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은 2009년 당시 건설업계에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놈들’이라고 불렸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기업에 대해 자금 관리를 굉장히 엄격하게 했다. 워크아웃 할 거면 차라리 망하고 이름 바꾸는 게 낫다고들 했을 정도다. 그런데 경남기업에만 의외로 관대했다. 우리가 보기엔 신기할 정도였다. 그래서 대표이사(성완종)가 노력 좀 했겠구나 생각했고, 우리 대표이사는 뭐하고 있나라는 불만이 많았다.”(ㄱ건설 전직 간부)
2009년 5월 워크아웃(기업 재무구조 개선작업)에 들어간 경남기업이 애초 일정인 3년보다 1년을 앞당겨 2011년 5월 ‘조기 졸업’을 하자 건설업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이 팽배했다. 당시 워크아웃 개시 시점부터 종결까지 걸리는 기업들의 평균 기간이 1438일에 이르렀던 점에 견주면, 경남기업은 절반 정도의 기간 만에 졸업한 것이다.
건설업체 입장에서 워크아웃은 ‘주홍글씨’와 같다. 대규모 사업을 수주하려면 건설공제조합·서울보증보험·대한주택보증 등이 발행하는 보증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중인 건설사들에 대해서는 이들 기관이 보증서 발급을 위한 여러 조건을 내건다. 현금을 담보로 잡거나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하는 것이다. 위험 부담이 크다는 이유다. 이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중인 건설사들이 보증서를 발급받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는 다시 새로운 사업을 수주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결국 재무구조 악화로 이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경남기업의 주채권은행이었던 신한은행은 파격적으로 2년 만에 경남기업의 주홍글씨를 떼주었다. 2009~2011년 워크아웃에 들어간 건설사 33곳 가운데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한 사례는 경남기업이 유일하다.
그러나 경남기업의 당시 재무제표를 보면 상황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다. 매출액은 2009년 1조7104억원에서 2011년 1조4157억원으로 줄었다. 당기순이익 또한 2009년 227억원, 2010년 204억원, 2011년 190억원으로 줄곧 내리막길이었다. 영업이익률도 2009년 4.8%에서 2010년 4.4%에 그쳐 감소세로 돌아섰다. 영업 수익성(매출액에서 매출원가와 판매관리비를 뺀 뒤 이를 매출액으로 나눈 비율)도 2009년 4.8%였지만 2011년에는 3.2%로 추락했다. 영업 수익성이 낮다는 것은 매출이 늘어도 그만큼 기업의 이익이 함께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가리킨다.
게다가 워크아웃 졸업 뒤 금리 인상과 차입금이 늘어나면서 금융비용 부담능력(매출액에서 매출원가와 판매관리비를 뺀 뒤 이를 금융비용으로 나눈 수치)도 2009년 2.2배였다가 3년 만에 반토막으로 떨어졌다. 매출에 견준 이익의 정도가 낮으니 부채에 취약한 구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총차입금 또한 2009년 6507억원에서 워크아웃을 졸업한 2011년 5045억원으로 한때 감소했다가 2013년 8150억원으로 다시 치솟았다. ㄷ건설 한 팀장은 “이듬해인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에 성완종 회장이 출마하려고 워크아웃을 서둘러 졸업한 거라는 말이 파다했다”고 전했다.
예일회계법인이 2011년 3월 작성한 ‘경남기업 경영정상화 가능성 평가보고서 요약본’을 보면, 실사 가치를 기준으로 한 경남기업의 당시 부채비율은 274%로 산정됐다. 경남기업과 매출액·자산규모·부채규모 등이 엇비슷한 5개 건설사의 평균 부채비율 251%보다 높은 수치다.
그런데도 신한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은 2011년 5월 워크아웃 조기 졸업 때 신규 자금 1741억원을 비롯한 3358억원에 대해 상환 유예라는 특혜를 베풀었다. 워크아웃 조기 졸업 뒤 경남기업은 이듬해 영업이익에서 138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2008년 654억원 흑자에 견주면 무려 800억원 가까이 줄어든 액수다. 경남기업보다 한 달 먼저 워크아웃에 들어간 풍림산업은 좋은 대조 사례다. 풍림산업은 당시 시공능력평가 30위로, 경남기업(17위)과 더불어 대표적인 중견 건설업체였다. 워크아웃 직전 연도인 2008년 부채비율(사업보고서 기준)을 보면, 경남기업은 249.9%, 풍림산업은 315%였다. 2009년엔 각각 285%, 341%로 부채비율이 모두 증가했고, 2010년에는 경남기업이 256%로 감소했지만 풍림산업은 485%로 크게 늘었다.
평균보다 높은 부채비율에도 조기 졸업재무구조 개선에 어려움을 겪은 풍림산업은 2011년 7월 워크아웃 2년 연장이 결정됐고 이듬해 5월에는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LIG건설·동양건설산업·벽산건설·우림건설·삼환기업 등의 건설사들도 채권단의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풍림산업은 2013년 법정관리를 졸업해 정상기업으로 복귀했지만, 2014년 영업이익이 여전히 126억원 적자에 머무르는 등 워크아웃·법정관리 후유증을 앓고 있다. 풍림산업 김석원 홍보팀장은 “역사상 건설업체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실제로 정상화된 사례가 없을 거다. 사람으로 치면 신용불량 걸렸다 나온 것인데, 졸업했다고 해서 시장에서 금방 신뢰를 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건설업이 극심한 불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중요한 변수였다. 토목에서는 4대강 사업 종료와 공공부문의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감축 등이 이어졌고, 건축에서는 2011년 이후 수도권의 미분양 아파트가 증가했다. 국내 건설 수주액은 2008년 120조원 규모에서 2013년 91조원대로 4분의 1이 감소했다. 반면 종합건설업체 수는 같은 기간에 1만2590개에서 1만921개로 13%가량 줄어드는 데 그쳐 공급과잉 현상도 심했다.(‘기업구조조정촉진법 상시법제화 방안’, 한국금융연구원ㆍ이화여대 도산법센터, 2014년 11월) ㄴ건설 관계자는 “(이런 불황 요인 때문에) 당시 경남기업의 워크아웃 조기 졸업은 채권단의 자금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말들이 회자됐다. 민간·공공·해외 구분 없이 경남기업은 원가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부·금융권, 부실 워크아웃의 ‘공범’1998년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은 부실기업을 과감히 퇴출시키거나 문제가 된 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한 뒤 인수·합병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2009년 시작된 구조조정에서는 부실기업의 최대주주를 교체하거나 최대주주의 사재출연 등을 통한 추가 출자를 압박하는 등 적극적인 재무 조정이 이뤄지지 못했다. 그 결과, 경남기업도 성완종 회장이 최대주주 자리를 그대로 유지했다. 특히 구조조정 과정에서 최대주주의 무상감자 없이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해준 것은 경남기업 사례가 유일하다. 감자가 이뤄지면 최대주주는 그 지위를 잃는 게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금융 당국이 어떤 이유에선가 채권단에 외압을 행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짙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부채비율이 증가하고 매출이익도 줄어드는 상황이었는데도 경남기업을 워크아웃에서 조기 졸업시킨 채권단의 결정이 결국 부실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당시 채권단에서 왜 무리한 결정을 내렸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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