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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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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일베 코드’에서 자유로운가

2부-정치. 세월호 참사 뒤 막말과 행동으로 유족에 대한 혐오 표현한 일베 유저들… 타락한 능력주의에 물든 주류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 구조와 다르지 않은 일베
등록 2015-04-23 13:45 수정 2020-05-03 04:28

그날, 국가의 무능이 그토록 적나라하게 현현했을 때, 어떤 이들은 2002년이나 2008년의 촛불시위 같은 거대한 저항을 예감했을지 모르겠다. 시민들이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가고, 서울 광화문에도 모였다. 하지만 여전히 사고의 진상은 규명되지 못했고 세월호 유가족은 거리에 있다.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데 그토록 철저하게 무능했던 박근혜 정권은 사고의 진상 규명을 원천봉쇄하는 데는 천재적 능력을 발휘했다. 세월호 특별법에는 끝내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되지 못했다. 이번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은 ‘조사 대상’인 정부 공무원이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정원의 반 이상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정부 위원회 업무를 총괄하게 해놨다. 사실상 조사를 방기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 정함철 대변인(넥타이 맨 사람)이 지난 4월11일 서울 종로를 행진하는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 사이에 뛰어들자 시민들이 제지하고 있다. 정씨는 자신의 행동을 일베 사이트에 올리기도 한다. 박승화 기자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 정함철 대변인(넥타이 맨 사람)이 지난 4월11일 서울 종로를 행진하는 세월호 유가족과 시민들 사이에 뛰어들자 시민들이 제지하고 있다. 정씨는 자신의 행동을 일베 사이트에 올리기도 한다. 박승화 기자

막말·비방에 노출된 채 1년

세월호 희생자는 단지 2014년 4월16일 해상사고를 당한 사람들만이 아니었다. 유가족도 세월호 희생자다. 사고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 그들은 산 채로 지옥을 겪고 있다. 정부의 배상·보상금만 대서특필되면서 지나가던 시민은 물론 유가족의 지인들까지 “돈 받았어요?”라고 묻는다. 돈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라고, 아직 진상 조사도 끝나지 않았다는 유가족의 절규는 끝내 사람들에게 가닿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1주년이 뼈아픈 이유는 세월호 유가족이 여전히 고립돼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분노와 실망이 정치적으로 매개되지 못하면서, 세월호 유가족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나 대한민국어버이연합 같은 극우세력의 끔찍한 비방과 흑색선전에 그대로 노출된 채 참사 1년을 맞았다.

일베 유저들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불과 며칠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유가족을 ‘유족충’이라 부르며 막말을 쏟아냈다. “3일 동안 처운 유××들 목청도 좋네” “잠수부한테 지랄심한 유족충들 아닥시키는 법” “유족충이랑 김치년 공통점” 같은 글이 일베 게시판에 끊임없이 올라왔다. 일베 유저들은 정부의 더딘 대응에 항의하는 특정 유가족의 사진을 캡처한 뒤 “이년 선동꾼이라는 데 내 손모가지 건다 ㄹㅇ” 등의 글을 써서 직업적 선동꾼이라는 이미지를 덮어씌웠다. ‘유민 아빠’ 김영오씨를 향해서는 과거 경력을 들어 ‘빨갱이’로 몰아갔다.

“세월호 참사 때문에 경기가 침체되고 국정이 마비되고 있다” 운운하는 불평 역시 숱하게 올라왔는데 다른 막말들에 비하면 그 정도 발언은 ‘이성적’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급기야 ‘시체팔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자식의 죽음을 빌미로 부모들이 보상금을 많이 타내려고 저리 시끄럽게 군다는 비난이었다. 일베 내부에서도 유가족에 대한 지나친 발언을 자제하자는 목소리가 간간이 나오긴 했지만 모욕과 조롱은 전혀 사그라들지 않았다.

단지 게시판의 글만이 아니었다. 일베는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유가족을 모욕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을 경악시켰던 사건은 일베의 일부 회원이 주도한 ‘광화문 폭식투쟁’이었다. 2014년 9월 그들은 단식투쟁 중이던 세월호 유가족 앞에 좌판을 벌여 햄버거와 피자를 배달시켜 먹는 ‘이벤트’를 열었다. 자식을 잃은 슬픔 속에 곡기를 끊은 부모들을 조롱하듯 태연히 음식을 먹는 젊은이들의 행동은 몰지각한 행위를 넘어선 가학적 폭력이었다. 그에 더해 서북청년단의 후예를 자임하는 자들까지 서울 광화문에 나와 유가족에게 행패를 부렸다. 서북청년단이 어떤 단체인가. 해방 직후 좌경세력이란 명목으로 수십만 명의 국민을 박해하고 살해했던 반인륜적 범죄집단이다.

타락한 능력주의의 추종자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일베의 막장성, 패륜적 표현들에 주목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층에 흐르는 코드다. 막말을 별 일관성 없이 흩뿌리는 공간이었다면 일베가 지금처럼 거대한 커뮤니티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베가 이토록 커진 배경엔 내부적 동기와 외부적 동기가 각각 존재할 뿐 아니라, 명확한 정당화의 논리가 있다.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의견을 응집시키는 ‘정당성의 감각’이 존재하는 것이다. 요컨대 일베 담론에는 ‘일베 코드’가 들어 있다. 무엇일까.

