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광장은 왕복 10차선 도로 사이에 놓여, ‘섬’ 모양새를 하고 있다. 2014년 7월14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이 섬에 닻을 내렸다. “참사의 진실을 제대로 밝힐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고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각지에서 이웃의 슬픔을 보듬는 사람들이 결합해 ‘세월호 공동체’를 이루었다.
8개월이 지난 3월30일 세월호 농성장은 조금 확장됐다. 이전에는 세종로사거리 앞 천막 14개 동이 전부였다. 이번에는 세종대왕 동상 앞, 정부서울청사 건물 맞은편, 광화문 교차로 앞에 농성장이 더 생겼다. 정부가 3월28일 입법예고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대통령령)안에 반대하고 선체 인양을 촉구하려고 청와대에 대통령 면담을 가려다가 경찰에 가로막히거나 “짐짝처럼 들려나온”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 농성장은 천막 대신 돗자리(3.5×1.3m가량) 하나 펼친 게 전부다. 낮에는 뙤약볕이 내리쬐고, 밤에는 사방에서 바람이 들이친다. 주로 ‘민우 아빠’ ‘영석 아빠’ ‘유민 아빠’가 이 농성장들을 지키고 있다. 민우 아빠와 영석 아빠는 농성장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노숙을 해온 ‘광화문 지킴이’들이다. 지난해 46일간 곡기를 끊었던 유민 아빠도 다시 나섰다. 참사 1주기를 앞두고 다시 큰 ‘고비’를 맞았기 때문이다. 다른 국민들에게 ‘긴급 구조 신호’를 보내기 위해, 아빠들은 기꺼이 뗏목 같은 농성장에 올라탔다.
4월7일 저녁 7시께 경기도 용인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닌다는 김한률(18) 학생과 친구 2명이 정부서울청사 건물 맞은편 돗자리 농성장을 찾아왔다. 모두 교복을 입었다. 학생들이 물었다. “저희 학교에서 세월호 1주기 행사로 유가족 간담회를 하려고 하는데 한번 와주실 수 있어요?” 민우 아빠는 망설였다. “그게… 지금 가족들이 모두 비상이라… 1주기에 맞춰서 가기는 어려울 거 같아.”
이윽고 민우 아빠가 되물었다. “그런데 몇 살이야?” “지금 고3요.” “우리 아들이랑 같겠네. 수학여행 갔다왔어?” “아니요.” “그래, 97년생들이 수학여행 운이 없지? 중학생 때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로 못 갔었잖아.” 민우 아빠는 말간 얼굴을 한 학생들과 한참 더 대화를 나눴다.
“이러다가는 1주기 제대로 치를 수 없겠다.” 학생들이 떠난 뒤 어느 자원봉사자가 말했다. 그는 농성장에서 아빠들과 함께 노숙 중이다. 이날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이 시행령안을 논의할 차관회의를 4월9일에서 일주일 미룬다고 발표했다. 그러면 회의는 4월16일, 정확히 세월호 참사 1주기에 열리게 된다. 가족들은 회의장 주변의 또 다른 길바닥에 모여 시행령안이 강행되지 않도록 감시해야 할 것이다.
“1년은 숫자에 불과해.” 민우 아빠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 상황에서 무슨…. (1주기는) 각자 마음속에서만 깊이 생각하든지… 아니면 내년에 해도 되는 거고….” ‘이 상황’이란, 세월호 특별법을 무력화하고 선체 인양에 부정적인 각종 ‘정치적 술수’를 막아내는 게 급한 상황을 말한다. 쌩하고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에 사람들의 말이 자주 묻혔다. 광화문광장 옆 도로는 아스팔트가 아닌 보도블록이 깔려 있어 소리 울림이 유독 크다.
