안보 상황을 잘 관리하지 못했다며 여당에서도 김 실장 사퇴론이 나온 것을 떠올리면 극적 반전이다. 마침 그가 판문점에서 협상 성과를 가져온 ‘8월25일’은 박근혜 정부가 임기 반환점을 돈 첫날이었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의 신뢰를 쌓은 그가 당분간 안보실장을 유지하며 남북 협상에 주요하게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 북한에서도 그를 남한의 중요한 대화 상대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김 실장은 북한 권력 서열 2인자인 황병서 국장과 지난해에 이어 두 번 연속 만나며 인연을 쌓았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북한은 안면을 중시하는데 이번에 2+2(남한 김관진·홍용표, 북한 황병서·김양건)로 만나 (이들 사이에) 서로 이해하는 면이 생기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북한이 김 실장을 협상 상대로 지목한 통지문을 보낸 것도 향후 남북 협상에서 그의 입지를 더 강화하는 부분이다. 김창수 코리아연구원 원장은 “북한은 남한 내부의 강경·온건파를 따지기보다 현 정부의 실세를 좋아한다. 김 실장을 지목한 건 (박 대통령과 더 빨리) 직거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을 원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실장이 박 대통령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청와대 핵심 참모이자, 국가안보를 조정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1972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대북특사로 보냈을 때 김일성 주석은 “간첩 잡는 기관의 책임자이기 때문에 당신(이후락)을 신뢰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북한이 대화 상대자의 남한 내 위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이번 합의를 통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켰지만 원래 김 실장은 대북 관계 강경파로 불리던 인물이다. 강렬한 눈빛 때문에 ‘레이저 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국방부 장관 시절엔 북한이 도발하면 공격의 원점뿐 아니라 “지휘세력까지 타격”하는 등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다만 그에 대해 “원칙론자이지만 그래도 합리적인 면이 있고 실무를 강조하는 스타일”이란 의견도 같이 뒤따른다. 특히 육사 1학년까지 다닌 뒤 독일 육사에서 3년간 위탁교육을 받은 이력이 이런 평가의 배경이 되곤 한다.
▶1949년생. 전주북중, 서울고(20회)
▶육군사관학교 28기(육사 1년을 마친 뒤 독일 육사에서 3년 위탁교육)
▶ 35사단장(1999~2000년), 2군단장(2002~2004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2004~2005년), 3군사령관(2005~2006년)
▶합참의장(2006년 11월~2008년 3월)으로 예편 *참여정부 시절
▶국방부 장관(2010년 12월~2014년 6월) *이명박 정부~박근혜 정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2014년 6월~현재) *박근혜 정부
그의 육사 시절 한 후배는 “독일 육사는 병사·부사관·장교 과정을 차례로 체험하는 실무 현장 교육으로 이뤄진다. (이런 영향인지) 김관진 실장도 야전 지휘관 때 공식 문서를 갖춘 정식 보고뿐 아니라 구두보고, 간단한 요약보고, (일일이 지휘관을 만나 보고하는 것이 아닌) 비대면보고 등을 활용했다. 실무 교육훈련도 중요시했다. 부하들의 얘기를 경청하는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편집장은 “그의 스타일이 유연하다고 할 순 없지만 독일 유학 때문에 다른 경직된 군인들보다는 나은 점이 있다. 이런 것이 이번에 외교(남북 협상)에서도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쪽으로 작용했다고 본다”고 했다. 김 편집장은 “그의 뚝심이 대북 강경의 방향으로 작용했는데 이번엔 나름 (긴 협상 끝에 남북 합의라는) 긍정적인 면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군에선 김 실장에게 “관운이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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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35사단장 시절 예하 부대에서 자살 사건이 잇따르기도 했고, 3군 사령관 시절이던 2005년엔 예하 부대인 28사단 530GP(전초기지)에서 장병 8명이 숨진 대형 사건도 있었다. 당시 김아무개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과 실탄을 난사했다고 국방부가 밝힌 사건이다. 하지만 그는 참여정부에서 능력을 인정받으며 합참의장 자리에 올랐다.
합참의장을 끝으로 2008년 예편한 그는 2010년 12월 국방부 장관으로 재호출됐다. 그해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 사태가 연이어 터진 뒤 육사 후배인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물러난 직후다. 2013년 초 박근혜 정부가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를 내정한 뒤 그는 공관에서 짐을 뺄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내정자가 여러 비위 의혹으로 38일 만에 자진 사퇴하면서 유임된 그는 전·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이어가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우게 됐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 위기관리 대응이 미숙했다는 책임론이 불거진 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물러나자 2014년 6월 신임 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돌이켜보면, 김병관 내정자의 불명예 사퇴가 김관진 실장이 3년6개월간의 국방부 장관 재임과 청와대 안보실장을 거쳐 이번에 남북 협상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뜻밖의 계기가 된 셈이다. 둘은 육사 28기 동기다. 김병관 내정자는 육사를 수석 졸업했다.
김 실장은 장관 시절 군의 진급 인사를 합리적으로 진행했다는 평가도 받았지만,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개입 사건을 차단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는 합참의장이던 참여정부에서 전시작전권 환수 등 국방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이명박 정부에선 전시작전권 환수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김종대 편집장은 “이명박 정부 때 군 상부 구조 개혁을 추진했는데 박근혜 정부에서 이를 다시 안 하기로 하는 등 정권마다 말이 달라진 면이 있다”고 했다. 다른 장성 출신의 한 인사는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통수권자(대통령)의 의도에 맞출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그가 남북 협상에 주요하게 나설 가능성에 대해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김 편집장은 “이제 그가 남북관계의 상징이 된 측면이 있다. 그가 (향후 협상에서) 호락호락 당하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군인 출신인 그가 남북 문제를 원만히 조율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도 나온다. 노태우 정부에서 김종휘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 국민의 정부에서 임동원 통일부 장관, 참여정부에서 이종석 통일부 장관 등은 대통령과 긴밀히 소통하며 남북·외교·통일 문제를 조정한 인사들로 꼽힌다. 공교롭게 이들이 활동한 시기에 남북한 합의서들이 도출됐다. 이 때문에 김 실장이 남북 협상에 주요하게 나서더라도 통일부의 공간을 더 넓혀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상황은 안보 국면이라 김 실장의 역할이 분명히 있었는데 평화로 가는 대화 국면에서 안보 우선에 집착하면 대화의 유연성이 약화될 수도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대통령의 핵심 수족인 김 실장이 대북 협상에 나서면 북에서도 그를 남한의 최고 당국자로 인정하기 때문에 회담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통일부 역할이 축소되는 점, 일이 잘못되면 대통령에게 부담이 직접적으로 갈 수 있다는 단점이 함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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