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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책임지지 않는 죽음이 있다

제1065호 표지이야기 주인공 ‘42번째 확진 환자’ 6월17일 사망… 보건 당국의 비밀주의와 감염 관리 부재가 부른 비극, 정부 “책임 따지기 쉽지 않아”
등록 2015-06-23 15:14 수정 2020-05-03 04:28

김정옥(가명)씨가 6월17일 사망했다.
그는 제1065호 표지이야기(“휴원 당일까지 메르스 환자인 줄 몰랐다”)의 주인공이다. 평택성모병원에서 이송(5월29일)되자마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양성반응을 보이며 중태에 빠졌다. 그의 발병 과정은 보건 당국의 비밀주의와 무책임한 감염 관리 실태를 드러내는 사례였다. 제1066호(손 닿는 곳마다 나를 묻히는 것 같았다)에선 그의 확진 판정 사실을 전했다.
그는 1차 양성반응 이후 줄곧 ‘불안정 환자’로 분류되며 기계호흡에 의존하다 세상을 떠났다. 6월6일 확진자 명단 포함 이후 보건복지부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대책본부)가 그에게 붙인 이름은 ‘42번째 환자’였다. 사망 당일 그에겐 번호 하나가 더 부여됐다. ‘20번째 사망자’.

권준욱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이 6월17일 20번째 메르스 사망자 (42번째 확진 환자) 발생 사실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TV 화면 갈무리

권준욱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이 6월17일 20번째 메르스 사망자 (42번째 확진 환자) 발생 사실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TV 화면 갈무리

42번째 환자, 20번째 사망자

그의 확진부터 죽음까지의 시간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슈퍼 전파자’도 아니었고, 감염된 의료진도 아니었으며, 감염 경로 추적도 명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보건 당국도, 언론도, 42번째 환자는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를 카운팅할 때만 간단하게 언급했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것은 ‘그의 죽음 이유’이며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다.

김정옥씨가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해→서울의료원으로 이송되고→확진 판정을 받은 뒤→사망하기까지 대책본부의 ‘몇 안 되는’ 발표와 기록을 되짚어봤다.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① “5월19~20일 평택성모병원 7병동 환자” 대책본부는 지난 6월6일 김정옥씨의 메르스 확진 사실을 처음 언론에 발표한다. 김정옥씨가 대상포진으로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한 날은 5월19일이었다. 대책본부가 7층에 있었다고 밝힌 이틀 동안 김정옥씨는 8층(최초 확진자가 입원했던 병동)에 있었다. 최초 확진자의 감염 사실이 확인된 5월20일 8층에서 7층으로 이동됐다.

② “기존 확진자와 동일 병동에 있었던 환자” 최초 확진자가 평택성모병원 8층에 입원한 시기는 5월15~17일(5월17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방문 뒤 이튿날 입원)이었다. 김정옥씨가 입원했을 때 최초 확진자는 평택성모병원에 없었다. 김정옥씨는 8층에 머문 이틀 동안 최초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에게 감염됐거나 7층으로 옮긴 뒤 누군가로부터 감염됐다는 뜻이다. 어느 쪽이건 공통된 사실이 있다. 보건 당국의 ‘비밀주의’가 부른 비극.

당시 보건 당국은 평택성모병원에 메르스 확진자가 입원했었다는 사실을 환자들과 그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8층 환자들을 7층으로 내려보낼 때도 “별일 없다”고만 했다. 환자와 가족들에게 자기방어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김정옥씨 감염 사실 발표 다음날 공개된 확진자 두 사람(52번째·53번째)은 각각 5월23일과 26일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해 휴원 전날까지 머물렀다. 보건 당국이 메르스 발병 사실과 발생 병원을 공개했다면 입원하지 않았을 피해자들이다. 김정옥씨가 옮겨간 7층 병실은 5인실이었다. “엄마가 입원한 병실에도 계속 신규 환자가 들어왔다”고 그의 딸 박경란(가명)씨는 증언한다.

비밀주의는 감염 관리 부재로 이어졌다. 병원 내 마스크 착용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고, 병실 출입과 환자의 이동 및 접촉도 통제되지 않았다. 환자는 병원 안팎을 자유롭게 오갔고, 면회객은 무시로 드나들며 접촉했다. 8층의 출입까지 통제되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온다. 평택성모병원에서 감염된 확진자 가족 중 한 명은 “감염자 발생 이후에도 8층에서 환자들과 면회객들이 병실 안팎과 복도를 오갔다”고 전했다. 보건 당국은 30여 명의 감염자가 발생한 뒤에야 평택성모병원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자진신고’를 독려(6월5일)했다.