민우 아빠가 학생들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몇 살이야?” “지금 고3이오.” “우리 아들이랑 같겠네. 수학여행 갔다왔어?” “아니요.” “그래, 97년생들이 수학여행 운이 없지? 중학생 때는 사스(SARS)로 못 갔었잖아.” 민우 아빠는 말간 얼굴을 한 학생들과 한참 더 대화를 나눴다.가족들도 봉사자들도 “(광화문 농성장이)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고 입을 모은다. 끝도 알 수 없다. 가족들은 지난 3월30일 ‘416시간 집중농성’을 선언했다. 세월호 인양 결정을 촉구하고 정부 시행령안 폐기, 배·보상금 절차 중단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4월16일까지 이어질 집중농성이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으면 무기한 농성에 들어간다고 했다. 아무도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춥다.” “그러게요. 4월인데 왜 이리 추워.” “지난해 진도에서 4월이 그랬는데….” 집중농성 시작 뒤 서울의 최저기온은 3~5℃까지 떨어졌다. 빌딩숲 속 광장에서 가족들은 진도의 바닷바람을 떠올렸다.
광화문 농성장에는 ‘고참’ 자원봉사자가 많다. 가족들의 삭발을 “지켜볼 수만은 없어서” 함께 머리를 깎은 봉사자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김용선(56)씨는 지난해 6월 진도체육관에 내려가 5개월 동안 세탁·청소·설거지 봉사를 하며 실종자 가족들을 돌봤다. 11월에 세월호 선체 수색이 중단되고 실종자 가족들이 체육관을 떠나면서 진도를 떠나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피켓 봉사를 시작했다. “1주기까지 여기에 있을 줄 몰랐다”는 그이지만, 피켓을 들고 서 있을 때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울컥’한다. “끝이 나야 그만하죠.” 그는 “배 인양하고 실종자 9명 다 해결될 때까지는 계속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300일 가까이 이어진 농성장이지만, ‘새내기’들도 여전히 얼굴을 내민다. 4월7일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 서울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한다는 양정한(45)씨가 광화문 농성장을 찾았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 친구들을 먼저 보내고 술기운을 빌려 찾아왔다고 했다. 얼굴이 붉고 셔츠 단추는 여러 개 풀렸지만, 자세는 시종일관 공손했다. “이제야 찾아와서 죄송하다”는 말을 2번 했다.
4월6일 처음 광화문 농성장을 찾은 대학생 이원혁(22)씨도 이틀 뒤인 8일에 유가족 간담회에 들렀다. 그는 “가족들이 (잘못된 언론 보도 대신) 자신들의 말을 직접 듣고 ‘언론의 기능’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날 가족들에게 들었던 말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정리해서 올리다보니 궁금한 점이 생겨서 다시 찾아왔다”고 했다. 원혁씨는 질의응답 시간에 “정부 시행령안이 가족들 반대에도 통과가 된다면 어떻게 되는지, 특별조사위원회는 길어야 1년6개월 활동한다고 했는데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끝나면 어떻게 되는 건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신동욱 총재 “추모는 광장 떠나서도 할 수 있는 것”관광객도 많다. 가벼운 나들이 복장에 사진 촬영으로 바쁜 이들이 대부분이다. 관광객과 추모객이 언제나 구분되는 건 아니다. 4월9일 오후 1시께 전북 익산에서 ‘수학여행’차 서울에 온 이경민·최찬영·임건호·임태영(17) 학생은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한껏 포즈를 취한 채 서로 사진 찍어주기에 바빴다. 모두 상의에 노란 리본을 붙인 채였다. “저기…, (저희 단체)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잘 나오게 사진을 찍어줬다.
“서울 하면 광화문광장이죠!” 태어나서 광화문광장을 처음 본다는 이경민 학생이 들떠서 말했다. ‘서울의 상징’이어서 찾은 것만은 아니다. 수학여행 3일차 서울 탐방 코스는 학생들이 직접 짤 수 있었다. 학생들은 유명 대학교 등을 둘러보는 경로에 광화문광장을 포함시켰다. 노란 리본 배지는 학생들이 “기왕 서울 가는 김에 의미 있게 배지를 달자”고 선생님들에게 제안해서 학교가 단체 구매한 것이라고 했다.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란 말을 끝으로 학생들은 세종대왕 동상 쪽을 구경하러 갔다.
