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을 처벌하는 공고한 일부일처제 사회인 한국에서도 폴리아모리(Polyamory·다자간 사랑 또는 다자연애)는 이제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특히 대중문화 속 폴리아모리의 풍경은 ‘가랑비에 옷 젖듯’ 틈새를 만들고 있다. 이같은 흐름에 대해 철학자 하주영 박사(<우리 사랑은 영원할까>의 저자)는 “폴리아모리는 억압돼온 여성의 성에 균열을 내는 시도”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일부일처제가 가지고 있던 억압적 측면들은 물밑에 있었습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적 욕망에 대해 감추고 있다가, 성 담론이 활발해지고 (성과 연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조금씩 터져나오는 것이죠. 서구 유럽에서도 폴리아모리는 68혁명 때 젊은이들의 권력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일상적 차원, 문화적 차원으로 이어지면서 활발해졌고요.” 최근 몇 년 새 국내에서 부쩍 늘어난 폴리아모리에 대한 관심을 하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평화활동가 조약골 역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폴리아모리의 원인을 구조에서 찾는다. “지금의 한국 사회를 이런 모양이 되도록 만든 핵심적 기본 제도와 가치를 꼽으라면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대의제 민주주의, 이 둘이 함께 어울려 만들어낸 수직적 위계질서 그리고 모노가미(Monogamy·일부일처제) 등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모노가미의 대안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사고해야 하지 않을까?” 폴리아모리스트들이 단순히 순간적 연애나 쾌락을 위해서라기보다 기성 체제에 대한 반발로서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약골은 폴리아모리를 “새로운 사회를 앞당기는 유의미한 저항적 놀이”라고까지 설명한다.
미술평론가 임근준씨는 한국의 폴리아모리에 회의적이다. 그는 아예 “폴리아모리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일부의 ‘열린 관계’(Open Relationship)를 다자연애라고 부르는 건 과장이다.” 상대방의 동의하에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포함한 관계를 맺는 것을 열린 관계라고 한다면, 이런 연애가 좀더 사회적 관계로 발전했을 때 진정한 의미의 다자연애가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2009년 7월28일 보도한 ‘다자연애: 다가오는 성 혁명인가?’라는 기사 속 다음 사례는 임근준씨가 가리키는 폴리아모리에 조금 더 가깝다. 테레사 그리넌(41)은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남편(래리)과 오래된 남자친구(스콧)와 10년간 함께 살았다. 12년 전에 만난 테레사와 스콧, 래리는 한집에 살며 다자연애를 실현했다. 테레사 가족은 각자 방을 갖고 있지만 잠자리는 서로 논의한다. 9년을 변함없이 함께 살다 최근 테레사와 래리가 결혼했다. 물론 스콧이 동의했고 가족관계는 변함없이 유지된다.
윤리적 부담감, 사회적 시선…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런 방식의 폴리아모리가 뿌리내릴 수 있을까. 하주영 박사는 이렇게 전망했다. “아직 우리 사회가 동시에 여러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윤리적 부담감이 있어요. 욕망을 갖고 있다고 해도 드러내거나 실현했을 때의 사회적 시선들이 아직까진 따갑기 때문에 표출하긴 어렵겠지요. 저는 비관적으로 보고 있어요.”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강예슬 인턴기자 milkleft@naver.com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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