그간 일베 담론 중 가장 문제적인 것으로 꼽혀온 것은 크게 두 가지, ‘여성 혐오’ ‘전라도 혐오’였다. 하나 더 꼽자면 노골적인 반공주의(진보 혐오)다. 전라도 혐오는 글자 그대로 전라도 지역민에 대한 인종차별적 혐오 정서다. 일베에서는 전라도 사람들이 즐겨 먹는 ‘홍어’를 호남을 상징하는 명칭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과거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여성 혐오에 대해서는 부연설명이 조금 필요하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남자 등골 빼먹는 젊은 여성’, 즉 ‘김치녀’를 향한 혐오다. 과거부터 있었던 ‘된장녀’ 담론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된장녀’는 일테면 ‘밥은 삼각김밥을 먹어도 커피는 스타벅스에서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였다. 일베가 혐오하는 ‘김치녀’의 스테레오타입은 대략 다음과 같다. ‘스펙도 능력도 없는 주제에 물욕과 허영심만 강하고, 남자에 대한 배려심이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진보의 선동에는 금방 홀려 넘어가는 젊은 여성.’ 반면 ‘탈김치’는 그런 김치녀의 상태에서 벗어난 이른바 ‘개념녀’를 가리킨다.

그 외에 진보 진영에 대한 혐오 담론, 반이주노동자 담론도 있는데 이 모든 담론을 관통하는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타락한 능력주의’다. ‘능력만큼 우대받아야 하고 능력이 있는 자가 지배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흔히 말하는 능력주의(Meritocracy)다. 반면 타락한 능력주의는 ‘능력자는 존중받는 게 당연하지만 능력(Merit)이나 자격(Membership)이 없으면 얼마든지 차별하고 모욕해도 되는 능력주의’다. 그것은 ‘인간은 평등하다’는 인식의 토대가 허물어진 능력주의이고, 그래서 사실상 인종주의와 구별 불가능해진 능력주의다. 일베 유저들이 학벌과 서열에 유독 민감하고 틈만 나면 ‘스펙 인증’을 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김치녀’에 대한 일베의 혐오는 무임승차에 대한 증오를 젊은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투사한 것이다. 진보세력에 대한 증오는 이른바 ‘민주화운동 세력’이 능력에 비해 과도한 사회적 대우를 받는다고 여기는 데서 비롯했다.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적극적 우대 정책’(Affirmative Action)이나 그와 비슷한 사회적 배려 정책에 대해서도 일베는 항상 격렬한 적의를 드러냈다. 그들이 기여한 바에 비해 얻는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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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는 상품이 아니다

일베 유저들은 사회적 권리와 의무를 마치 등가교환이나 시장에서의 소비행위인 것처럼 사고한다. 100만큼의 의무를 수행해야만 100만큼의 권리가 생기고, 1억원을 내면 1억원만큼의 권리가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러므로 일베에게 김치녀, 약자, 소수자, 진보세력 등은 자본주의 질서를 지탱하는 저 숭고한 격률을 오염시키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자들이며, 내가 받아야 할 정당한 몫을 빼앗아가는 파렴치한 자들이다. 물론 역사적 사실은 일베의 상상과 사뭇 다르다. 대부분의 중요한 사회적 권리는 의무에 대한 대가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억압받는 인간의 치열한 저항을 통해 쟁취되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1원1표제가 아니라 1인1표제다.

세월호 참사는 일베의 막장성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일베 코드’가 일베만의 코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세월호 때문에 경기가 나빠졌다는 ‘세월호 불황론’과 유가족 중에 정치적 선동꾼이 있다는 ‘불순한 유가족론’ 같은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유포한 것은 , , 종합편성채널 같은 언론과 보수 성향 중산층, 기득권층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순수한 유가족’이란 어떤 유가족일까. 납득할 수 없는 사고와 정부의 대응 미숙으로 자식이 목숨을 잃었는데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유가족이다. 일베는 그 서사를 받아서 특유의 패륜적 언어로 확대재생산하는 역할을 했다. 어쩌면 이것은 오늘의 한국 극우파가 구사하는 절묘한 역할 분담이다. 한쪽이 후방에서 논리를 개발하면 다른 쪽은 자극적 언어를 통해 빠른 시간 안에 전파하는 것이다.

자기 자식이랑 놀고 있는 아이네 집이 임대아파트인지 고급 아파트인지, 아버지의 직장은 어디이고 직급은 무엇인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바로 한국의 주류다. 일베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일베 코드를 선취하고 있었던 그들은, 당연한 말이지만 일베적 언어로 발화하지 않는다. 이들이 점잖게 하는 이야기는 그러나 일베 코드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정치적 선동은 혼란을 부른다’ ‘유가족은 순수해야 한다’ ‘경제는 지고의 가치다’…. 이 주장을 두 개의 이념으로 정식화할 수 있다. 정치를 도덕으로 환원하는 반정치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를 시장논리·기업논리에 종속시키는 경제주의가 그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들은 일정 수준 이상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득권을 지키는 아주 효과적인 전략이 된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건 ‘국가’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고 추모할수록, 우리 앞을 완강히 가로막는 근본적인 난제는 일베나 유병언 일가가 아니다. 바로 국가다. 그 국가는 단지 박근혜 정권뿐만 아니라, 안전불감증에 걸린 정부 부처와 선박업자, 작동하지 않는 재난방재 시스템, 세월호 때문에 불황에 빠졌다고 거짓말하는 언론, 세월호 유가족이 순수하지 않다고 의심하는 국민을 모두 포함한, 총체적인 의미에서 ‘국가’다. 세월호 참사는 그 국가가 적나라한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국가를 바꾸는 일에 엄두를 내지 못하며 머뭇거리는 사이 일베 코드는 유가족의 심장을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다 속에 가라앉히고 있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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