‘반대’ 행동에 나선 사람들도 있다. 자유통일연대, 자유청년연합, 국민의힘, 새마을포럼, 공화당 등은 4월7일 오후 정부청사 앞 보도에서 세월호 인양 반대 요청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 등 십수 명이 모였다. 반대 이유는 “국민 세금을 낭비하고 인양 과정에서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 이들에게 광화문광장은 “반정부 운동 광장”이다. 가족들 틈에 낀 “반정부 세력” 때문. 신동욱 총재는 “희생자 추모는 우리도 계속 하고 있다. 하지만 추모는 광장을 떠나서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국민 절반이 이 문제를 불편해한다”고 말했다. “‘국민 절반’이라는 건 어디에 근거한 거냐”고 묻자, “보수 진영 대부분이 이 문제를 불편해한다”고 답했다.
‘막말’과 ‘모멸에 찬 시선’들은 여전히 가족들을 두들겨팬다. 버틸 수밖에 없다. 그만큼이나 괴로운 건 사실이 아닌 것을 ‘오해’하는 사람들의 물음이다. 정부가 새로 발표하는 조치들의 잘못된 점을 설명하는 것만도 부족한 시간을 ‘해명’에 할애해야 한다.
“어제(4월8일) 신랑이 ‘고교 동창이 서울에서 찾아왔다’면서 만나러 나갔는데 1시간 만에 들어왔어. 대화가 안 된다더라고. 돈 얘기만 하더래. 7억이니 8억이니. 듣도 보도 못했다고 해도 소용없더래. 집에 와서 혼자 술을 마시며 우는데… 보기 싫더라.” 예진 엄마가 말했다. “울고 싶을 땐 우셔야죠.” “아빠가 우는 모습 보는 게 힘들어서….” 예진 엄마의 목소리가 다시 흔들렸다. 4월8일 저녁에 한 시민은 세종대왕 동상 앞 돗자리 농성장에 찾아와 신문에 보도된 ‘세월호 피해자 지원 주요 내용’ 표를 내보이며 “이런 지원이 있는데 왜 이러고 있느냐”고 물어왔다.
4월8일 새벽 1시께 민우 아빠와 함께 세종대왕 동상 앞 돗자리 농성장에서 정부서울청사 앞 돗자리 농성장으로 걸어갔다. “언제 끝날까?” 답을 바라지 않았을까. 뒷말이 곧 이어졌다. “처음엔 3년 생각했는데…. 안 되겠지? 5년이나 10년이면 진실이 다 밝혀질 수 있을까?” 당위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죠.”
새벽 2시를 좀 넘겼을 때, 정부서울청사 앞 돗자리 농성장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었다. 곁에 누웠다. 한겨울용 패딩점퍼를 입은 채 침낭에 쏙 들어가도 추워서 잠들 수가 없었다. 하늘을 쳐다봤다. 의외로 별이 많았다. “죽은 아이들은 별이 되었다고 우리는 늘 말해왔다. 그래, 1년이 되었구나. 저 희미한, 그러나 세세한 별들을 헤아리며 나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너희들은 정말 자랑스러운 부모를 가졌다고. 또 이런 부모들의 밑에서 자랐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목이 메지만 봄이다. 그래 4월이다. 어떤 고통이 있더라도 다시 하늘을 우러러 저 별들을 헤아려야 할 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이지 잊지 않겠다. 세월호는 이제부터 시작이다.”(박민규, 4월9일치 특별기고, ‘다시… 별 헤는 봄’)
광장은 무관심과 적대의 바다에 둘러싸인 세월호 가족들이 사회와 소통하는 길바닥 언로다. 권력과 언론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유지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다. 그들은 언제쯤 광장에서 구조될 수 있나. 언제쯤 집으로 돌아가 가족의 죽음을 온전히 제 속에서 보듬을 수 있나. 여전히 답하는 사람은 없다.
글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SNS 담당 김양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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