감염자 수십 명 나오고서야 신고 독려

정부는 비밀주의와 부실한 감염 관리의 책임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책임 소재가 가려지지 않는 죽음은 ‘천재지변’으로 치부되거나 죽은 자의 몫으로 돌아갈 뿐이다.

감염 관리의 부재는 감염 경로 확인이 어려운 이유기도 하다. 대책본부 발표 자료를 보면 평택성모병원발 감염자들은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최초 확진자의 가족이거나, 최초 확진자와 같은 병실을 썼거나, 최초 확진자와 같은 시기에 입원했거나, 앞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들과 접촉했거나 등이다. 확진자들마다 접촉 경로가 발표 자료에 명기돼 있다. 김정옥씨의 경우 접촉 경로가 언급되지 않았다. 52번째·53번째 확진자도 마찬가지다. 대책본부 관계자는 말했다.

“42번째 환자는 최초 확진자와 관계된 분들과 접촉한 것으로 보이나 확정짓기 어렵다. 규명이 더 필요하다.”

③ “5월25일 발병했다” 6월17일 사망 사실을 발표하면서 대책본부가 밝힌 발병일은 김정옥씨가 호흡곤란 등을 호소한 시기와 일치한다. “5월24일 엄마와 통화할 때 열이 오르고 기침이 난다고 했다. 25일 면회 갔을 때도 전에 없이 숨차했다.”(박경란씨)

그러나 보건 당국과 병원이 모녀에게 밝힌 증상의 원인은 ‘폐렴’이었다. 메르스 감염 가능성은 전달되지 않았다. 메르스 의심 증상으로 검사를 받는다는 사실은 서울의료원 이송 당일(5월29일) 딸의 추궁 과정에서야 확인됐다.

“(김정옥씨에 대한) 방역 조처는 합당하게 이뤄졌다. 역학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관계는 (환자와 가족에게) 일부만 전달할 수밖에 없다.”(6월18일 대책본부 관계자)

그의 감염 사실을 질병관리본부가 “내부적으로” 확진한 날은 5월29일이다. 최종 양성 판정 사실이 언론에 공개된 날은 6월6일(대책본부 관계자 “분명치 않은 부분이 있어 확진을 유보하고 추가 조사하느라 외부 공지가 늦어졌다”)이었다. 확진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 자가격리 중이던 박경란씨가 병원과 질병관리본부에 수차례 전화해 확인한 날은 6월7일 밤이었다.

김정옥씨 죽음의 문서상 공식 집계는 사망 하루 뒤인 6월18일 이뤄졌다. 전날 브리핑 때 대책본부는 구두로 그의 사망 사실을 전했다. “오전 보도자료 배포(8시30분) 이후에 42번째 환자분이 사망해 자료에 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사망 시각은 새벽 5시께(유족 및 대책본부 확인)였다.

김정옥씨의 죽음은 억울하다. “42번째 환자에게 기저질환으로 기관지확장증과 고혈압이 있었다”고 대책본부는 밝혔다. 기저질환이 그의 죽음 이유를 대표할 순 없다. 정부는 비밀주의와 부실한 감염 관리의 책임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책임 소재가 가려지지 않는 죽음은 ‘천재지변’으로 치부되거나 죽은 자의 몫으로 돌아갈 뿐이다. 사망 원인 규명과 정부 차원의 배·보상 여부도 전혀 논의되지 않고 있다.

“앞을 봐야 한다”는 보건 당국

“전염병 사망의 책임 소재는 따지기가 어렵다. 충분히 예방 가능했음에도 피해를 입게 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현재까지 법원의 판례 경향으로 볼 때 손해배상은 쉽지 않다.”(대책본부)

죽음의 이유를 좇는 취재에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불편함을 나타냈다. “지금은 과거를 추적하기보다 앞으로의 일에 신경을 쓸 시기다. 이미 벌어진 일보다 앞을 봐야 한다.”

6월18일치 지면엔 방호복으로 전신을 감싼 서울의료원 간호사가 전날 사망한 김정옥씨의 침상을 소독하는 사진이 실렸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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